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홍식서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gchic Feb 07. 2019

잡동사니가 전하는 이야기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일단, 미니멀리즘, 심플 라이프, 정리정돈가 곤도 마리에의 넷플릭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요즘 트렌드와 완전히 상반되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덴마크의 헬싱괴르에 사는 귀여운 할머니 아네뜨가 가지고 있는 잡동사니에 대한 내용이 책 전체에 걸쳐 펼쳐진다. 1800년 대에 만들어진 인형의 집, 100년 된 연필 케이스와 연필, 할머니의 아버지 어위가 주워 모은 돌과 나뭇가지, 그리고 몇십 년의 세월을 걸쳐 작성된 크리스마스 북. 이런 것들이 책 속의 주인공이다.

크리스마스 북. 나도 만들어봐야지.
귀여운 할머니 아네뜨

책 속 스칸디나반도 나라에 사는 가족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관찰하며,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졌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 내가 쓰는 글이나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따뜻함을 담아 하나씩 부모님께 소개해줄 수 있을까?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 무척 어려울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부부인 아네뜨와 옌스, 그들의 딸인 줄리가 나누는 대화가 부러웠다. 어떤 사실이나 현상 말고, 내 느낌이나 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엄마 아빠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아네뜨 할머니의 아빠, 어위가 보냈다는 엽서를 구경하며, 부모님과 펜팔을 하는 기분은 어떨지 상상해보았다.

아네뜨가 그의 아버지 어위와 주고받은 엽서

아네뜨 할머니의 집에서는 귀여운 것들이 대접받는다. 귀여운 그릇이나 조약돌. 엽서. 단추. 사진이나 그림. 옷걸이. 미니멀리즘을 실현하려면 모두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내다 버려야 하는 물건들이 가장 상전으로 모셔진다. 엄청난 세월을 버티고 대를 이어 내려온 귀여운 잡동사니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은이 하정은 그 잡동사니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캐내어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다.

나도 보며 탐났던 종이 인형

귀엽고 진보적인 할머니는 나의 장래희망이기도 하다. 나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 늙은이가 되길 소망한다. 누군가가 기꺼이 시간을 내서 들여보고 싶을 만큼 퇴색되지 않고 웃기면서 귀여운 이야기를 담은 할머니. 장난과 즐거움을 잊지 않는 할머니. 책을 읽으며 나의 장래 희망을 먼저 실현한 아네뜨를 만날 수 있어 무척 기뻤다. 무형의 가치를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은 그녀의 아빠와 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 더 이전의 사람과 더더더 이전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견고한 작품인 것 같다.


먹고사는 일 말고,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기준 말고, 틀에 박힌 교육이나 의미를 모르는 형식들 말고, 다른 가치를 추구할 수는 없는 걸까? 사진 한 장. 엽서 한 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충만한 삶을 살아가려면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내가 사는 이 곳에서 귀여움을 잃지 않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저마다 이야기가 담긴 잡동사니들

덧.

책을 읽으며 어릴 적 썼던 시와 글, 그리고 끄적거렸던 그림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더 크고 광활했던 나의 세계를 지켜야만 했는데. 내가 스칸디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귀여운 할머니가 되겠다는 목표가 없어도 저절로 귀여운 할머니가 되었을테지.

매거진의 이전글 제대로 재밌게 일하기에 대한 공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