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도쿄_여행지에서 오랜 친구를 만나는 기분은 새롭다

서른 살에 떠난 30일간의 배낭여행 3/30

by Hongchic
아사쿠사 - 스미다 공원 - 키치죠지 스트리트-이노카시라 공원

이름이 입에 착착 붙는 아사쿠사가 오늘의 첫 여정. 쿠사라고 하면 고스톱 쿠사(초단)밖에 생각이 안나는 나의 이 아름다운 뇌구조. 날씨가 좋아졌다. 카메라 필터를 씌우지 않아도 파랗고 맑은 하늘과 구름을 볼 수 있다. 아사쿠사역에 내리니 어제보다 더 많은 인파가 나를 반겨준다. 뭐 이렇게까지. 일본인들의 환대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이 수많은 인파를 보라!

노점에서 다코야끼를 사서 동생과 함께 나눠 먹었다. 하늘과 신사의 조화가 오묘하고 아름답다. 하늘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다코야끼는 한 알에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이다. 둘이서 6개짜리 한 팩을 먹었다. 비싸다고 생각하는 순간 커다란 문어 조각이 나를 위로해줬다. 음… 우마이. 아사쿠사는 정말 사람이 많았다. 오늘까지 주말이니 내일이면 여유로운 도쿄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좀 만 더 힘을 내자.

개미지옥 아..아니 아사쿠사를 벗어나 스미다 공원으로 향했다. 어제와 오늘 동생과 내가 좋다고 감탄하는 장소의 공통점을 파악했다. 바로 나무와 물과 흙이 있는 곳. 역시 공원에 오니 둘이 또 좋아한다. 노숙자 아저씨들과 연못에 있는 거북이를 구경했다. 처음에는 모형인 줄 알았는데 움직여서 깜짝 놀랐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북이 중 한 녀석은 내가 손을 흔들면 자기도 손을 흔든다. 귀엽다. 노숙인 아저씨가 잉어에게 빵을 주는 걸 함께 구경했다.

귀여운 스미다 공원의 거북이들

점심은 카마우 우동에서 해결했다. 둘이서 우동 두 개에 사이드 하나를 시켰는데 1만원이 안 넘는다. 도쿄에서 이런 저렴함을 느끼는 건 처음이다. 아름다운 가격과 함께 맛도 훌륭하다. 꼭 한번 들르길. 아사쿠사 바로 앞에 있습니다. 저는 날달걀에 간장을 부어 우동과 비벼먹는 메뉴를 먹었는데 핵 존맛이었답니다.

존맛탱 카마우 우동

전철을 타고 키치죠지로 갔다. 나는 주말에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케이블 TV로 고독한 미식가를 시청한다. 드라마에서 잡화상인 주인공 고로 아저씨는 늘 외근을 나갔다가 배고파서 밥을 먹는다. 키치죠지는 고로 아저씨가 오래된 식당에서 나폴리탄을 먹었던 곳으로, 나도 오늘 이 곳에서 나폴리탄을 먹을 예정이다.


키치죠지 스트리트에서 가게를 구경하다 도넛과 커피를 포장해 근린공원에서 먹었다. 도쿄는 다 쪼끄맣다. 도넛도 너무 쪼끄맣고 커피도 양이 너무 적다. 암튼 하나 도넛과 마가렛 호웰 커피를 공원에서 흡입하며 뛰놀고 있는 일본의 아이들을 구경했다. 도쿄 여행에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아이들이다. 도쿄의 아이들은 정말 얌전하고, 귀여운 데다 밥을 잘 먹는다.

하나 도넛. 평범하지만 맛있고 담백하다.

점심을 먹었던 카마우 우동 가게에서는 내 앞에 약 6-7살 정도 먹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줄을 서 있었다. 어른인 나도 좀이 쑤시는데, 그 남자아이는 2-30분을 얌전히 줄을 섰고, 할머니와 함께 우동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가게 안에서도 아이는 우리와 함께 앉게 됐고, 파가 잔뜩 묻어 있는 부분이 맛있는지 유독 그 부분의 면을 골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잘도 먹었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시부야 초밥집에서는 4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의자에서 내려오다 동생에게 부딪쳤는데, 엄청 귀여운 목소리로 ‘스미마셍~ 스미마셍~’ 이라고 읍소 했다. 동생이 괜찮다며 손을 흔들자 ‘사요나라~ 사요나라~’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엄마가 ‘죄송합니다! 해야지!’ 하면 숨거나 콩알만 하게 말하는 아이는 봤어도, 스스로 자발적으로 말하는 아이는 잘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아이가 ‘미안해요’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면 이렇게 되려나.


키치죠지 공원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놀러 나온 여자 아이는 ‘스미마셍~ 고항 구다사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말로 치면 ‘ 실례합니다~ 밥 주세요.’ 놀이. 인형처럼 예쁜 작은 아이가 너무 귀엽다.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가상의 밥을 퍼주고, 같이 놀아준다. 그러나 울타리를 넘거나 웅덩이를 건너뛸 때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지켜봐 준다.

키치조지 거리
키치조지 스트리트에 있는 고양이 등신대

잠시 휴식을 가진 뒤, 키치죠지 역 근처로 돌아가 200엔을 내고 자전거를 빌려서 이노카시라 공원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있는 이노카시라 공원에는 행사가 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와 동생은 자전거로 공원을 두 바퀴 돌았다. 공원 한편에서는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만화 영화를 관람한다. 평화로운 밤이다.

영어를 한마디도 쓰지 않고 아주 짧은 일본어로 빌린 자전거
평화로운 이노카시라 공원의 야경

마침 도쿄로 여행을 온 고교 동창 진아를 키치죠지에서 만나 고로 아저씨가 나폴리탄을 먹었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옛날 경양식 식당 느낌의 카야시마라는 식당이다. 나와 동생, 그리고 친구는 일요일 밤을 맥주로 장식하려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나폴리탄과 함박 스테이크, 카레 오므라이스를 시켜서 먹었다. 나폴리탄을 먹는 중에 고로 아저씨처럼 ‘우마이(맛있다)’라고 조그맣게 말하며 나만의 의식을 치렀다. 친구와 동생에게도 ‘우마이’라는 말을 꼭 하라고 시켰다. 나폴리탄은 익숙한 맛이었고(급식 스파게티의 고급 버전) 편안했다. 여행지에서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기분은 또 새롭고 재밌다. 내 친구 진아는 다음 주 수요일까지 도쿄에 머물 예정이다.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음... 우마이~

덜덜거리는 다리를 끌고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곤 침대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 기분 좋은 피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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