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첫 숙소를 예약할 때 지금 숙소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호스트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서 숙소를 정하는 기준이 많이 달라졌다. 호텔에 머물 땐 의식조차 못했지만, 에어비앤비에서는 호스트가 어떤 사람인지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Young은 지금까지 경험한 그 어떤 호스트보다 완벽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그의 진심을 다하는 서비스는 사업가로서 당연한 마인드지만, 의사소통의 편안함과 전체적인 서비스의 느낌이 다르다. 인연을 맺은 고객을 위해 진심을 다하며, 상황을 조율하며, 효율적으로 돈을 추가로 더 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듯 했다.
이정이와 여정을 떠나기 전부터 “우리 제주도에서 펜션 하나 할까? 우리도 옆에서 살면서 말이야.”라는 대화를 하곤 했다. 서비스 업에서 십수 년 종사한 나조차도 숙박업 자체가 쉽지 않음을 잘 안다. 남의 비위를 맞추며 배려하고 역지사지로 인내하며 생각해야 하기에 말 그대로 감정적 희생과 난관을 받아들여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인지 Young의 고충이 느껴진다.
“사장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봤어요. 와이프님도 미인이시고, 두 따님도 너무 예쁘던데요.” 서비스업을 오래 해온 또 다른 사람, 바로 이정이가 역시 짬 내 나는 멘트를 날린다. 참 이런 거 잘한다.
“네, ㅎㅎㅎ 그런가요? 사실 딸아이가 피겨 스케이팅을 합니다. 자메이카에서 봅슬레이 하는 것처럼, 하와이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합니다.”
“아아, 피겨 스케이팅이요?”
“네, 본인이 워낙 열정 있고 재미있어해서 네가 원하는 거 해보라고 부모로서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부모가 다 그런 건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가 자식을 위해 바치는 헌신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자양분이다.
“만약에 아드님(정우)이 예체능 쪽 진로를 원하면, 한 번 깊이 있게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한마디가 지금껏 얼마나 자신 삶을 태우고, 데치고, 삶고, 우려냈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하와이에서 무엇을 느꼈냐 묻는다면, '개인 숙박 사업을 한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교과서 하나를 받았다.'라고 답할 것이다. 한인 선교사님 숙소 소개, 렌터카 예약 제안, 하와이 전반적인 정보 등 Young님의 현지 네트워크가 얼마나 풍부한지 알 수 있었다. 본인이 보유한 숙소 외에도 주선과 알선을 통한 부수입 역시 중요하다.
호스트와 이렇게 가까워지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한국인 호스트기에 가능하겠지만, 모두 다 그럴 순 없다. 내가 늘 얘기하는 '나를 만만하고 편안하게 느껴야 한다'라는 것처럼 이 분도 그렇다. 만만하다 느낄 만큼 편안한 서비스가 가장 최고다. 편하게 단체 채팅방을 만들고, 메시지를 보낼 때 단어 선택의 고민이 적다. 만약 현업 복귀를 하던 내 사업을 하던 Young 님이 우리에게 선사한 서비스를 꼭 기억해야겠다.
여정 이후 잊을 수 없는 스펙터클한 많은 날을 경험하지만, 결국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가장 큰 자산으로 남지 않을까. 그들과 얼마나 더 조우하고 소통할지 알 수 없지만, 방랑객인 우리에게 베풀었던 호사와 그들이 보여 준 삶의 이야기와 그들을 통해 얻게 된 깨달음은 이미 여정 투자비 상당수를 회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일을 오래 했지만 400일 세계 여행하시는 분은 정말 처음 뵙네요.”
우리의 여정이 특별하긴 한 모양이다.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가? 싶을 때가 있지만, 매번 바뀌는 숙소, 컨디션 관리, 그럼에도 하루를 알차게 보내기 위한 노력, 정우 공부, 다음 여행지 알아보기, 다음 국가 비행기 예약, 숙소 찾기, 매번 짐 정리, 그리고 항상 어디 다닐 때 안전 챙기기. 후. 더 이상 나열을 못하겠다. 숨이 턱턱 막힌다. 대단한 일 까지는 아니어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33층 숙소 발코니에서 바라본 와이키키 해변의 모습
숙소에서 바라본 와이키키의 야경.
