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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두달홍천살이 Sep 05. 2020

직장 내 갑질, 자발적 퇴사 이후 겪는 증상들

해독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2019년 12월 31일, 나의 마지막 근무일

이 직장이 너무 괴로워 근로 계약 기간을 미처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자발적인 퇴사를 하고 떠나는 이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한가? 모두 그 모습은 다를 테지만, 내 사례를 소개한다.


나는 작년 5월, 해외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뒤 약 2개월 만에 1년 계약 직원으로 한 기관에 입사하게 되었고, 7개월 만에 1년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 이렇게만 말하고 나면 마치 내가 끈기가 없어 중간에 뛰쳐나온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조금만 더 읽어 봐 주면 좋겠다.


이젠 지난해 가 되어 버린 12월 31일은 나의 마지막 근무일.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며 기다리던 그날이 다가왔다. 누가 보면 일이 정말 정말 끔찍했었나 보다고, 혹은 남도 다 버티는 데 엄살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꼭 매 순간이 괴롭지만은 않았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모든 사업들은 다 좋았고, 내게 배움을 줬다. 하지만, 내가 마치 고장이 나서 뭘 조금만 해도 쉽게 방전되며 몸과 마음이 괴로워지는 상태가 왔다. 나를 계속 억누르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당장 하고 싶지 않고 쉬고 싶지만, 내가 해야 하니까, 해야만 하니까 해야 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 상황과 조건이 내 정신을 계속 누르고 누르며 억지로 해 나갔다. 나는 멈추고 좀 숨을 고르며 쉬고 싶은데, 내가 멈추면 안 되는 일상의 연속. 


주말은 내게 꿀과 같았지만 월요일이 오면 다시 상태는 어려워졌다. 일을 하며 '나를 죽이는' 상상을 자주 했다. 내게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11월 25일, 이상하게 평소보다 모든 것이 좋았던 날, 나는 조용히 '퇴사 선언'을 하고 기관장실에서 나왔다. 그 뒤로 12월 말까지 약 한 달간 퇴사를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한 달만 잘 버티자, 하며 내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해 나갔다.


11-12월 퇴사 막바지에 정말 많은 사업(행사)들이 있었다. 매주, 하루 간격으로 사업이 있던 적도 있다. 사무소에 도착하는 순간 눈코 뜰 새가 없었다. 12월 27일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2019년 한 해 행사가 모두 끝났다. 남은 것은 '정산'과 '퇴사 처리'. 엄청난 정신력을 필요로 했다. 먼저, 12월에 이어진 모든 행사들에 지출된 내역들을 한 건 한 건 시스템에 등록해야 했다. 관련 문서 (사업 계획서 등), 견적서, 거래명세서, 영수증 사본, 증빙 사진, 사업 결과 보고서 등 건마다 준비해야 되는 서류들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퇴사까지 도무지 못 할 것 같아 12월 29일 일요일에 사무소에 나와 주요 사업들 결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12월 30일 월요일에는 하루 종일 정산 업무에만 매진했다. 약 20건을 등록한 것 같다. 12월 31일 마지막 날에는 인건비 지급과 나의 퇴사 처리에 관한 업무를 처리했다. 속으로 한계라고 말하고 있었으나 끝까지 힘을 쥐어짰다. 나는 급여 관리도 하고 있어 12월 마지막 급여 지급 처리를 하고, 은행에 소득세 및 주민세 납부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내역을 시스템에 입력하고 총무과에 공문 보고까지 완료해야 한다.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지급한 강사료에 대해 일일이 시스템의 기타 소득란에 입력하고, 소득세 및 주민세 고지서를 인쇄해 직접 은행에 지급해야 한다. 이 모든 것까지 하고 사무소에 돌아오니 오후다. 종무식을 하고 모두가 떠난 상태다.


