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왔다. 언제 다시 고열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하루 더 푹 쉬며 지켜보기로 했다. 덕분에 오늘은 여정을 떠난 후 처음으로 완전히 쉬기로 했다. 무릉도원은 아니지만, 이렇게 평온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우리의 이제까지 방문했던 도시들은 살고 싶은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현재까지는 호주의 모든 도시들은 살고 싶은 도시다. 호주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공기가 맑다. 끝없이 펼쳐진 공원과 녹지 정원이 도시 곳곳에 위치했다. 그저 걷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과 티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무릉도원(?)을 온 몸으로 즐기는 아빠와 아들, 호주의 신선한 식재료로 소고기스테이크, 아스파라거스, 쌀밥에 미역국, 김구이까지! 많이 먹고 얼른 싹 낫기를 바라.
집에서 머무는 내내, 여정 떠난 뒤 잊고있던 집밥 만들기에 돌입했다. 내노라 할 요리실력은 아니지만, 두 남자가 식사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으니 썩 엉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
한인마트에서 공수한 김밥김과 쌀밥, 당근, 시금치, 계란, 치즈를 넣은 집김밥! 김발없이 말으니 쭈글쭈글하지만...그래도 진짜 맛있어요. 말해주는 아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여행 시작 후, 나는 어느새 냄비밥 고수가 되었다. 뜨끈뜨끈한 카레와 삼겹살구이, 김치도 구워먹고, 신선한 과일 디저트도 잊지않기!
우영우 드라마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은 매일 매일 우영우와 함께. (우리 여정에서 우영우 드라마가 없었다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신선한 소고기가 심지어 저렴하기에, 주 3회 스테이크 섭취는 필수, 호주 와인도 너무 맛있고, 가끔은 크림파스타도 만들고요. 부족한 실력으로 시드니에서 공수한 식재료로 집밥해먹기!
+46, 엄마의 존재 (남편 호선생의 시선에서)
정우의 컨디션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지만, 아직 목이 잠겨있는 것 같아 하루 더 쉬기로 했다. 이틀 연속 집에 틀어박혀 있으려니 이정이 특기인 신경질이 조금씩 시작한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지만 온전히 나의 업보다.
“오빠. 나 산책 좀 다녀올래. 자꾸 퍼지는 것 같아서, 안 되겠어.”
“엄마, 그러면 나도 나갈래, 나하고 같이 나가자.”
“안돼. 정우는 아직 감기가 다 안 나았잖아.”
“싫어. 싫어. 나도 갈래”
녀석은 엄마 껌딱지다. 그래도 방법이 있다.
“정우야. 아빠하고 같이 마트 갈래?”
잠깐 생각하더니 “그래 알겠어. 마트 가자”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대형마트 체인 Coles와 Wulworth가 있다. 그중 숙소 3분 거리에 Coles가 있어 이미 우리 가족에게 친근한 곳이 되었다.
정우가 사랑한 호주의 대형마트 장보기, 물건을 넣을 때마다 입으로 띠! 띠! 소리를 내며 ㅎㅎ
엄마 껌딱지인 정우가 아빠를 선택한 건 내가 좋다기보다는 마트에서 장바구니에 물건 담기 놀이를 한 뒤 셀프계산을 하고 싶어서다. 당연히 장바구니엔 아무런 센서도 없지만, 바구니 윗부분에 물건을 갖다 대고 자기 목소리로 ‘삐’ 소리를 내며 담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너무 귀엽다.)
마트놀이 덕분에 사랑하는 아내에게 45일 만의 자유시간을 선사할 수 있다. 그녀의 자유시간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Cole마트를 40분 간 뱅뱅 돌았다. 요구르트 하나 사는데 상황 별 이유를 대며, 아이와 역할놀이를 해주었다. 왜 집에 안 가냐고 캐묻는 녀석을 상대로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짜파게티를 사러 한인마트를 가자고 꼬셨다. Coles에서 나와 한인마트로 이동할 때, 이정이가 반대쪽에서 걸어오고 있길래, 정우에게 “정우야. 저기 봐봐” 하며 엄마를 보지 못하게 시선을 돌렸다. 만약 녀석이 엄마를 발견했다면 자석처럼 달려갔을 거다.
엄마란 존재는 그런 것 같다. 아빠인 나는 평생을 살아도 경험해 볼 수 없을 엄마라는 존재. 이 세상 그 어떤 동물에게도 엄마의 존재는 똑같을 것이다. 그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한 미사여구들이 엄마와 자식 사이의 감정을 훼손할 뿐이다.
답답한 엄마의 Surry hills 산책 중..
동네 유명한 베이커리카페. 늘 줄이 긴 맛집인데 모처럼 줄이 없다.
맛있는 파이와 케이크를 사들고 엄마가 간다.!!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아빠, 아빠, 일어나 일어나, 나랑 놀자”
“아빠 조금만 더 자야 해. 5분만 있다가 일어날게.”
“안돼, 안돼, 지금 일어나 일어나.” 하면서 뒤통수에 손을 넣어 목을 접는다. 일반 성인도 자고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기 힘들 텐데, 녀석의 힘이 많이 세져서 내 몸이 살짝 접힌다. 한참 자고 있던 내겐 그리 좋은 느낌이 아니다. 마치 어릴 적 엄마가 나를 깨우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 일어나나?? 저게 우얄라꼬 안 일어나고 자빠졌노!! 안 일어나나.”
사는 동안 세상 근심 다 떨치고 마음 편한 날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 우리 엄마. 그런 우리 엄마가 이제 어느덧 70이라니. 지금도 어떻게 지내는지 물으면 잘 지낸다고 한다. 못 지내는 것 같은데도 잘 지낸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려 하고, 며느리에게도 심하다 싶은 정도로 배려를 하려 한다.
“아무리 내가 잘해준다 해도 안 그렇다. 시댁은 불편할 수밖에 없어.”
이정이는 나를 만난 것보다 우리 엄마 같은 시어머니를 만난 게 더 행복하다고 하니, 참 좋은 시어머니인 건 맞는 것 같다. 주변에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 한 집도 있다. 무탈한 것만큼 평온한 것도 없다. 우리 엄마는 상황을 무탈하게 만든다.
“나는 우리 시어머니처럼 그런 시엄마가 될까? 나는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 같아.”
이정이를 혼자 내버려 두면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또 있구나.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 오래 살아야 한다. 정우의 평온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오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