와이키키 해변
와이키키 해변에 몸을 담근다. 물이 미지근하면서 시원하다. 얕은 바다 바닥이 부드러운 모래로 돼있어 아이와 함께하기에 더없이 안전하다. 비키니와 티팬티가 즐비하다.해변가 풍경이 주는 여유와 아름다움 그리고 자유가 있다. 속살이 훤히 드러내도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 하와이다. 확실히 남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적고, 리드 타임이 짧다.
보통의 해변에서 티팬티 비키니는 시선을 끈다. 체크인 전 숙소 루프탑 라운지에서 와이키키 해변을 처음 마주했다. ‘와와, 스케일이 다르구나.”
냐짱부터 골드코스트, 시드니 맨리 비치까지 두 달간 많은 해변을 봐 왔지만, 스케일이 다르다. 바다가 더 넓고 수평선이 보이는 시야의 높이가 높다. 수평선이 무너져 나를 덮칠 것 같은 두려움이 들만큼 바다가 넓다.
숙소에 있던 모래놀이 키트로 한참 놀던 정우가 입수 준비를 한다.
“나 안 들어갈래”라며 양 팔로 X 표시를 할 때는 언제고, 구명조끼를 입고 달려온다.
“아빠, 나 여기서 하루 종일 있을래. 아빠, 그리고 여기서 우리 살자, 너무 좋다.”
“정우야, 제주도 가도 이런 곳 있어. 제주도 가서 살래?”
“여기 이렇게 있는데, 왜 제주도 가서 살겠어. 그럴 필요 없어. 그냥 여기서 살자.”
아이의 말이 급속도로 느는 것에 놀라움과 함께 두려움이 든다. 앞으로 우리의 인내를 얼마나 시험할까 싶은 생각과 그래도 참아야지 마음먹는다. 아가의 모습은 뱀 가죽 허물처럼 사라진 지 오래다. 원하는 게 안될 때 생떼 부리는 횟수는 줄었고 그 세기가 더 세졌다. 그것은 정우 자신에게도 대단한 성장 과정일 것이다.
이정이가 구명조끼를 입고 파도 위를 둥둥 떠다닌다. 밤 비행기로 호주에서 미국 넘어올 때, 보딩 중 ESTA 비자 찾는다고, US Passenger Disclosure and Attestation를 정신없이 신청하는 와중에, 정우 캐리어를 자기가 안 올렸다고 울고불고 바닥에 드러눕고... 밤 비행 이후 시차의 피곤함, 두 달간 누적된 여정의 피로감 등 모든 것이 해소되는 표정이다.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는데 참 잘 왔다 싶다.
이튿날도 와이키키 해변을 찾는다. 첫날과 다른 포인트에 자리 잡았다. 어제 핸드폰을 가져갔더니,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의 도난 경험이 떠올라 우리 자리를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걱정 없이 편안한 게 가장 좋다. 와이키키 해변 200미터 너머에서 서핑하는 사람, 튜브에 의지해 노는 사람을 보면 미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적응됐지만, 깊은 바다와 앞바다의 수심이 비슷하다. 한국은 조금만 들어가도 발이 닿지 않는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경험을 수십 년 해왔기에 아무리 수심이 비슷해도 모래사장이 희미해지는 곳까지 내 몸을 담그는 게 두렵고 무모하게 느껴진다. 내게도 인간의 모험을 즐기는 DNA가 있는지 몸이 점점 저 멀리 수평선을 향해 나아간다. 깊이 들어갈수록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듯하다.
Young 님의 숙소에는 캠핑의자, 작은 서핑 보드, 구명조끼, 모래놀이 키트 등 구매해야만 즐길 수 있는 용품이 모두 비치되어 정말 좋았다. 서핑 보드에 몸을 얹었다. 크든 작든 보드를 타고 바다를 누빈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잘 타는 서퍼들과 멋진 서핑 보드를 보면 살짝 초라해지지만, 보드에 누워 중심을 잡고 파도 위에서 안간힘을 쓰는 것 자체로 충분한 새로움이 있다.
또 오자. 하와이 와이키키.
