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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Mar 22. 2019

나의 조용한 삶을 지지합니다

단순하고 규칙적인 정박자의 삶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활성화시켰다.

피로했다. 정사각형 그리드 안에서 각자의 변주곡들이 연주되고 있었다. '나는 행복하고 즐거워', '나의 취향은 고상해' , '나는 활동적이야', '좋은 물건을 샀어'. 물론 나도 내 생활의 어떤 변주들을 정사각형 안에 모아놓고 있었다. 지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책의 일부 문장을 발췌하거나, 활동적인 사람임을 강조하기 위해 외국 어딘가에서 찍은 풍경 사진을 약 500장이나 적재해놓고 좋아요나 댓글을 기다렸다. 좋아요를 많이 받을수록 마치 내 삶이 칭찬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자극적인 변주들만 나열된 SNS 속에서 실제 나의 조용한 삶은 참으로 보잘것없었다. 기상-출근-퇴근-잠으로 점철된 정박자의 생활. 생활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 속에서 나는 지루함과 권태로움만을 느꼈고, 그러면 그럴수록 인스타그램 속 통통 튀고 화려한 타인의 삶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이런 식의 삶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버스 안에서였다.

어느날 출근길, 나는 빨간 버스 안에서 반쯤 감긴 눈으로 인스타그램의 검색 탭을 종횡무진 가로지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여행 사진, 요리 영상, 셀카 등을 의미 없이 탐색하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상냥한 인상의 할머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를 바로 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씨가 좋아서 너무 기뻐요.'라고 아주 짧고 작은 기도를 읊조리셨다. 나는 그제야 내 눈 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창 밖는 어느 때 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근래 손가락에 꼽을 만한 미세먼지 없이 좋은 날. 나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삶 속의 작은 순간을 전부 흘려보내고, 그저 스마트폰 속 타인의 화려한 삶에 코를 박고 있었던 것이다.


친하게 지냈던 동료가 퇴사하며 선물해준 에너 퀸들런의 <어느 날 문득 발견한 행복>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담겨 있다.

'작은 순간을 써 버려라, 그것은 곧 사라질 테니'

나의 조용하고 작은 삶의 순간들. 그 순간들이 충만해질 때 내 삶이 충만해진다. 조용한 삶은 예상 가능하고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깊고 잔잔한 보람이 숨겨져 있다. 여행이나 유흥 등의 변주가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박자의 일상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족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이다.

아무리 남이 좋아요를 눌러 댄다고 해도, 본인이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만족은 찾아오지 않는다. 좀 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되어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차곡차곡 쌓는 삶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일어나서 운동하고 먹고 일하고 책 보고 일기 쓰고 잠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규칙적인 삶. 나의 조용한 일과에 어떠한 즐거움이 베여 있을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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