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 말이 필요 없는 미항, 매일 봐도 좋다.

호주에서 맛보는 독일식 맥주와 학센, 그리고 아이가 아프다.

by 홍어른

+38, 여정 이후 첫 부부싸움.

여정 시작 전, 우리 부부는 약속 하나를 했다. 해외 어느 나라에 머물던지, 누가 잘못을 했든, 혹시 다투게 되더라도 적어도 하루 안에 화해하기. 잘못한 사람이 먼저 사과하기! 생전 처음 와보는 도시에 언어마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보호자인 엄마 아빠가 다툰다면, 5살 아이가 얼마나 불안할까.. 정말 다투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 다툼의 근원적인 이유는 외적인 문제였다. 분명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의 삶과 여정을 방해하고 있다. 그래도 하나 위안이 되는 건, 30분 내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눈을 마주치며 웃을 수 있다는 거다. 우리는 이미 발생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역할과 한계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외부 요인으로 우리의 소중한 여정을 망치는 일이 없기를..


가까스로 남편과 화해를 하고, 시드니 항구가 있는 써큘러키로 향한다. 역에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이 과히 비현실적이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 맑은 하늘은 두 눈을 맑게 하고, 몽골인 부럽지 않게 시야가 트이는 기분. 지금보다 눈이 더 맑고 시력이 좋다면 더 큰 감동을 느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선물 같은 우리 여정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시력을 보호해야겠다.


어느새 흔들리는 페리에 실려 온몸으로 바닷바람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으로만 보던 오페라 하우스를 두 눈에 가득 담는다. 십수 년 전 에펠탑을 처음 본 이후로, 오랜만에 건축물을 보며 온몸의 전율을 느낀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시드니항의 엄청난 위용 덕분일까 오페라하우스가 다소 왜소하게 느껴진다. 세계에서 가장 긴 철제다리인 하버브리지와 페리가 만들어내는 하얀 물줄기, 정박해 있는 대형 크루즈선과 앤티크 한 돛단배, 새파란 하늘과 녹지가 어우러져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전경을 선사한다. 시드니항의 아름다운 전경에서 아주 많은 사진을 남겼다. 평생 바라보며 살고 싶은 만큼 아름다운 시드니항에서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다.


뿌뿌- 페리가 출항한다는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산책로를 걷는 중 유모차를 밀며 걷는 한국여자들을 만났다. 아마도 한국 주재원 부인들의 모임 같다. 아름다운 써큘러키를 마음 맞는 육아동지들과 걷는 그녀들의 표정이 밝다. 나도 시드니에서 산다면 행복할까?


“오빠, 사실 발리나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시드니에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44,

2015년 8월 9일, 남편의 끊임없는 대시에 넘어가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어느새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태어난 정우와 함께 호주 시드니에 와있다. 우리는 세계를 돌며, 머물며, 세상을 배우는 중이다. 호선생은 20대부터 세계여행에 대해 늘 상상했다. 연애기간에도 꼭 나랑 결혼해서 세계여행을 가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 그가 매일매일 간절함으로 바라온 꿈은 아니겠지만,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그 꿈이 결국엔 이루어졌다. 꿈은 이루어진다.


시드니는 언제 어디서든 푸릇푸릇하며 광활한 공원을 쉽게 마주한다. 어느새 도심 속 공원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익숙해졌다. 어떤 공원을 걷더라도, 설령 도심 속 공원일지라도, 자연 속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다는 사실에 몹시 만족스럽다. 남편과 함께 걸으며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제주도처럼 공기 좋고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다는 대화를 나눈다.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자연과 맑은 공기가 주는 가치가 높다. 비록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의 영혼에 자유로운 날개를 달아주자.

시드니는 언제든 살고 싶은 도시다. 오늘도 아름다운 시드니항이 있는 Circular Quay를 다녀왔다. 보타닉 가든을 지나 해안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벌써 다섯 번째 방문이지만,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경치에 온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얼마를 봐야 그만 보고 싶어 지려나. 나중에 시드니에 다시 온다면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보이는 곳에서 머물고 싶다.