내일부터 차를 렌트한다. 오아후섬의 멋진 해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노을이 아름다운 와이키키 비치
가장 크게 아팠던 아들 이야기.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그날 밤 상황을 여정 떠나기 전 티저 영상으로 보여주며,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텐데 여정을 계획대로 진행하실 건가요? 묻는다면, 단연코 가지 않겠다. 모든 계획을 없던 일로 했을 거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나려 한다. 아빠가 계획한 여정 때문에, 바보 같은 아빠 때문에,,,, 안 겪어도 될 힘든 상황을 겪게 해 마음이 아프다.
“오빠, 정우 이마 한 번 만져 봐요.” 그녀가 분주하게 저녁을 준비하며 내게 묻는다.
"응, 괜찮아. 아주 좋아.”
여전히 시차 적응이 완벽하지 않다. 신체 리듬이 깨졌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오후가 되면 피로감이 몰려온다. 정우가 10시 반 넘어 잠들었다. Young님이 주선해 준 선교사님 댁에서 머무는 첫날밤이다. 주방, 거실과 다이닝룸이 호화스럽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넓고 모든 게 갖춰져 있다. 단 하나의 단점이라면 덥다는 것.
침실에 에어컨 대신 천장 선풍기가 달려 있는데, 에어컨을 대체하기에 부족하다. 이미 에어컨에만 반응하는 피부가 돼버린 것 같다. 어쨌든 푹푹 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마의 촉은 신비롭다. 아니 유독 이정의 감각 촉수가 예민한 건지 모른다. 2시간 정도가 지나고,
“정우 이마 한 번 다시 만져 봐요.”
“어라.. 열나네.” 손으로 뜨끈한 게 느껴진다. 뜨겁다 할 정도로 단번에 열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유, 어떻게 해.” 그녀가 다급하게 체온계를 찾는다. 아니나 다를까 정우의 체온이 38.8도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에게 체온계에 적힌 숫자는 삶을 들었다 놨다 한다. 38.8이라는 숫자를 보면 낙심과 책망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한 가지 장점이라면, 온갖 잡념이 사라지며 그간의 걱정 근심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원인을 찾으며,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한 두 번도 아니고.. 라며 스스로를 열등한 인간으로 만든다. 언제나 아이가 아픈 건 거의 부모 탓이기에 다른 어떤 주제보다 책임이 명백해진다. 38.8도면 앞으로 열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 방까지 아주 덥다. 이럴 땐 해열제를 먹이고 재우는 게 최고다.
정우가 더운 지 자주 깬다. 이미 얼굴이 벌겋다. 온몸이 불덩이다. 이내 짜증과 함께 눈물을 보인다.
“정우야, 힘들지. 약 먹고 자자.” 하지만, 고개를 가로젓는다.
바보 같은 놈. 금세 편안해질 텐데, 답답함에 화가 나지만, 절대로 해열제를 억지로 먹일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약 거부가 심해, 억지로 약을 먹이면 도로 토해낸다. 가끔은 저녁 먹은 것까지 다 토해내기에 안쓰러울 뿐..)
“정우야, 자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일어나서 엄마한테 약 달라고 해.”
열은 39.6도까지 올라간다. 여기는 하와이다. 서울에 있을 때의 심리적인 안도감도 없다. 멘붕 일보 직전이다. 정우가 빨리 백기를 드는 방법뿐이다. 억지로 약을 먹였다. 자연스레 열이 떨어지기를 바라며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으며 희망 고문을 해본다. 정우가 힘들어하는 표정을 보는 건 언제나 힘겹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정우가 갑자기
“악악악악!!!!!!! 아악아악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이정이와 나는 깜짝 놀랐다.
“정우야 왜 그래 왜 그래.??”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정우가 엄마를 미친 듯이 찾는다.
“엄마, 엄마, 엄마!!!!!!"
정우가 이상하다. 정우가 이상하다. 내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
엄마!!!!!!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글자 크기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절규도 발악도 아니고, 정우를 키우며 이렇게 이상 행동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우야, 정우야, 왜 그래 왜 그래. 엄마 여기 있어. 엄마 여기 있어”
“정우야, 정우야!!!!” 나는 그저 정우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정이가 정우 몸이 터질 듯이 꽉 안는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정우가 무서운 꿈을 꿨구나. 괜찮아 정우야.. 괜찮아.”
