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로운 숙소로 이동하는 날이다. 숙소찾기란 여정 중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다. 처음엔 설렘이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가격 대비 괜찮은 숙소를 발견할 때의 희열도 있었다. 그러나 데이터와 경험이 축적되면서 느끼는 건.. "싸고 좋은 건 없다."
싼 가격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가격 대비 완벽한 숙소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과감히 양보할 건 양보하고, 큰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한다. 조금이나마 괜찮은 숙소를 찾기 위해 우리는 밤잠을 포기해 가며 샅샅이 뒤진다. 다운타운에서 멀어질수록 숙소의 퀄리티가 높아진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때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에, 지금은 숙소 찾기의 기술이 절실하다.
시드니항까지 35분 거리에 위치한 '씨포스'라는 시드니 북부의 주택가의 예쁜 집을 빌렸다. 씨포스는 행정구역 상 시드니가 아니란다. Stela 언니도 20년 넘게 시드니에 살면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동네이지만, 부자동네라고,, 그 말을 들으니 괜스레 현혹이 된다.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있어 보이는 느낌.
Seaforth를 구글링 해봐도 주위에 가볼 만한 곳이 거의 없는 조용한 동네다. 첫 번째 숙소가 있던 워터루에서 버스를 타고 하버브리지를 건너가는 길에는 굽이굽이 장관을 이루는 부두들이 가득하다.
저녁 숙소 근처 산책하는 길, 보랏빛 하늘과 멋진 베이...
Seaforth 숙소는 현재까지 여정 중 가장 공간적으로 완벽하다. 호치민 사이공로열 28층도 어마어마한 뷰를 선사했지만, 이 숙소는 Cozy 함의 정수라 할 만큼 우리 마음에 쏙 들었다. 공간이 선사하는 편안함을 집안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나도 집을 새로 꾸민다면, 벽 한켠에 멋진 대형 액자를 하나 걸어두고 싶어.”
거실 벽에 밝은 톤의 대형 액자 2개가 벽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 집 전체가 따뜻하면서 화사하다. 단출하지만 선반벽에 꽂아 둔 책들은 렌트한 숙소가 아닌 진짜 집 다운 집 느낌을 준다.
발코니에서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별 보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한국에 돌아가 혹시 숙박업을 하게 된다면 참고할 만한 점이 정말 많다. 가장 크게 배운 건, 우리가 사는 집이라 생각하여 설계하고, 필요한 인프라를 미리 준비해둔다는 점이다. 이 집은 호스트가 살던 집이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따뜻하고 온통 다정함으로 가득하다. 아주 가끔 필요한 물건이지만, 혹시 있으려나? 하고 서랍을 찾아보면 필요한 모든 물품이 비치되어 있다. 없는 게 없다. 다른 이의 후기에서 사진보다 실제가 더 좋다는 글에 백번 공감하는 바다. 모든 것이 정갈하고 깔끔해서 결벽과 강박증이 있는 내 마음에도 쏙 들었다.
앞으로의 여정 내내 이런 숙소에서 머물 수 있다면, 남은 날들이 너무 편안할 것 같다. 너무 좋은 곳을 일찍 경험한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다. 숙소 근처에 마트 유무와 다운타운까지의 거리는 우리 같은 초장기 여행자에게 중요하지 않다. 먹고 자는 공간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이며, 휴식이 필요한 날에는 더더욱 편안함이 간절해진다.
부디, 예산에 쫓겨 '집 다움'을 양보하지 말자.
무엇보다 중요한 사색과 여정 준비, 미래 준비 그 어떤 것도 온전할 수 없을만큼 방해받아선 안된다.
여유를 갖자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두툼하고 신선한 초밥과 새우튀김, 킹크랩, 가리비 구이까지.. 맛있는 해산물로 호사스러운 한 끼, 시드니 피쉬마켓.
매월 격주 토요일 밤 8시 30분부터 Darling Harbor에서 불꽃놀이가 열린다. (호주 동절기 7~8월 기준) 피시마켓에서 맛있는 해산물로 든든하게 저녁을 먹고, 아이와 남편이 사랑하는 불꽃놀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달링하버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불꽃놀이의 매력은 남녀노소 모두를 어린아이로 만든다는 게 아닐까? 드디어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평범한 불꽃놀이었지만, 하늘에 펼쳐지는 불꽃을 보는 것만으로 입가에 미소와 함께 행복이 온몸을 감싼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강한 몰입과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기분마저 든다.
“정우야, 불꽃놀이 보니까 어땠어?”
“엄마, 너무너무너무 좋았는데, 너무 짧았어.”
그랬다. 한 30분 넘게 해 주기를 바랐지만, 짧은 시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정아, 올 연말에 불꽃놀이를 어디서 보게 될까?”