이제 '4대 보험 상실 신고'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상실 신고서를 작성하고, 그동안 받은 급여액을 정리한 자료와 함께 총무과에 공문서를 보낸다. 아직 끝이 아니다, 이제 내 개인 정리가 남았다. 인수인계서를 마무리하고, 그동안의 업무 일지와 함께 컴퓨터 바탕화면에 띄워 놓았다. 내가 그동안 차곡차곡 정리한 폴더들을 누군가 잘 활용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사무소를 떠났다. 내 마지막 근무일 날 나는 근처 이탈리안 식당에 가서 혼자 파스타를 먹으며 소소하게 퇴사 자축을 했다.


왜 나는 퇴사를 결정했나?
(직장 내 갑질 때문이라고 하면 합당한 근거가 될까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나에게 우호적이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에 대해 충분히 신경을 안 쓰고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매일 보아야 하는 직장 안에 늘 함께 한다면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나를 관할하고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는 최고 상사라면 상황은 더 곤혹스러워진다. 언제부터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심어져 자라왔는지 모른다. 내가 입사한 초반부터인가? 내 머릿속을 뒤집고 오장을 뒤트는 순간의 경험들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겉으로 표현을 못하고 며칠을 고민하며 심적으로 앓았던 것 같다. 기관장님이 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소통에서 배제를 시키며 차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내 앞에서 다른 동료들을 대하는 모습과 그 속에 놓여 있는 나 자신을 느끼면 저절로 감정이 상하는 걸 느껴왔다. 나를 부를 수 있는 상황에 나보다 직급이 낮은 인턴들을 부르는 상황이 자주 있어 왔다. 물론 편하게 생각해서 그러실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이나 일정에 관한 상의를 할 때에도 인턴들을 부른다는 거다.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그리고 직원들 중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 실장을 제일 자주 부르셨다. 내가 화나는 건 이 지점에서다. 나는 그 중간에서 아무 주목을 받지 않는다는 것. 나에 대한 관심? 이걸 못 받아서 내가 이렇게 심술이 났다고? 아니다. 나는 하급 직원으로서의 최소한의 관심과 친밀감, 평등한 업무 기회균등(대우)을 기대했을 뿐이었다. 기관장님의 무의식적 또는 의식적인 차별적 행동은 나를 대 놓고 무시하며 모욕감을 주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 표현한 적이 없다. 표정에만 그 불편함이 드러났을 뿐이다.


내가 정말 화가  기관장님께 정이 떨어졌던 순간은 회의 시간 내가 맡은 사업과 준비 계획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발언 기회를 없애고 실장의 이야기만 들으려 하고 인턴들에게만 직접 이름을 불러가며 논의와 지시를 했던 것이다. 아직도  순간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내가 나대는  같아 보여  마땅하셨던 걸까. 나를 가만히 있게 눌러 버리고 싶으셨던 건가.    지난 3 동안 연속적으로 내게 이런 공격적이고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상사를 만나는 거지? 문제는 나인가? 하는 온갖 자책에 기반한 의문들이 들었다.


그 잘못과 책임의 대상이 나 자신에게로 향할 때 고통과 우울은 시작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일단 내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항상 피부 좋다는 말을 듣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얼굴이 여드름으로 가득해졌다. 화장을 전혀 못 하고 생얼로만 다녔다. 몸살도 자주 나서 약을 달고 살았다. 생리통도 평소보다 더 심했던 것 같다. 스스로의 건강에 위험신호를 느끼며 이 순간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살아갔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 지원해 보기도 하며 온갖 발악을 했다. 매일 아침 깨어나는 순간이 지옥 같았다. 퇴사 결정을 확신하고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몇 개월이 더 걸렸다.


