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쎄오 Nov 05. 2023

거기 있어줘서 고마워 백화점아

23.10.07 왜 아기랑 백화점에 가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백화점에 방문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온라인 커머스가 보편화된 시대에 백화점은 상품의 차별성과 가격의 합리성 두 가지 측면의 기준으로 점수를 매길 때 둘 다 낮았기 때문에 항상 선택지의 하단에 있었다. 명품 브랜드나 지하 슈퍼 및 푸드코트 정도가 백화점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물론 백화점 하면 고급진 인테리어와 좋은 서비스, 빵빵한 히터 및 에어컨 등이 있지만 아내와 둘이서 데이트를 할 때에는 (아내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백화점이란 곳이 내 기준으로 오버스펙인 점을 지울 수 없었고, 그 오버스펙은 모두 물품 가격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크게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백화점 방문 빈도도 줄었을 뿐더러 백화점에 간다 하더라도 몇 개 층은 건너뛰고, 관심이 가는 층만 다녔다.


하지만 지구가 태어난 후, 백화점이란 공간이 완전히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전제가 되는 질문은 '꼭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야 하느냐?' 인데, 겪어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가 낮잠이 긴 편이 아니다 보니 깨어 있는 시간이 많고, 역방쿠나 아기체육관에서 혼자 놀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분이 최대이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은 꼭 업든지 안든지 유모차에 태우고 움직이든지 하는 케어가 필요하다. 그 반복되는 업무(?)로 피로가 쌓이면 리프레시가 간절해지고,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야 하는데 밖에 나간다 치면 준비물 챙기고 이동하고 시간 보내고 돌아오면 못해도 2~3시간은 보낼 수 있다. 어차피 흘러야 할 시간, 내 리프레시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적이고 원활한 외출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날씨의 영향을 적게 받아야 하므로 실내가 좋음 (중요도 ★)

내가 리프레시할 수 있는 요소 ex.카페, 눈요기, 서점 등이 있으면 좋음 (중요도 ★)

완전히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면 차로 이동해야 하므로 주차가 가능해야 함 (중요도 ★★)          

유모차를 끌어야 하므로 바닥이 평탄해야 함 (중요도 ★★)

수유와 기저귀 갈이가 가능한 공간이 있어야 함 (중요도 ★★★)          


그리고 상기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는 곳이 바로 백화점이다. 몇 번 가 보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지구와 갈 곳을 머릿속에 그려볼 때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모든 요소들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부분이 5번이었다. 아직 어린 아기이기 때문에 기저귀를 자주 갈아줘야 하고 언제 배변을 할 지 모른다. 또한 수유텀을 넘기면 자지러지게 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밖에서도 꼭 수유를 해줘야 한다. 직접 아이를 키워 보니 비로소 보이는 요소들이었다. 


내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유아휴게실을 잘 갖춰진 곳은 찾기 어려웠고 특히 아빠만 아기를 데리고 외출할 경우에는 더욱 힘든 것 같았다. 여자화장실 내에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백화점의 유아휴게실이란 곳에 들어섰을 때, 정말 신세계를 맛보았다. 깔끔하게 구획된 공간 안에 기저귀 갈이실, 수유실, 수면실, 이유식 공간 등이 있었고 전자레인지, 젖병소독기 등 필요 가전들도 구비되어 있었다. 필요하다면 유모차를 대여해 주기도 했다. '아, 그래서 백화점 백화점 하는구나. 백화점이 주는 고급 이미지가 이런 공간들을 통해 만들어지는구나!'


유아휴게실은 주로 유아 카테고리가 모인 층에 존재하는데, 각 매장을 돌며 정보를 얻기에도 편리했다. 여름 아기를 키우는 초보 아빠엄마다 보니 다가오는 겨울에는 무얼 입혀야 할 지, 앉기 시작하면 어떤 유모차를 써야 할 지, 이유식은 언제 시작해야 할 지, 책은 어떤 걸 사줘야 할 지 등등 수많은 질문이 생겨났는데 매장에서 상품들을 보며 설명을 듣다 보니 어떻게 지구의 첫 겨울을 준비해야 할 지 조금씩 감이 잡혔다.


마지막으로 문화센터에 들렀다. 말로만 듣던 백화점 문화센터도 처음 가 본 것인데, 고급지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어 묘한 호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지구를 데리고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일까. 직원분께 문의했더니 11월 까지의 수강은 마감이라고 해서 12월부터 가능하다고 한다. 그때 쯤이면 지구가 6개월이 되니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이 몇 가지 있다고 해서 마침 타이밍이 잘 맞을 것 같다. 육아휴직 하는 전업 아빠로서 용감하게 한 번 백화점 문센의 문을 두드려 봐야겠다.


앞으로 펼쳐질 지구와의 백화점 라이프가 기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120일째, 처음으로 맞는 나홀로 육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