나도 곁으로 다가가 함께 정우를 안았다. 정우의 몸은 마른 장작처럼 경직돼있고 내가 안으려 하자 엄마를 더 조이듯이 껴안는다. 아마 세상 누구라도 그때 정우를 엄마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을 거다. 정우 몸에서 느껴지는 경직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정우를 수천 번 안았지만, 그때만큼 아빠로서 외면받았던 적은 없었다.
엄마에게 초인적인 힘으로 달라붙었다.
“정우야, 무서운 꿈 꿨구나, 무서운 꿈일 뿐이야.. 엄마 여기 있어, 엄마 여기 있어”
정우가 주체를 하지 못한다. 몸을 부르르 떨며, 절규하듯 엄마를 불렀다.
그 소리는 단순히 큰 목소리가 아닌 생존을 갈구할 때나 낼법한 귀를 찢을 만큼 목이 터져라 내는 소리였고,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절규의 목소리였다.
“오빠, 정우가 왜 이러지. 왜 이러지?”
이정이와 나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냈다.
“방에서 나가자. 밝은 곳으로 가자.”
바로 옆 화장실에 불을 켰다. 정우의 얼굴 전체가 공포가 몰려올 정도로 새빨개졌다. 화장실에서도 절규가 계속되었다. 이정이와 내가 울먹이며 정우를 꼭 껴안았다.
“정우야, 정우야, 정우야, 정우야,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엄마 여기 있어.”
그렇게 1분이 흘렀다. 울먹이던 정우가 꿈에서 돌아왔는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정우 얼굴은 핏대를 세울 만큼 세웠기에 무서우리만큼 얼굴이 붉었다. 거기에 열까지 있었으니, 얼굴이 불덩이다. 고열에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얼굴 모세혈관이 다 터졌다. 거실로 데리고 나와 에어컨을 틀고 시원한 소파에 눕혔다. 지금 열이 몇 도인지 중요하지 않다. 이상 행동에서 돌아왔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얼굴의 붉은 기는 여전했으나, 조금씩 혈색을 되찾았다.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열이 조금씩 내려가고 있으나, 자리에서 깨어나 다시금 엄마를 절규하듯 찾기 시작한다.
“오빠, 정우가 왜 이러지? 정우야 또 무서운 꿈 꿨어? 엄마 여기 있어 엄마 있어.”
다행히 아까보다 훨씬 빨리 진정이 되었다. 악몽의 잔상이 남아 있었나 보다.
최근 자기 주관이 뚜렷해지다 보니, 나와 이정이와도 자주 부딪친다. 아이에게 잔소리가 늘었다. 그 모든 게 눈물 나게 미안했다. 아직도 핏덩어리인 아이를 세계여행 한다며 이리도 고생시키는데, 말 안 듣는다고 시도 때도 없이 하자 말라는 말과 호통을 쳤다. 저 어린것에게 엄청난 공포를 경험하게 하고, 아프게 하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내 아들... 아빠가 미안해. 많이 미안해.
글을 쓰는 지금, 엄마와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리고 있다. 이제는 미안함보다 고마움만 가득하다. 해열제도 잘 듣고, 워낙 튼튼한 놈이기에 회복도 빠르다. 그래서 너무 고맙다. 어떻게 얘기해도 당시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오늘 정우 얼굴 몇 장을 찍었다. 눈 주위부터 볼부터 목까지 붉은 점들이 올라 와 있다. 얼굴의 모세혈관 실핏줄이 터지면서 생긴 자국이다. 잘생긴 얼굴이 붉은 점들로 더럽혀져 있다.
2022년 6월 27일에 적은 여정일지의 첫 문장.
“이정이와 정우 그리고 나... 정말 행복하고 싶고,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과 재미로 가득 찬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하기를 바란다. 우리 셋 언젠가는 이별하게 된다. 세상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으며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오기에, 지금 현재의 삶과 앞으로의 삶은 더욱 가치 있고 소중하다.”
한동안 잊고 있던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새긴다. 쓸데없는 상념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소홀하게 여기지 말자. 정우를 끌어안을 때 아내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두려워하던 그 표정을 다시는 만들지 말자. 그녀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지 말자.
