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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Jan 22. 2019

복잡한 것은 괜찮지만 혼란스러운 것은 문제다

도널드 노먼의 UX 디자인 특강

아후, 요즘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꽤나 골치가 아프다.

작년 상반기까지는 '음악 서비스 제공'이라는 목적이 뚜렷한 애플리케이션을 담당했었는데, 이런저런 상황으로 지금은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가 사용하는 메신저 앱 안에 음악 서비스를 녹이는 작업을 맡게 되면서 혼란의 구렁텅이 속에 굴러 들어가고야 말았다.


메신저와 음악.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어떻게 하면 천생연분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뇌와 논쟁을 반복하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릴 수가 없는 프로젝트다. 늘 뇌가 끓는 느낌으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한 지 어언 6개월. 이것저것 작은 성과를 내기도 했고, 뜻하지 않는 삽질도 있었지만 아수라장 같은 머릿속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런 복잡한 마음으로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바로 도널드 노먼의 UX 디자인 특강.

카이스트에서도 교수를 했었고, 인지과학 분야의 대부라고 알려진 도널드 노먼은 UX를 어떻게 정의할지 궁금했다. 사실 내가 기획이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지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 기획자는 라이선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다가도 누구든 시작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나도 첫 커리어를 홍보로 시작, 갖은 고집과 자기주장과 눈물로 기획자라는 직업으로 전향했다) 기획자로서 눈 앞에 펼쳐진 현상과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관찰하고 어떻게 손질해서 도마 위에 올려 두어야 할지 뭔가 지침 같은 것을 얻고 싶었다.


전체적인 총 평은 굉장히 잘 읽히고 재밌게 쓰인 책이라는 것.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은 다르다고 구분한 부분이다. 복잡한 것은 풀면 될 문제이지만, 혼란스러운 것은 정말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역으로 단순하다고 해서 좋은 UX, 좋은 기획이 아니다고 도널드 노먼은 콕찝어 이야기한다. 영역별 스펙을 복잡하게 설계하더라도 이용자가 스마트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좋은 기획이자 UX 일 터. 개발의 구현이나 관리가 용이할 거라는 계산에서 단순함에 치중해 설계를 하는 것은 마치 손님의 식성을 고려하지 않고 당근 주스 하나만 파는 식당과 같을 것이다. 내 생각이 복잡해지고, 기획에 품이 많이 들 수록 이용자는 서비스를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구나를 느꼈다. 아 내가 좀 더 철저한 인간이 되어야겠구나.


이외에도 어포던스와 기표의 차이를 설명한 대목을 보면서, 왜 내가 6개월간 개고생 한 기능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지. 회사 내부에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지에 대한 약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노먼은 막연히 있는 것은 어포던스, 사용자가 실제로 인지하는 것을 기표라고 정의했다. 사람은 감각의 동물이니 실제로 인지하는 순간부터 서비스는 존재하게 된다. 인지 하지 못한 서비스는 단순히 어포던스에 불과할 뿐. 나의 서비스는 아직 어포던스다. 어떻게 하면 기표로 만들 수 있을까. 내부 홍보나 외부 미디어에 더 적극적으로 어필을 해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내 뜻대로 될지 모르겠지만.


책 전반에 걸쳐 유용한 대목이 펼쳐져 있다. 줄 서기의 심리학이라던지(사람들은 불공평한 줄 서기에 분노한다), 기억(regression)이 더 중요하라던지(실제 경험보다 기억이 이용자의 사용성에 더 영향을 많이 미친다) 독후감을 쓰는 이 순간 책을 펴보지 않았는데도 재밌었던 대목이 술술 생각나는 것을 보면 도널드 노먼은 책 집필에 성공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위안이 되었던 부분은 이용자도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 공급자가 제 아무리 서비스를 잘 만들더라도 이용자의 노력이 없으면 서비스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한국의 많은 UX 디자이너들이 좋아하는 (사대주의가 섞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유튜브 뮤직도 이를 접한 이용자들의 노력이 스미면서 더욱 완성도가 높아졌다. 그러니 이제부터 나의 역할은 이용자들이 기꺼이 학습할 의지를 갖도록 좀 더 흥미로워 보이는 서비스를 만들고, 학습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쉽게 만드는 것. 나와 기꺼이 상호작용할 이용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 목표를 두고 열심히 노력할 to-do리스트가 생겼다.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메신저에서 내가 만든 음악 서비스에 접근한 이용자의 숫자를 확인한다. 어포던스를 기표로 변환해주고, 자신의 에너지를 들여 사용법을 익혀준 고마운 이용자들. 아직도 난제로 남아 있지만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의지를 얻었다. 힘을 내보자.


마지막 가장 사랑스러웠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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