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떠난 30일간의 배낭여행 24/30
블루 케이브 > Komiza > stiniva bay > budicovak beach> 흐바르
아침 7시 40분. 블루 케이브 투어를 가기 위해 나는 투어 사무실 앞에 서 있다.
작은 짐가방에는 수영을 위한 비치 타월과 갈아입을 옷, 생수를 챙겼다. 수영복은? 언제라도 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옷 안에 미리 챙겨 입었다. 오늘의 수온은 19도. 투어 가이드는 수영을 하고 싶으면 해라. 그건 너의 마음에 달렸다며 추천도 만류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수영을 할 것이다.
투어 인원은 스무 명. 보트 1과 보트 2로 나눠서 각각 진행된다. 나는 보트 2에 배정됐다. 우리 보트에는 4명의 인도 사람과 한국인인 나, 그리고 일본인 아키상, 영국인 부부와 두 아들이 탑승했다. 고무보트라기도 모터보트라기도 애매한 그 보트에 올라타 자리에 비치된 바람막이 잠바를 입고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보트 의자는 오토바이처럼 생겼다. 자전거 안장처럼 앉는 구조. 여기 사람들의 신체 구조에 맞춰 설계된 탓에 나는 양발이 바닥 잘 닿지 않았다.
보트에 시동이 걸리고, 가이드는 한 시간 반 가량 이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푸른 동굴을 향한 질주가 시작됐다. 바다 위의 폭주족이라면 설명이 되려나. 투어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멀미약을 먹길 정말 잘했다. 좌우로 요동치는 보트 위에서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어려웠다. 옆 좌석에 앉은 일본인 아키상은 사납게 달리는 보트가 아주 재밌다면서 연신 '오모시로이(재밌어)'를 외쳤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항해가 일단락되고 블루 케이브 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블루 케이브 전용 작은 보트로 옮겨 타고 이동해야 한다. 동굴 입구에서 우리는 전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부딪힐 것 같은 아주 작은 구멍. 저곳이 입구라고? 가이드는 고개를 숙이라고 얘기하며 능숙하게 보트를 조정해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맑은 바닷물을 비추면서 동굴 안은 푸른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닷물은 맨눈으로도 속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맑았다. 동굴은 18세기 후반 난파 사고를 당한 오스트리아인이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끝내 살아남아 우리에게 이런 멋진 곳을 선사해주었다.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온몸을 전율하며 블루 케이브를 구경했다. 여름에는 수영도 할 수 있다고 하니 꼭 다음에 다시 와야지.
투어를 받는 동안 나와 일본인 아키상은 붙어 다녔다. 함께 간식을 먹고, 이곳저곳을 함께 둘러보았다. 그녀는 우리 엄마 뻘 되는 나이지만 그 누구보다 활동적이고 밝았다. 그리고 특이하게 카메라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렇지만 모든 풍경을 아주 천천히 즐기며 눈과 마음에 담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오이시(일반적인 맛있다)와 우마이(맛있다의 남성적인 표현)가 뭐가 다른지, 고양이를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등 아주 사소한 얘기를 나누며 섬 곳곳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이가 들었을 때의 내 모습을 상상 했다. 그리고 막연히 그녀와 같은 기운을 뿜어낼 수 있었으면 이라고 생각했다.
budicovak beach에 도착하자 가이드는 수영이나 스노클링을 해도 된다고 얘기하며 원하는 사람에게 스노클을 나눠주었다. 아키상은 수영복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스노클을 받아 들었다. 마침 나의 짐 가방에는 두 장의 비치 타월이 있었고 아키상에게 타월을 빌려줄 수 있었다. 해변에 이르러 그녀는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다. 아마도 잠옷일 것 같은 짙은 갈색 반팔티를 입고 바지를 벗었다. 그리고 스노클을 착용하더니 바로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녀는 멋졌다. 마치 인어가 된 듯이 신나게 해변을 구석구석 누볐다. 나는 멋진 아드리아해와 그녀를 함께 눈에 담았다. 나이가 들면 신체도 당연히 노화되기 마련이지만 그런 생각에 갇혀서 스스로를 단정 짓고 한계를 규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저기 저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는 아키 상처럼.
마지막 섬인 흐바르에 이르러 전망을 보러 가는 길에 1번 보트 투어객들과 마주쳤다. 보트 1과 보트 2 투어객들은 바다 질주 중 마주칠 때마다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안부를 물었다. 특히 거기에는 수영을 하기 위해 비닐봉지에 자신의 짐을 잔뜩 싸들고 다니는 한국인 상훈 씨가 있었다. 그의 나이는 22살. 두 달 간의 자유 배낭여행 중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상훈 씨는 곧 모스타르를 거려 두브로브니크로 갈 예정이라고 자신의 일정을 얘기했다. 나도 마침 그때쯤 두브로브니크로 갈 계획이라 곧 다시 만나자며 연락처를 교환했다.
흐바르 투어까지 마친 뒤, 바다를 한 시간 정도 질주해서 다시 스플리트에 도착했다.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은 또 새로운 느낌을 전해주었다. 아키상과 나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씻고 난 뒤 저녁을 함께 먹자고 약속했다. 나와 그녀는 오후 7시에 해산물 레스토랑 앞에서 다시 만났다.
생선 구이와 함께 와인 한 병을 비우면서 그녀와 나는 서로의 고민과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독일인 남편과 결혼해 뮌헨에서 산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고, 남편은 몇 해 전 세상을 떠났지만 고향인 오사카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얘기를 꺼내면서 일본과 독일은 너무 멀기 때문에 처음에는 친구로 남기로 했지만 자신이 스스로 다른 문을 열었다며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건 용기가 많이 필요하지만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녀와의 저녁은 세 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우리는 오래된 친구가 모처럼 만난 듯 서로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세상에는 너무 멋진 사람이 많다. 여행하지 않았으면 몰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