파인애플 나무가 궁금하다는 아이를 위해 다녀온 <Dole plantation>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은 최고였다.
상업화된 여행 코스를 밟는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특별한 여정의 우리이기에 왠지 이단아가 되고 싶다. <Dole Plantation>이나 <지오바니 트럭>의 스캄피는 예상한 만큼의 감흥이었다. 무난히 마음 편하게 여권 스탬프를 받는 기분을 즐기고 바다거북을 관찰할 수 있는 해변으로 이동한다. 운이 좋으면 바다거북이 해초를 질근질근 씹는 장면도 볼 수 있지만, 허탕 치는 이들도 많고 벌에 쏘이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저 멀리 차를 세우고, 땡볕 아래를 한참 걷는다. 해변가 중앙에 유독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바다거북을 직접 보는 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감정이 교차된다. 인간이 갖지 못한 삶의 속도에 대한 경외심과 인내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연민이 든다. 등껍질 곡선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그 짐을 지고 몸을 맡기며 살아가는 삶...
신비로움과 안타까움이 공존한다. 거북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힘겹게 침을 뱉는다. 모든 게 내 기준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그곳에서 지킴이이자, 가이드 역할을 하는 여성 분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바다거북과 3m 이상 떨어져서 관찰할 수 있다. 가이드역할을 하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오랫동안 바다거북을 지켜봤다.
“Because of higher temperature of sand, in many cases turtle gets female eggs."
(모래사장의 온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많은 수의 바다거북들이 암컷 알만 낳게 됩니다.)
인간이 쑥대밭을 만들고 있는 지구의 작은 단면이지만, 미안함 마음이 앞선다. 언제까지 늘 미안함을 품은 채 자연을 바라봐야 하는가? 저런 사실을 듣고, 미안함 마음이 안 들면 대체 어떤 감정이 들어야 할까? 바다거북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들만의 언어와 사고가 있다면 마치 자신들의 잘못인 양, 편식을 한 건 아닌지, 짝짓기 자세가 잘못된 걸까 하는 죄책감에 빠지진 않을까? 이기적인 인간이 저지른 문명의 학살 때문이지만, 거북은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간다. 지구의 미래와 딸만을 출산하게 될 거북의 운명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이 이 세상의 지배자임을 자처하여 정복한 지 오래되었고, 고착화되었다. 동물을 구경하는 건 늘 마음 편치 않다. 감동받고, 울컥할 만큼의 자연의 신비로움을 외적으로 표현할지 몰라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 한편 일말의 양심이 작동할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괄목할만한 변화를 하기엔 어렵다. 당장 내일부터 지구환경에 유해한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행동으로 옮길 확률이 제로인 것처럼, 지구는 지금보다 더 망가질 것이다. 모든 것은 시스템에 의해 돌아간다. 앞으로 얼마나 연명할 수 있는지가 큰 과제다. 하지만, 기적이 있기에 인류 특유의 저력이 발휘될지도 모른다.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하와이 병원 Urgent care 방문기
정우 이마가 또 불덩이다. 온몸이 불덩이다. 한밤중엔 저체온이 걱정될 정도로 말끔히 회복되나 싶었는데, 열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오늘이 3일째다. 체력 강하고 회복력 빠른 정우에게 낯선 상황인 것만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정우에게 왜 병원을 가야 하는지 설명한다. 정우도 제법 컸는지 본인이 처한 상황을 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싫어하는 병원도 큰 거부감 없이 따라나선다. 안도감이 들지만, 더 짠하고 미안하다. 빨리 진료받을 수 있다는 인근의 Urgent care에 방문했다. 이번 여정에서 병원 안 가기 목표가 두 달 만에 보기 좋게 깨졌다. 지금은 그 어떤 것도 중요한 게 아니다. 기침도 심하지 않고, 콧물도 없고, 열만 지속되는 경우는 없었기에 더 걱정됐다. 어젯밤엔 머리가 아프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불안감이 엄습한다. 어린아이의 열은 언제나 엄마 아빠의 걱정을 한 바가지 안겨 준다. 체온계를 귀에 꽂고 기다리는 2.5초. 세상에 오직 나와 체온만 존재하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36도대가 나오기를 이 순간만큼 간절히 바라는 경우가 있을까.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지불하고 싶은 체온계 숫자 36.5이다.