+45,

오늘도 여지없이 시드니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구글맵에서 알려주는 정류장 정보와 달라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종알대는 꼬마 정우의 한국어를 들은 한 여자교포분이 예쁜 미소가 만연한 채로 우리에게 다가와 이런저런 도움을 주셨다. 20년째 시드니에 살고 계신 스텔라 언니가 적극 추천해 주셨던 Rock의 독일 Pub에 가기로 했다. 개인적으론 호주 음식이 그리 맛있다 느끼지 못했는데, 스텔라 언니 말로는 독일 정통식 맥주와 안주도 괜찮고,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하기 좋은 분위기라는 말에, 주저 없이 pub <Munichi>로 입장한다. 족히 200평은 될 거대한 규모에 독일 뮌헨호프느낌이 물씬 풍긴다. 생맥주 탭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만개했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호선생이 내게 묻는다.

이정아, 넌 술이 그렇게 좋니??
(응, 당연한 거 아니야?!!)


<Munichi>의 학센과 소시지, 맥주는 호주에서 경험한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 1위라 해도 무방할 만큼 완벽했다. 바삭하게 구워낸 겉 표면과 촉촉하고 부드러운 속살.. 살코기의 적당한 지방은 씹을 때마다 풍미를 더한다. 더구나 크리스피하게 구워낸 껍질 본연의 바삭함과 은은한 불향까지 더해져 입 안에 폭죽이 터지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밸런스가 완벽한 돼지고기 학센을 먹으며 온몸으로 행복을 느낀다. 함께 제공된 매쉬드 포테이트와 그레이비소스, 시나몬 향의 사과 졸임까지 학센의 풍미를 더한다. 첫 입을 먹자마자 우리 부부는 눈을 마주치며,, 너무 맛있어!!!!! 를 외쳤다. 더구나 한국에서 보기 힘든 1L 맥주잔이라니. 그야말로 비주얼 깡패다. 맥주의 시원한 온도를 지켜주는 두터운 맥주잔의 두께부터 풍성한 홉의 향, 완벽한 탄산과 거품까지.. 독일 옥토버페스트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맥주와 안주였다.


지금도 생각하면 군침이 도는 Munici의 학센과 맥주.

[남편의 일기 중...]
이정이는 포커페이스는 아니다. 술을 마주할 때 그녀의 표정은 그 어떤 상황에서의 표정과 다르다. 일단 눈 자체가 다르다. 연애와 신혼 시절 사랑하는 나를 볼 때의 그 눈에 가깝다. 지금 나를 보는 그녀의 눈은 그때와 다르지만, 술을 면전에 둔 그녀의 표정은 행복, 즐거움, 기쁨, 감사 모든 긍정의 단어를 넣어도 과하지 않다.



엄마 아빠가 학센과 맥주를 마시며 온몸으로 행복을 만끽하는 와중, 정우의 얼굴이 피곤해 보인다. 만보계 어플로 오늘 걸음 수를 확인해 보니 헉! 13,700보!! 대체 5살 꼬마는 얼마나 걸은 거야?? 그간 엄청난 체력과 먹성을 보여주던 정우가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지 자꾸 누우려고 한다.


“정우야. 졸리는구나. 많이 피곤해?”

“응, 너무 졸려. 저기 가자. 저기 가서 누울래." 우리는 테이블을 부스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정우를 눕혔다.

“엄마 추워. 너무 추워.”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서 덮어줬다. 아무리 졸리다 해도 맛있는 학센을 먹이고 싶은 엄마 욕심에 유튜브를 보여준다고 꼬셔서 다시 일으켜 세웠다. 억지로 몇 입 먹여보지만, 이내 비틀거린다. 혹시나 싶어 이마에 손을 대보니 여지없이 열이 난다. 아까 우비를 입혀 부슬비 내리는 보타닉가든을 걸을 때부터 춥다고 했는데.. 미련한 엄마아빠가 아들이 아픈 줄도 모르고 그저 시드니 경치에 빠져 헤헤거렸다. 여정 이후 일교차가 가장 심한 하루였음에도 오전부터 계속해서 걸었다. 놀이터에서도 뛰어놀았던 아이는 더 많이 걸었겠지. 정말 이렇게나 바보 같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오스트레일리아 뮤지엄부터 보타닉가든을 지나 오페라하우스까지..
비가 내리는 스산한 날씨에 우비를 입고 해안산책로를 걸었다. 춥다고 할 때부터 알아챘어야 하는데...

