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찌민 : 또 문이 잠겼다.

+9 day / 망고와 쌀국수, 토요일 밤의 만찬, 그것은 허황된 꿈.

by 홍어른

호찌민의 사이공로열 레지던스 28층 룸넘버 12.


최고의 숙소 뷰를 여정 시작 후 일주일 만에 만난 것 같아 오히려 낙담이다. 그만큼 모든 것을 갖추었다. 곡선을 그리는 강줄기에 유람선, 정박해 있는 수상 레스토랑, 화물 선박이 지체 없이 움직이고, 휘어진 도로를 따라 오토바이와 차들이 리드미컬하게 드라이빙한다. 확 트인 창 밖으로 유유히 떠있는 구름과 마주치며, 저 너머로 화려한 마천루까지.. 사찰처럼 보이는 고풍스러운 오래된 건물까지 더해져 신구 조화의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우리 여정 중 최고의 숙소 뷰 중 하나, 사이공로열 28층 룸넘버 12.






첫 끼로 먹은 쌀국수의 면발과 육수 맛은 일품이었다. 맛을 배가시켜 주는 뜨끈한 육수 온도까지 진한 쌀국수의 풍미를 더했다. 도가니 쌀국수를 음미하는 그녀의 두 눈이 커졌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엄지를 내세우며 게걸스럽게 한 그릇을 비워내는 아들 녀석까지. 짜식. 몇 년 지나면 나보다 더 많이 먹을 기세다. 알고 보니 그 식당은 프랜차이즈란다. 호찌민의 유명한 로컬 쌀국수 맛집이 궁금해진다.



베트남의 여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덥고 습한 날씨다. 7월 우기에 걸맞게 숙소를 나서자마자 시원하게 스콜을 뿌려댄다. 오늘 하루 내내 다소 습했지만, 해는 구름에 가려져 있고,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 상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오전 그녀의 상태는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몰려왔다.

이번 여정은 일상의 날씨보다 두 사람의 날씨가 더 중요하다. 10월의 맑은 가을 날씨라면 좋겠지만, 두 사람 모두 천둥번개 친다면 많이 힘들어진다. 특히, 둘이 부딪쳐 발생한 개떡 같은 날씨라면 이건 거의 맛이 가는 상황이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항상 맑고, 100일에 한 번 정도 살짝 흐린 정도다.

아들놈이 아침부터 뜬금없이 감자튀김을 사달라며 조르기 시작한다. 당연히 우리 계획엔 없었기에, 급하게 아메리칸 스타일의 버거집을 하나 찾았다. 우리는 역할을 분담했다. 나는 아들과 놀아주기, 외출 배낭 챙기기, 비행기 티켓팅과 숙소 예약이고, 아내는 짐 싸기, 요리와 세탁, 맛집과 여행 세부루트 짜기다.



그녀가 찾았다는 햄버거 맛집에 도착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분을 걸어 찾아가려던 곳 바로 옆 호텔 bar로 잘못 들어가 버렸다! (bar앞에 커다란 햄버거 입간판을 보고 착각한 모양이다.) 뒤늦게 사실을 인지하고 밖으로 나갔으나, 황급히 직원이 달려온다.


“The food not cancel” 알고 보니 이미 주문이 들어갔다고 한다.

“혹시 햄버거 주문했어?”

“아니, 주문 안 했어. 그냥 버거가 가능한 지 물었어. 25분 뒤에 주방에서 요리가 가능하다길래 알았다고 했어.”

길거리에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다시 호텔로 들어가서 매니저와 얘기를 했다.

직원은 메뉴판의 메뉴를 가리키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아내와 눈이 마주치고

“햄버거 하나만 주문 들어갔으니까, 그냥 여기서 하나 먹자.”

“외관에 버거 사진이 크게 보이길래 착각해서 들어왔어. 내가 바보지.”

라며 영어 못한다고 신세 한탄을 시작한다.

“감자튀김이 목적이었으니까, 감자튀김 나오잖아. 좋게 생각하자~” 웃으면서 기분을 풀어주려 했다.