미국 병원은 우리 모두 처음이다. 출입문에 '열이 있으면 차로 돌아가서 먼저 전화를 하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들어가기도 전에 문전박대당하는 느낌에 당황스러웠다. 나 혼자 조심스럽게 들어가 카운터를 어슬렁거렸다. 직원 한 명과 칸막이 건너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전화번호를 남기고 밖으로 나왔다. 한여름 정오의 하와이는 푹푹 찐다. 그늘이 있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정우는 노란색 당근잠옷을 그대로 입고 나왔다. 온 얼굴에 모세혈관이 터져 얼룩덜룩한 몰골에 잠옷을 외출복으로 입고, 안 깎은 지 두 달이 넘은 더벅머리에 시커멓게 탄 얼굴은 훌륭한 부모 밑에 자라는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온 얼굴은 얼룩덜룩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당근잠옷을 입고 병원 앞 테이블에서 도넛을 먹으며 기다리는 중.
한참을 기다렸으나, 전화가 오지 않아, 슬며시 병원 안으로 들어가 본다. 20분을 더 기다린 후, 답답한 마음에 카운터에 가보니, 전화연결이 안 되었단다. Invalid 한 것 같다며 바로 진료받도록 해준단다. 병원 들어가자마자 직원과 눈이 마주쳤는데, 한국 같았으면 나를 불러서 왜 전화가 안되냐고 먼저 물었을 텐데, 내가 다가가지 않았다면 몇 시간이고 우리를 무진료 상태로 둘 것 같았다. 이해를 하려고 한다. 여기는 미국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병원 안쪽 진료실로 입장했다. 예진을 위해 간호사가 들어와서 이것저것 질문하고, 코로나 검사와 독감 검사를 권유했다. 검사 방법을 물어보니, 코 안쪽을 넣어 검사한다고 했다. 그래서 코로나는 아닌 것 같고, 폐 소리와 목 상태 등을 먼저 체크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코로 검사하는 것에 아이가 거부 반응이 심하다고 설명했다. 간호사는 알겠다고 하고, 의사를 불러 주겠다고 했다.
나이 지긋한 남자 의사 한 분이 들어오셨다. 한국과 달리 의사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폐 소리, 귀와 목 검사를 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결과는 perfect! 폐 소리도 깨끗하고, 귀 안쪽도 전혀 문제가 없고, 목도 붓지 않았다. 코로나 검사와 독감 검사를 권유한다. 그 검사가 없으면 약을 처방하기 어렵다고 한다. 정우를 달래며 설명했다. 정우가 크게 거부 반응이 없어 다행이나, 이미 마음속으로 각오했다. 얼마나 목청껏 울어댈는지... 젊은 남자 간호사가 들어와 면봉처럼 생긴 긴 스틱을 코 근처에 들이댄다. 정우가 고개 돌리는 시늉만 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크게 저항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도 빨리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이 있구나 싶다. 근데, 이거 뭐지? 코를 깊숙이 쑤실 줄 알았는데, 그냥 코 주위를 몇 번 돌리더니 그걸로 끝이다. 한국은 거의 뇌를 찌를 듯이 최선을 다해 밀어 넣는다. 저렇게 하면 검사가 될까 싶어 이정이도 어리둥절했다.
“차라리 코로나면 좋겠어. 자가격리하면서 샌프란시스코와 미국 일정 짜면서 쉬지 뭐. 하와이 온 목적이 쉬러 온 거니까.”
“둘 다 결과가 음성이면 어떡하지? 그러면 아무런 처방도 못 받고. 열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데.."
10분쯤 지났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간호사가 오더니 “Both tests are negative.” 라며 검사결과와 안내장 2장을 준다.
당연히 처방전이 아니다. 아무 이상 없는 완벽에 가까운 몸 상태라고. 그렇다면 도대체 열은 왜 나는 거지????