허둥지둥 집에 와 체온을 재보니 39.4도다. 오랜만에 보는 고온에 깜짝 놀랐다. 평소에도 약 먹이기가 쉽지 않아 요구르트에 해열제를 섞어 아빠와 빨리 먹기 대결을 하면서 약을 먹였다. 하지만, 이내 먹었던 것을 모두 토해낸다. 또 한 번 아차 싶었다. 이미 컨디션이 바닥으로 떨어진 아이에게 무차별적으로 학센과 소시지를 먹였으니 탈이 나는 게 당연하다. 평소 유튜브를 보여주지 않으니, 밥을 잘 먹어야 계속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정우도 입안에 막 집어넣었을 거다. 워낙 잘 먹는 아이라 아무 생각 없이 먹인 엄마아빠의 불찰이다.


미련한 엄마아빠가 비 내리는 보타닉가든에 흠뻑 빠져서 마냥 걸었지.
봄, 여름에 오면 더욱 아름다울 시드니의 보타닉가든.


아이가 아플 때면 그간의 모든 걱정은 사라지고 철학적 사고가 시작된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세 사람의 건강이다. 예산을 좀 아껴 써야겠어,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다녀보자는 생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다시금 느낀다. 최근 코로나 재확산에 원숭이두창까지 퍼져가기에 덜컥 겁이 난다. 모든 전염병은 고열을 동반하기에 걱정이 커진다. 정우는 자면서도 힘든지, 자주 깨어나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엄마~ 힘들어.. 으앙~"하며 내게 안긴다. 많이 아프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호선생은 정우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오늘 아침 녀석에게 모질게 잔소리를 늘어놓은 것을 후회한단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녀석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쓰리단다. 다행히 해열제를 먹고 잠든 지 2시간 후 정상체온으로 돌아왔다. 밤새 열이 다시 오를 수 있으니, 남편과 교대로 열체크를 해가며 얼른 좋아지기만을 기다려본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남편의 말에 다시금 정신을 다잡아보는 밤이다.





[아래는 귀여운 꼬마의 여정사진들.]

엄마! 2층 지하철이에요!! 사진찍어주세요!!

시드니는 철도, 지하철, 트램, 버스가 잘 돼있다. 시드니에서 3주 머무는 동안 뚜벅이로 대중교통을 활용했다. 택시를 탄 적이 거의 없이 걸어 다녔다. 모든 vehicle에 진심인 꼬마가 정말 좋아했다.



시드니는 항구도시로 페리가 잘 발달돼있다. 우리의 발이 되어준 페리들 ^^

페리를 타고 이동하며, 저 멀리 다운타운의 마천루를 바라보기도,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바다 위에 정박해 있는 멋진 요트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세계적인 미항을 만든다. 사진실력이 요원해 눈에 보이는 것만큼 멋진 사진을 담지 못해 아쉽다.



시드니 항이 있는 써큘러키 도로를 따라 걸으며, 꼬마 사진을 많이 담았다. 최근 들어 부쩍 성장한 느낌..

아이는 시드니항이 너무 아름답다며, 사진 찍어주세요! 라며 연신 포즈를 취했다.

꼬마가 써큘러키를 좋아한 이유는 페리 선착장 앞에 있던 맛있는 젤라토 때문 ^^ 레인보우 스프링클을 듬뿍 얹은 바닐라맛이 꼬마의 원픽.

"정우는 세계여행하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해?" 라고 물으면... 언제나 꼬마의 대답은 한결같다.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 음.. 그리고 또 비행기 볼 때..^^"


사랑하는 우리 가족 셋이서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만하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뭔지 절절히 깨닫게 해주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

늘 건강하고 씩씩하기를...



앞으로는 또 어떤 일들이 우리 가족을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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