그러던 지난 11월 25일 월요일, 이 날 따라 아침부터 결연한 마음이 섰다. ‘그래, 나는 올 해까지만 하고 그만둔다.’ 이 확신의 문장을 스스로에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힘겨워했던가. 이제야 내 상태와 욕구를 수용하게 된 것이었다. 그 목소리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그 날 아침 내가 꾼 꿈 때문이었다. 마치 내게 결정을 내리라는 계시 같았다. 내가 얼마나 고민하고 열망하면서도 망설이고 있는지, 꿈속에서 큰 테이블에 사람들을 불러 앉혀 놓고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둬야 하는 이유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 토론을 하고 있었다. 내가 나의 결정에 대해 의심스러운 마음을 표현하면 함께 앉은 사람들은 왜 그만둬야 하는지 이야기를 하며 나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러한 상황을 가만히 두고 네가 참는 것은 옳지 않아. 네가 괜찮지 않잖아. 네가 중요하지.’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주기적으로 자주 들었지만, 그걸 실행으로까지 옮기려고 하면 두려움과 망설임이 올라왔다. 내가 계약을 채우지 못하고 나갔을 때 내가 얻게 될 평판, 상사로부터의 비난, 그 이후의 나의 방향성 등에 대해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최종 결정을 하고 나니 근무한 지 6개월이 다 되어 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날 아침, 동료들에게 처음으로 내 의사를 밝혔고, 그날 저녁 퇴근 후 사무소에 나와 기관장님만 남게 되었을 때 방으로 찾아가 어렵게 내 결정을 공유드렸다. 의외로 담담하고 다정하게 대응해 주셔서 나는 놀라기도 하고 안심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호통을 치시거나 비난을 받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게 앞으로 계획이 있는지, 준비를 하고 나가는 게 낫지 않은지, 부모님은 아시는지, 퇴사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지 등에 대해 물어봐 주셨다. 그리고 내 의지를 알겠다며 일단 접수해 두고 며칠 후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다. 제일 어렵다고 생각한 과정을 마쳤다. 이후 나는 퇴사의 순간에 느낄 해방감을 꿈꾸며 그 에너지로 남은 바쁜 일정을 소화해나갔다.


왜 나는 그 당시 내가 느낀 부당함과 분노에 대해 솔직하게 말을 꺼내지 못했을까? 

그 점은 새로운 직장을 시작한 뒤에도 한동안 나를 괴롭힌 생각이었다. 당시의 기억이 떠 오를 때마다 내 멘탈은 흔들렸다. 그 당시의 나로 돌아가는 거였다. 당시의 나는 너무도 나약한 입장이었다.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최고를 자랑했던 분과 일하게 되다니. 그분의 말과 권력이 가진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를 벌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아래서 벌벌 떨었으니 말이다. 부당하고 잘못된 게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두들 참고 그의 요구를 들어줬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어 보였다. 오히려 문제 삼는 게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이런 구조 속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하는 나의 고통을 누가 귀담아들어줄까. 내가 괴로움을 호소해봤자 피해를 볼 사람은 나뿐이라는 시나리오밖에 그려지지 않았다. 이 업계에서 내 평판만 나빠지리라. 사람들은 그의 나에 대한 평가만을 나의 가치로 믿을 것 같았다. 그러니 침묵만이 최선이라고만 생각됐다.


그만둔 뒤에도 내게 미칠 영향이 무서워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됐다. 중간에 계약을 파기하고 나가면서 실업 급여도 못 받을 테고 내게 실패라는 꼬리표만 달릴 테니까... 당시에 대해 나는 내가 인생에 거쳐 가장 크게 겪어본 '갑질'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내 삶의 '전환점'이 돼었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피해자로 만들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니까 말이다. 안 그러면 끝이 안 보이는 까마득한 터널 속에 있는 것처럼, 그 뒤에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외롭고 긴 고통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퇴사 후 정상적 삶으로 돌아가기까지의 해독 과정


