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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두달홍천살이 Oct 23. 2020

스스로에게 한 없이 부드러워져야 할 때가 있다

살면서 스스로에게 단호하고 엄격해져야 할 때가 있다.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목표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때, 이 모든 것들을 하는데 귀찮아서 미루게 될 때 등이다. 그때는 스스로가 아무리 힘들고 못 견디겠다고 해도 조금만 힘내서 끝까지 해 보도록 곁에서 바짝 끌어올려 줘야 한다.


올해 나의 경험이 담긴 책을 발간하고 싶어 공모전에 도전했다가 선정이 됐다. 그리고 3개월간 최종 원고를 작성해야 했는데, 원하는 목표는 뚜렷하면서도 직접 행동으로 꾸준히 결과물을 만들어가기가 힘들었다. 정신적으로 두려움과 나태함이 함께 잔존했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핑계와 할 일들에 '아직 시간이 있잖아' 하며 하루하루 그냥 보내다 마감일이 다가올 때쯤 스스로에게 정말 엄격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시간을 내고, 그 시간에는 나를 카페에 데려가 컴퓨터 앞에 앉혀 놓았다. 그건 엄청난 집중력과 노력들을 필요로 하는, 하루하루 나와의 싸움이자 협상이기도 했다. 내 이성이 향하고 싶은 대로 현실의 나를 관리해야 하니까.


일주일에 한 시 간씩 세 번 필라테스를 다닌다는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스스로의 의지를 계속 붙잡고 있어 줘야 한다. 지난 5개월간 나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목표 시간을 채워왔다. 때로는 그냥 퇴근 후 집에 가거나 카페에 가서 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게 귀찮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낸 6개월치 운동비가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내가 스스로에게 지킨 약속을 지키고 싶었고, 건강하고 예쁜 몸을 유지해 나가고 싶었다. 


꼭 가고 싶은 직장이 있어 필수 관문인 필기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공부도, 내 개인 시간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일이기에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하루에 필수 공부 시간을 채우고 스터디원들과 약속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목표에 조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떨어지고 나서 '공부 좀 더 할걸' 하고 가슴속에 후회할 일도 없고 말이다.




반면에 스스로에게 한 없이 부드러워져 스스로를 돌봐야 할 때가 있다.

내가 힘든 일을 겪을 때다. 삶에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일들이 있다. 몸에 찾아오는 변화나 인간관계에서 겪는 일들도 포함된다. 내 정신과 일상 그리고 그 기타의 것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황들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를 비난하면 안 된다. 스스로는 아주 취약해진 상태다. 누가 툭 건드려도 폭발하거나 무너질 것만 같은 상태다. 너무 상처를 받아 마음이 아프고, 그 마음 때문에 몸도 같이 아프다.


이런 취약한 시기에 오히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완벽한 잣대를 들이대면 오히려 탈이 난다. 이런 상태에 놓이게 된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고, 스스로를 증오하며 마음은 더욱 병들어간다. 물론, 과거 실패감을 준 경험에서 나의 책임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 상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너무 오래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 아무리 그 상실의 느낌이 내게 많은 감정을 남긴다고 해도.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고'라고 생각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사고는 나의 책임도 있지만 외부 요인도 작용한다. 마치 자연재해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삶을 휩쓸고 지나가기도 한다.


나에게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고비가 찾아온다. 여성으로서 매 달 겪는 호르몬 변화로 내 기분은 평소보다 무거워지고, 외로워지고, 사람들의 자극에 대해 감정적으로 보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몸의 변화는 마음을 움츠러들게 한다. 근무를 하고 있을 때면 쏟아지는 잠을 못 참아 별 다른 성취 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스스로가 밉고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건 지금 내 몸에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 때문이지, 나의 게으름이나 태만 때문이 아니라고. 나는 현재 취약한 몸과 정신 상태를 갖고 있으니 며칠만 이해하고 스스로를 더 돌봐 주자고. 나와 살아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내 상태를 이해하고 돌보는 법을 조금 익혔다.  


예전에 이별로 힘들어할 때 찾아본 어떤 강연에서 들은 말이 잊히지 않는다. 이별을 한 사람은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처럼 대해 줘야 한다고.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관계의 상실로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큰 사고를 당해 그 사고를 처리하기 위해 온 몸과 마음이 작동하고 있다고. 다시 활기찼던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마치 환자가 충분한 간호와 재활 치료가 필요하듯, 우리도 스스로 및 주변 지인들에 의한 따뜻한 보살핌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빨리 상태가 좋아지길 바라며 스스로를 독촉하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그게 언제가 되든 기다려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미쳐 돌보지 못했던 나만의 시간, 나의 삶을 가꿔 나가는데 집중해 나가자고. 모든 정신과 시간을 내면으로 향해야 할 때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쉬게 하는 것에 보다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게 언제 엄격해져야 하고, 언제 한없이 관대해져야 하는지 구분하고 실천해 나가는 건 평생의 숙제인 것 같다.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신생아로 태어난 우리가 스스로를 책임지고 돌보는 법을 익혀 왔다. 이제는 스스로를 위해 필요한 욕구를 채워 줘야 하는 유일한 책임자이자 보호자가 된 것이다. 그 역할과 의무는 결코 쉽지 않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나를 '나'라고만 생각하지 말자. 스스로를 너무도 아끼고 사랑하는 '상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성장하기 위해 노력할 때는 코치이자 지지자 역할을, 힘이 들 때는 든든한 위로자이자 친구가 되어 곁에서 필요한 모든 역할을 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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