“ㅎㅎㅎ 오빠, 연말에 어디에 있던 불꽃놀이를 볼 수만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아."
세계 여정의 한복판에 있을 2022년 12월 31일의 밤 우리는 어디에서 불꽃놀이를 보게 될까?
가장 멋지고 긴~~~ 불꽃놀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겠다. ^^
아름다운 달링하버 위로 해가 저물고, 어둠이 찾아온다.
소박하지만, 매주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시드니 시민들이 너무나 부러웠던 하루.
오늘의 불꽃놀이도 피시마켓의 두툼한 스시와 킹크랩구이도 오전의 사건을 떠올리면 호사스러운 사치일 뿐. 우리가 머무는 Seaforth는 지대가 높고 경사가 가파른 언덕이 많아, 다운타운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가파른 계단을 걸어 좁은 숲길을 가로질러야 한다.
내가 아이 손을 잡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던 중, 갑자기 정우가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으악!!!!!!!! 엄마 아아!!!! 아, 아 아아아!!!!!!!”
“정우야, 왜 그래, 왜 그래?? 괜찮아?!!!”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악!!!!!!” 소리치며 경악과 고통이 뒤섞인 울음을 터트린다.
정우가 작은 손으로 본인의 오른손을 부여잡고 있다. 너무 놀랐는지 오른손으로 주먹을 꽉 쥔 채 놓지 않으려 했다. 우리는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정우야, 왜 그래? 손이 아파? 어디가 아픈 지 보려면 손을 펴야 해.”
“아니 아니. 싫어 싫어.”
동그란 큰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데, 얼굴색이 사색이다. 힘을 줘서 정우의 손을 강제로 펼쳤다. 손 안에서 빨간빛의 벌레 한 마리가 아래로 떨어졌다. 눈에 움직임이 보일 정도의 크기로 한국에서 못보던 곤충이다.
“정우야 벌레한테 물렸어?” 정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강제로 폈던 손은 다시 주먹이 되었다.
"아파? 많이 아파? 어떻게 아파 정우야? 손바닥을 펴야 엄마가 어디가 아픈 지 알 수 있잖아.”
손바닥을 펼치려다 이내 주먹을 쥔다. 손가락을 펴는 순간 고통이 오는지 사지를 떨면서 다시 오므렸다. 손가락을 펼치려고 하면 강하게 뿌리쳤다.
“벌레에 물린 것 같아. 어떡하지? 정우야. 일단 계단이 위험하니까 아래로 내려가자.”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손을 확인해 보니, 엄지손가락 아래 도톰한 살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다.
너무 꼭 쥐고 있고, 억지로 펼치더라도 이내 다시 주먹을 쥐기에 얼마나 부었는지 알기 어려웠다.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근처에 병원에 있나?”
“응.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 다급한 손으로 구글 지도 검색을 해서 병원을 찾는다.
“ㅇㅇㅇ 아이 전문 병원으로 가면 될 것 같아?"
“여기서 얼마나 걸려? 여기서 가까워?”
“일단 시내로 가야 해”
“정우야 괜찮아? 손 한 번 볼 수 없을까?”
“그래, 정우야. 엄마 아빠가 정우 손을 봐야 어떻게 아픈 지 알 수 있잖아.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도 손을 보여 줘야 해.”
남편은 정우 이마를 계속 만지며 열이 있는지 체크했다. 혹시 모를 경련이나 몸 떨림은 없는지 꼭 안았다.
다운타운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의 이마를 몇 번을 만졌는지... 제발 열나지 않기를 속으로 빌고 빌었다.
버스 안의 아시안 한 분이 다가와 밴드 2개를 건네주었다. 급박한 일이 생겼구나,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했다는 정황을 쉽게 알아차릴 만큼 우리 부부가 너무 놀라고 걱정 가득했던 모양이다.
도대체 어떤 벌레에게 물린 걸까? 아무 일 없는 걸까? 호주는 미지의 청정지역으로 다양한 동식물이 존재하는 나라이기에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이 몰려왔던 것 같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평소와 다르며, 몸의 반응 역시 다르기에, 수십 번이 넘게 아이에게 괜찮은 지 물었다. 다운타운까지 가는 35분 간 열은 나지 않았고, 몸의 이상 반응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나아지는 듯했다. 병원 근처에 내려서 물으니 전혀 안 아프단다. 붓기 하나 없이 손바닥도 가라앉았다. 순간 따끔한 느낌에 크게 놀란 모양이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무탈하게 지나갔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잡다한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진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더 악랄한 벌레에게 물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된다.
피시마켓에서의 즐거움과 불꽃놀이의 장엄함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또 한 번 느낀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세 사람의 건강과 안전임을 다시 한번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