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여행의 끝

서른 살에 떠난 30일간의 배낭여행 30/30

by Hongchic

입국장에서는 남자 친구가 날 반기고 있었다.

보고 싶었던 마음, 반가운 마음, 미안한 마음이 복합적으로 얽혀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그는 짬뽕은 아니지만 비슷한 육개장 칼국수를 사주었다. 한국 번호로 돌아온 나의 전화기에서는 반가운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관심과 따뜻함 속에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IMG_9473.JPG 날 기다려준 남자친구님

3일 간 휴식을 취하며 나는 치렁치렁했던 머리를 자르고 짐을 정리했다. 엄마가 해준 떡볶이와 김치찌개를 먹었고, 쭈꾸미로 빨간 맛을 완성했다. 부모님은 내가 없는 동안 내 침대에서 하루씩 잠을 자봤다면서, 침대가 너무 불편해서 안 되겠는 말과 함께 가구점에서 새 침대를 주문해주셨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사온 기념품은 각각의 주인에게 돌아갔다.

IMG_9475.JPG 엄마의 김치찌개
IMG_9516.JPG 헤어컷. 샴푸가 조금 밖에 들지 않아서 좋다.

낯선 곳에 적응하는 것에 비해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너무나도 쉽고 빨랐다. 곤지암에 있는 화담숲에서 단풍을 구경하는 것으로 휴일을 마무리짓고 다시 출근길에 올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지금 다니는 본사에서의 근무를 마무리하고 자회사로 이직을 해야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본사에 남는 것으로 결정을 번복했다.

IMG_9522.JPG 아름다운 한국의 가을

그리고..

10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6개월 간 삼성동 자회사로 파견을 나갔다 판교 본사로 복귀해 새로운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플리트비체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남자 친구가 모 대기업의 산학장학생으로 뽑혀 취직이 확정됐다는 희소식을 듣고 난 뒤, 우리는 1월 상견례를 마치고 12월 예식을 목표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모르스키에오코를 함께 다녀온 정하 씨와 프라하 모임에서 우리 집 근처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던 태현 씨, 두브로브니크 친구들 영아 씨와 재현 씨는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월급이 떼일뻔했던 상훈 씨는 스페인 순례자의 길을 걷는 중이고, 슬로베니아에서 만났던 다연 씨는 아직도 일하면서 유럽 전역을 구석구석 누비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온천 맥주를 함께 즐겼던 은서 씨와는 인스타그램으로 간간히 안부를 전한다. 체코 프라하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현동이 오빠는 성수기를 맞아 밥도 못 먹고 바쁘게 일하는 중이라며 소식을 알려왔다. 멋진 언니 아키상과는 아쉽게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도쿄에서 나를 거둬주었던 동생은 살을 빼겠다며 이 삼복더위에도 매일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다.


한 달 간의 여행을 마친 뒤, 일기와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8개월의 위안을 보너스로 얻었다. 언어도 환경도 정말 아무것도 나와 관계가 없는 곳에서 온전히 나를 믿고 지냈던 30일은 지금 나의 어떤 한 부분이 되었을 것이다. 여행 이후, 도무지 혼자만 있기 어려운 시간 속에서 나는 가끔 혼자의 느낌을 추억하기 위해 혼밥을 하거나 홀로 시간을 보낸다.


여행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추억하는 일뿐. 여행을 마치며 나이와 사회적인 시선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더 씩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귀여움과 유머러스함을 잊지 말아야지. 마지막으로 나를 나로서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앞으로 내 인생에 더 재밌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기회가 왔을 때는 도망치지 말아야지. 그리고 엉성한 글이지만 나와 함께 이 여정을 다시 한번 함께 해주신, 내 매거진 통계에 +1을 더해준 모든 이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IMG_6968.JPG 홀로 남겨졌던 첫 날의 기억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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