한국과 달리 성의 없는 결과지엔 Cold 뭐뭐라 적혀있고, 꿀을 많이 먹으라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얘기 들으려고 1시간 넘게 기다리고, 이정이는 보험사에 여러 번 연락했나 싶은 생각에 허탈하다. 하지만, 병원에 간 이유가 불안함을 해소하고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니까, 그걸로 되었다. 검사 결과가 좋고, 정우는 완벽한 몸이다. 하지만, 왜 열나고 약을 먹어도 열이 안 떨어지는지 의문이 든다.
“그냥 단순 감기인데, 열이 잘 안 떨어지는 감기인 거 같아.”
근처 Longs Drug에서 지인이 추천해 준 해열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정이가 병원에서 체온을 쟀을 때 잠시 37.4도였는데, 병원의 결과지에는 36.9도로 적혀있다.
“체온을 잰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지? 아까 몸무게 잴 때 자동으로 쟀나?
그렇게 우리 가족의 미국 병원 방문은 끝이 났다. 병원비 모두 보험사와 처리한다며 돈 한 푼 내지 않았고 (2달 뒤 집으로 한국 집으로 청구서가 날아오긴 했지만..) 여행 중 병원경험 한 번 했다 치면 이것도 여정의 일부분이다. 정우가 아프면 여정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특히 이정이가 더 그렇다. 그녀는 정우의 엄마다. 나와는 걱정의 정도가 다를 거다. 뱃속에 열 달을 품었던 정우가 열이 안 떨어지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거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밤 11시 30분에도 정우 옆에 누워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번 여정 중 가장 힘겨운 시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적으로 힘들다. 여기는 하와이다. 하와이에서 정우가 아프다. 여기 사는 사람도 아니다. 더 생소하고 낯설고, 불안하고, 외롭고 우울하다. 정우가 잘 이겨 내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하와이라는 지상 낙원에서 스노클링도 못하고, 아무리 쉬러 왔다지만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애석함을 넘어 속이 상한다. 아직 350일이 더 남은 여정은 생각지도 않고. 참 단순한 것 같다. 이정이가 방에서 나오면서,
“정우 열 떨어졌어. 37.4도야.”
“그런데 방금 무슨 소리였어?”
“아, 내가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콘센트 밟아서 넘어질 뻔했어. 내가 넘어지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
“……….”
* 여러 정황을 돌이켜봤을 때, 일사병이 아니었나 싶다. 일사병의 경우 환각을 보거나 고열이 나는 경우가 많단다. 부모의 무지함이 아이를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 죄스럽다. 건강과 안전. 다시 한번 진부하게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책 안 써도 되고, 미래 준비 안 해도 돼. 그저 목표한 날까지 건강하게 여정을 마치는 것 말곤 중요한 게 없어”
초심을 유지하는 건 정말 어렵다. 흐트러져 본 적 없다고 누가 말한다면, 그건 초심에 대한 사기다. 그럴 수 없다. 잊을만하면 꺼내야 하는 게 초심이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새기고, 건강하게 여정할 수 있도록 챙기고 또 챙겨야 한다. 자는 동안 계속 체온 체크를 해야 한다. 오늘도 거의 뜬 눈으로 보낸다. 그러면 어때? 내일 신나게 쉬면 돼! 내일 아침 부디 36.5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정우야 사랑해. 정말 사랑해.
에머럴드 빛 바다가 펼쳐지는 '라니카이 비치'
정우와 라니카이 비치에 놀러갔던 날, 우연히 수영중인 바다거북과 조우할 수 있었다.
정우가 너무너무 좋아했던 셰이브드 아이스와 새우포케, 엄마가 사랑하는 빅웨이브 골든 에일. 그리운 하와이...
220830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
하와이에서의 실질적인 마지막 일정이다. 한없이 멀게 느껴졌는데, 어느새 그 끝에 와 있다는 게 시간 참 빠르다 싶다. 그러나 하와이 여정은 시간의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빠르게 흘러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 모호한 느낌이다. 어떤 날은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또 어느 날은 반대로 느끼기도 한다. 정우가 아팠던 하루는 일주일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신나게 놀 땐 하루가 훌쩍 지나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9일간의 하와이 여정이 더 길게 느껴진다. 쉽지 않은 일정이었고 위기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마무리한 것 같다. 많은 배움이 있던 여정이었으며, 무엇보다 시드니 스텔라 언니를 알게 된 것처럼 여기서 young 님과 선교사님을 알게 된 게 큰 축복이다. 여정을 통한 진정한 배움은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아닐까.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을 볼 때면, 나의 부족함과 더불어 삶의 다양성과 진정성 있게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걸 느낀다. 선교사님처럼 남에게 무엇이든 베풀어주시는 분을 본 적 있던가. 어떻게든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은 마음이 넘치는 분이다.
