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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쎄오 Nov 03. 2023

120일째, 처음으로 맞는 나홀로 육아

23.10.04 4개월 아기와 아빠의 좌충우돌 동거


지구가 120일이 된 날. 이번 주면 만 4개월을 꽉 채우고 5개월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벌써 일 년의 삼분의 일을 지구와 함께 보냈다니 감회가 새롭다. 삼분의 일이 무슨 대수겠냐마는 이런 사소한 숫자 하나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여 마음 속으로 기념함과 동시에 어느새 지나 버린 신생아 시기를 추억하는 것이 0세 육아의 맛이 아니겠는가.


지구가 태어난 지 120일이 된 것 만큼이나 중요한 점은 지구가 깨어난 아침 7시부터 지구를 재운 저녁 7시까지 12시간을 온전히 내가 육아를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아내가 홀로 지구를 케어하는 날은 많았지만 나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항상 아내가 함께 있었으니 그럴 수 밖에.


하지만 아내가 이직 후 첫 출근을 하게 된 날이어서 육아의 의무가 나에게로 넘어왔다. 난 육아휴직 아빠니까 말이다. 앞으로 시작될 나홀로 육아의 첫 발걸음을 떼는 것이라 생각하고 용감히 임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어제부터 괜시리 긴장되고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지, 엄마가 없는 것을 눈치챈 지구가 울어젖히지는 않을 지 걱정이 되어 잠을 살짝 설쳤다.




보통 지구는 먹놀잠 패턴을 유지하려 노력하는데, 아침 첫 수유를 하면 으레 이 패턴이 된다. 오늘은 일찍 깨는 바람에 6시 20분에 첫 수유를 했는데, 충분히 배를 채우고 이것저것 가지고 놀다 보면 졸려 하는 기미가 보이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아기띠로 재운 후 조심스레 침대로 내려놓는 것이다. 물론 요즘 새우잠 자는 지구라 한 사이클인 30분~45분 정도이면 어김없이 깨는 바람에 아쉽지만 그래도 한 숨 재웠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두 번째 사이클이다. 첫 먹놀잠 사이클을 돌려도 아침 9시 경이었는데, 직장인이라면 이제야 일과를 슬 시작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4시간 수유텀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10시 넘어서까지 버텨야 했지만 웬일인지 지구가 엄청난 강성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혹시 엄마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런가? 아니면 몸이 안 좋은가? 등등 별별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싶어 분유를 타서 먹이니 언제 울었냐는 듯 잘 먹어서 한 숨 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놀이 타임. 역방쿠 - 아기병풍 - 아기체육관 - 꼬꼬맘 - 딸랑이 등 온갖 육아용품을 총동원하여 가까스로 놀아주고 나니 1시간이 지나 있었다. 난 이미 지쳤는데.. 어떡하지?  


먹놀잠이라는 행위 각각 1번 씩으로 4시간 사이클을 채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아쉽게도 지구는 먹놀잠 사이클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딱 2시간이다. 즉 나머지 2시간은 어떻게 채워야 할 지 모르는 상태로 멘붕을 겪는 것이다. 폭풍 인터넷 검색을 통해 먹놀잠놀잠 형태로 응용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다행히 얼추 먹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시가 되었다. 여기가 가장 마의 구간이다. 지구의 목욕 시간은 6시 30분. 그러니까 장장 3시 30분을 지구가 깬 상태로 보내야 한다. 이 때 잠을 많이 자게 되면 저녁잠에 영향을 준다고 해서 재우는  것을 지양하라는 내용을 보았기 때문이다.


날이 좋으면 지구를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가려 했건만 마치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산책도 포기하고 무아지경으로 집에 있는 모든 아이템들을 돌렸다. 그렇게 어떻게 보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3시간 30분이 지나고, 깨끗히 목욕을 시키고 수면의식을 한 다음에 잠을 재웠다. 7시 10분, 미션 컴플리트.




숨 가쁘게 돌아가던 지구와의 12시간이 막을 내렸다. 12시간이 이렇게나 긴 시간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된 하루였지만 가끔씩 이 아빠를 보고 천년의 미소를 지어주는 지구 덕분에 육아의 보람을 제대로 느꼈다. 지구의 하루를 무사히 책임졌다는 성취감도 들었고.


하지만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다. 내일 다시 태양이 뜨면 다시 지구와의 12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마치 윤회의 굴레처럼.


앞으로 적어도 주 2회는 지구와 단 둘이서 하루를 보낼텐데, 낯가림 시기가 와도 이 아빠를 거부하지 않고 편하게 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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