1월 초 추운 겨울, 나는 오들오들 떨며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아빠의 도움으로 살던 지역의 자취방에 있던 짐을 모두 빼 왔고 부모님 집에 다시 내 살림살이들을 흡수시켰다. 원래도 가족들에게 다정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나는 더 공격적이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퇴사 후 10일 동안 꾸준히 일기를 썼는데 혼자 있을 때는 자책의 고민을, 사람들과 엮일 때는 늘 갈등이 있었다. 스스로 정신 이상자로 느껴질 정도였다. 한동안 무력했다. 3월 새로운 직장에 면접을 보기까지 우울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전 직장에서의 잔재가 남았다고 해야 할까. 그 당시 느꼈던 내 감정의 반응 방식과 두려움이 내 안에 기록되어 있었다. 7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경험을 했으니 그 분위기와 내 감정들이 내 안에 습관으로 자리 잡힐 만도 했다.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나는 분노를 표출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상처 준 것에 대해 스스로를 탓했다.


몸도 당시의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동이 틀 새벽에 잠들어 오후까지 잠들어 있었다. 그 뒤로는 밤까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몸이 늘 무겁고 피곤했다. 마음도 같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무엇보다 '나는 무능하다'는 인식이 스스로를 짓눌렀다. 어디를 가도 같은 대우를 받을 것 같고, 그 책임은 나한테만 있는 것만 같았다. 칭찬이 아닌 비난만 받고 지내다 보니 그들이 한 말만 믿고 내 안에 아주 바보 같은 믿음이 새겨진 거다. 당시 나는 희망을 완전히 잃고 내 몸 안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 몰래 인터넷으로 심리 상담 치료 등을 찾아봤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정말 운명처럼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이 나와 같은 갑질 피해 경험으로 최근 일을 그만두고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게 하늘이 보내 준 은인과 같았다. 당시 나는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내가 비정상이 아니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용기를 내 인근의 국립 병원의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진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스스로 정말 두렵고 수치스러웠지만, 정말 좋은 결정이었다.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스스로의 고통을 아주 과장되게 느끼고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내 몸 상태와 생활 습관에 대해 객관적인 질문들이 해 주시며 내 생각과 궁금점에 대해 의학적으로 답변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시적으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험이라는 걸 재차 인식시켜 주셨다. 마치 내 마음이 감기몸살을 겪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보면 내 심리의 문제라기보다 내 뇌와 몸 상태가 내 현재 감정과 생각을 만드는 것도 같았다. 내 존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현재 내 몸이 좀 건강하지 않을 뿐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의사 선생님은 규칙적인 시간으로 수면을 취하고 식사를 하라고 하셨다. 아주 기본적인 거였다. 수면제와 항우울제가 담긴 약을 받았는데, 실제로 그 약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약들에 잠시 의지하며 이 약들을 먹으면 나는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길러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뒤로 딱 한 번 더 방문하고, 그 뒤로 내 삶의 상황이 점점 나아지면서 저절로 발길이 끊겼다. 정말, 우울증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거고 전문적 도움을 받는 게 결코 수치스러운 게 아님을 깨달았다.


3월, 한 직장에 합격하며 나는 선택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그동안 내가 쌓아 온 경험들이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그 합격 경험이 내게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며 만병통치약 역할을 했던 것 같다. 5월 말부터 현재까지 4개월 차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서는 전처럼 나를 깎아내리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내게 주어진 역할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저 심리적으로 어떤 고통과 두려움을 느낄 상황에 노출되지도 않고 평온한 상태에서 존중받으며 근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매일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분명히 나는 이 전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그 전보다 업무 역량 향상에 있어서나 내 삶 전반에 거쳐, 훨씬 다양하고 새로운 점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그 점에 나는 감사했다. 어딜 가든 전보다는 더 능숙하게 다양한 업무를 해낼 수 있을 거니까. 무엇보다 멘탈이 강해졌다. 나쁜 건 미리 겪어 볼수록 좋은 것 같다. 어느 정도의 희생과 후유증을 감수해야 하긴 하지만 말이다.


당시의 경험에 대해 스스로 괜찮아지고 떳떳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제 3자에게 공유하기까지요. 현재 직장 내 갑질로 고통받으시거나, 자발적 퇴사를 앞두고 계시거나, 퇴사 직후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신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위로&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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