하와이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역시 무스비다. 스팸과 잘 지은 쌀밥에 김까지. 더 할 나위가 없다.
“우리 예쁜 정우가 무스비를 좋아하나요? 무스비 우리 가게에서 만드는데 인기 많아. 그거 내일 가지고 올게. 우리 가게에 있는 음식들 점심에 먹을 수 있게 집에 갖다 놓을 테니까, 먹어봐요. 북엇국을 끓였는데, 한번 먹어봐요. 이거 한 번 입어 봐. 정우 옷 이거 잘 어울릴 것 같아. 정우야, 뭐가 더 마음에 들어? 사장님(나) 하고 사모님 옷도 가져와 봤는데, 이거 가져가서 입어요. 떠나기 전에 저녁 같이 먹어요. 정우가 물고기 좋아한다니까, 물고기들 많이 있는 괜찮은 레스토랑을 예약해 놓을게. 공항 가기 전에 먹으라고 내가 샌드위치 만들어서 두고 갈 테니까, 가기 전에 꼭 먹고 가요.”
신라면 블랙 컵라면 한 박스도 신발장에 두고 가셨다. 무조건적인 베풂은 쉽지 않다.(선교사님은 부업으로 아메리칸 차이니스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시다. 하와이에서 만났던 한인분들 모두 2개 이상의 직업을 갖고 계셨다. 하와이 생활 물가가 워낙 높다 보니, 부업을 통한 부가수입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복 받고 있는 걸까?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서 너무 감사하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베풀었기에 그만큼 되돌려 받나 생각해 봤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닌 듯하다. 이제껏 받았던 많은 이들의 호의는 우리에게 숙제로 남았다. 받은 만큼 베풀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나눔과 베풂을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다른 시야를 갖게 된다. 자본주의 사고에 길들여진 우리는 그들의 아낌없는 베풂과 헌신이 생소하고, 가끔은 거부감이 들 때도 있다. 아낌없이 사심 없이 남 잘 되길 바라는 행동의 가치는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다. 물론, 선교사님이기에 종교가 주는 의무감도 있겠지만, 베풂을 실천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대단하다는 생각과, 얼굴 뵙기가 힘들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인상 깊다.
시드니의 스텔라 언니는 시드니에 살며 경험해 본 맛있는 음식을 우리에게 전부 먹여주고 싶어 했다. 전날 만나서 작별 인사를 했음에도 우리가 시드니를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유명하다는 해물 국수를 기어코 먹이고 싶어 또다시 우리를 초대했다. 정우가 열이 있다고 하니 코로나 키트며 삼계탕이며 비타민, 과일을 한 바구니 가져다주시고... 다급하게 정보를 물으면 언제든 빠르고 정확하게 알려주고, 향초도 선물해 주고. 우리가 편안해서인지 모르지만, 우리와 만나 대화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호주 유학에 대해 다른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생생한 경험담도 들려주셨다.
우리가 만난 분들 모두 해외에서 오랫동안 터전을 마련해 살아가는 분이다. 왜 그들을 애국자라 부르는지 알 것 같다. 타지살이를 이정이와 나는 절대 못할 것 같다. 너무 힘들 것 같기에 시도해 볼 엄두조차 안 난다. 그들은 어려움과 낯섦 모두를 감내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발리에서 만난 가이드 마데 발리도 그 누구보다 바쁘고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얼마를 벌고 어떤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가족과 스스로를 위해, 섬기는 신을 위해, 동생과 자녀를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들 모두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무엇보다 건강한 삶을 오래도록 유지하기를 바란다. 여정이 끝날 때쯤이면 서로 기억 속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들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다시 만나면 할 말이 많아 입이 아플 것 같다. 그때까지 모두 잘 살면 좋겠다. 반드시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