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다운타운에서 차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블루마운틴. 안데스, 록키 산맥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산맥. 이름 그대로 '푸르른 산'이라는 뜻으로, 숲의 90% 이상이 유칼립투스 나무로 되어있다. 유칼립투스 나무 특유의 알코올 성분이 햇볕과 만나면 푸르게 반사되는 성질이 있어, 초록초록한 산이 거대한 바다처럼 푸르게 보인다. 한국의 산과 달리 봉우리가 없는 평산으로 멀리서 보면 바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둡게 보이는 게 구름 그림자란다.
'대자연'
우리는 흔히 강조하거나 우월함을 과시할 때 '대’를 무분별하게 남발하지만, 자연 앞에 대’가 붙은 '대자연'은 그 어떤 단어보다 독보적이다. 그런 대자연을 느껴볼 수 있는 건 대단한 축복 아닐까.
광활한 숲에서 뿜어내는 편백나무의 11배 이상 농축된 피톤치드, 그 보약 같은 공기가 폐를 당황스럽게 한다. 욕심을 내어 길고 깊은 호흡이 이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공기를 마시고 있다. 1000m 이상 고지대에 위치한 로라마을, 카툼바마을에는 100세 이상 장수 노인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좋은 공기와 물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초식 공룡이 먹었다는 유칼립투스 나무로 뒤덮인 산이 지평선 너머에 펼쳐져 빼곡하게 온 천지를 뒤덮고 있다. 저 멀리 지평선까지 온통 숲이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까지 바다가 펼쳐진 것처럼, 온 사방이 나무로 가득 찼다. 지난 호주 산불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멋진 산의 모습을 되찾았다.
지구 곳곳이 많이 아프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무런 행동의 변화도 없었다. 부끄럽지만 더 이상 그래선 안된다는 최소한의 양심이 고개를 내민다. 지평선 너머로 뻗어있는 블루마운틴이 지금 모습 그대로 간직하길 바라본다. 어쩌면 이번 여정이 내 삶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꿀지도 모른다. 비록 자연의 티끌도 안 되는 존재겠지만, 내가 이렇게 자연을 사랑했던가 싶을 정도로 지구를 보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고 싶은 동기부여가 솟구친다. 항상 무언가를 성취하고 얻기 위해 자연을 도륙하고 있던 건 아닐까?
내 삶은 성실한 자연파괴자였다. 그러나 블루마운틴을 오르며 그 아름다움과 깊은 장엄함에 대한 감탄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살아왔던 대로 사는 게 맞는지 되묻게 된다.
블루마운틴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블루마운틴의 명소 에코포인트, 세 자매봉, 킹스테이블, 웬트워스폭포 트래킹 코스를 다녀왔다. 트래킹 코스가 꽤 험한 편이라, 힘들었을 텐데 잘 따라와 준 57개월 꼬마 정우가 대견하다. 사진실력이 미천하여 눈에 보는 것만큼 멋지게 남기지 못해 아쉽다.
꽤 험준한 트래킹 코스를 잘 따라와줘서 대견한 아들.
귀여운 포즈로 투어참가자분들께 박수를 받았던 어린이.
블루마운틴 선셋투어의 사진들,
킹스테이블의 아찔한 절벽에 앉아 멋진 인증샷을 남기는 젊은이들을 그저 바라만 보며,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하는 우리가 자책하고 있으니, 가이드는 내게 "가진 게 많아서 그래요. ㅎㅎ" 라며 위로해 주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더라. 오늘도 건강하고 즐겁게 하루를 보낸 것에 감사하자. ^^
어느덧 호주에서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 마지막 날만 되면 습관적인 아쉬움이 몰려온다. 나쁜 습관들이 온몸에 쌓여, 끝내주게 멋진 호주에서의 한 달 살기를 너무 헛되이보낸 건 아닌지 아쉬움이 커져만 간다. 부끄럽지만 자기 위로를 해보자면, 자연에 대한 숭고한 인식과 기후위기의 엄습을 몸소 느낄 수 있던 점은 한국에만 머물렀다면 얻지 못했을 깨달음이다. 수년이 흘러 이번 호주 살이를 떠올린다면, 삶의 변화를 가져다준 '작지만 강한 시작'으로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2022년 여름 한 달간 서울에서는 80년 만에 가장 강력한 물난리가 났고, 호주살이 25년 차 블루마운틴 투어가이드는 이번처럼 수개월 간 비가 계속해서 내린 적은 없었다며, 시드니의 겨울이 이렇게 추웠던 적도 없단다. 유럽에서 가장 추운 런던이 여름기온 40도가 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투자자라면 복리의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것이다. 지구 파괴 역시 복리의 재앙을 피할 수 없다. 투자는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있어 열기가 자연스럽게 식지만, 복리의 재앙이 부르는 자연 파괴는 내려가는 방법을 모른다. 그렇기에 자연의 악순환으로 치닫는 복리는 그 속도가 상상을 하기 힘들 정도로 빠를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이렇게 강력하게 참담한 각성이 온 적이 있는가? 한밤중 모두 잠든 시간에 소파에 앉아 그 두려움을 몸소 느끼고 있다. 내 안의 사악함은 이런 상황에서 나의 자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늘려갈 수 있을지에 대한 시사점을 찾으려 한다. 너무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자.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내가 투자한 자산이 의미 있는 곳에 사용될 수도 있다.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충격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인간의 망각은 언제 서울이 그런 물난리를 겪었는지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그렇기에 상황은 나아질 수가 없다. 이제 앞으로의 과제는 지구와 자연을 치유하고 보전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지기보다 그 수명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암울하고 슬프고 무섭지만, 그런 세상에서 생존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을 해야 한다. 그것의 무게가 얼마가 되었든 간에.
볼 때마다 감격과 감사함을 느꼈던 오페라 하우스와 시드니 항을 보며, ‘해수면이 어디까지 상승할까, 오페라 하우스는 그래도 높은 곳에 있으니 잠길 일은 없겠지? 이런 유명 관광지가 위협받으면 큰 영향이 있겠다.’라며 씁쓸한 사색을 하는 내가 안타깝지만, 현실 인간인 내겐 그저 관심사일 뿐이다. 내가 나라를 구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도 있다. 세상은 기후와 자연의 파괴로 인해 수년 안에 인정하고 싶지 않을 운명을 맞을 것이다. 나도 하나의 미물과 다름없기에 내 가족과 주변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그 정도 그릇 밖에 되지 못하지만,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생존법을 찾아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환율과 물가에 적지 않는 돈을 썼지만, 절대 아깝지 않을 소중한 경험을 했다.
너무나 아름답던 시드니 천문대. 선셋시간에 꼭 가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아름다운 시드니항과 물들어가는 선셋과 함께 분위기에 흠뻑 취했던 날들.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시드니 항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것 같아”
“시드니에서 살고 싶어. 떠나려니까, 너무 아쉽다. 다른 도시에 있을 때 이런 느낌까지 안 들었는데, 시드니는 정말 살고 싶은 곳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