버거를 좋아하는 오로지 나를 위해 원래 목적지였던 <Eddies>로 다시 들어간다. 간판부터 그냥 미국이다.

호찌민 시내 한가운데 아메리칸 스타일로 꾸며진 매장이 이채롭게 느껴진다.

우리의 픽은 Classic Diner Burger와 Salted Caramel milkshake..

보통 Classic이 붙은 메뉴는 단출하게 구성하되, 맛의 밸런스가 뛰어나다. 씹을수록 본색이 드러난다. 역시 버거는 패티다. 패티 속 지방함량이 각 브랜드의 비법 레시피 중 하나다. 패티의 육즙이 과도하게 풍성하지 않지만, 씹을수록 은은한 그릴향과 토마토, 상추 그리고 치즈에 뿌리듯 기름칠을 해준다. 역시 Classic은 과함이 없다. Classic 하게 살고 싶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평생을 함께 할 매일 가슴 뛰게 만드는 Classic Car를 가지기로 했다.

Classic is my favorite.

오전 내내 감자튀김 노래를 부르며 징징대던 아들 녀석은 썬데 아이스크림 하나에 금세 행복해졌다. 그렇게나 꿈꾸던 세계여행이지만, 엄마 입장에선 원정육아임에 변함이 없다.



반미샌드위치를 파는 길거리 포장마차.


길거리에서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돼지고기 덩어리를 보고 군침이 돌아 발길을 멈추었다.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반미 샌드위치’다. 큼지막한 쌀 바게트 속에 겉을 바삭하게 구워낸 훈제돼지고기와 각종 야채, 고수, 특제 소스를 넘치도록 넣어주는데 단 돈 1,000원이다. 하아.. 반미샌드위치를 생각하니 또 먹고 싶다. 반미샌드위치 소스의 포인트는 후미에서 살아나는 매운 풍미다. 더구나 쌀 바게트는 부드러우면서도 바삭해서 먹기가 한결 수월하다. 왜 한국에선 쌀 바게트를 구할 수 없는 걸까? 소스와 훈제 돼지고기를 듬뿍 얹어 덮밥집으로 차려도 좋겠는걸?

* 베트남 동을 한화로 쉽게 계산하는 방법은 뒤에 0을 하나 빼고 2로 나누면 된다. 20,000동 -> 1,000원



여정을 시작한 이후 단 하루도 안 거르고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속이 정말 편하다.

베트남 또한 주식이 쌀이기에, 취식 방법은 다르지만 쌀을 주식으로 먹을 수 있으니 안심이 된달까.

오늘은 호스트가 소개해준 로컬 쌀국수 맛집에서 소고기 사태와 모닝글로리를 넣은 볶음면을 먹었는데, 채소의 풍미와 굴소스, 센 불향까지 더해져 정말 맛있었다. 식사를 하며 내 고향 대구의 납작 만두를 떠올렸다. 학창 시절 하굣길에 친구 현동이와 내가 매일같이 들렸던 참새 방앗간. 시장 골목 귀퉁이에서 할머니가 철판에서 쉴 새 없이 굽고 계시던, 천원짜리 한 장이면 접시 그득하게 담아주시던 납작 만두가 그리워지는 하루다.


불맛이 가득하던 볶음 쌀국수.




로컬들만 가득한 베트남 4군 청과물 시장에서 망고를 저렴한 가격에 잔뜩 구매하고 행복한 우리
바로는 언제나 베트남을 그리워한다. 쌀국수랑 망고가 너무 맛있어서 또 가고 싶어요!!


500g짜리 지 얼굴만큼 커다란 망고를 대체 몇 개나 먹는 건지, 오늘도 아들 녀석의 입 속으로 사라지는 망고를 바라만 보고 있다. “아빠. 나 배가 터질 것 같아.”

아들아, 엄마 아빠는 아직 저녁을 못 먹었단다. 배가 터질 것 같다는 바로를 데리고 8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외출을 감행한다.

우리 숙소가 있는 4군 뒷골목으로 먹자골목이 형성되어, 길거리에 앉아 식사 중인 현지인들로 가득하다. 홍어른은 식당과 손님이 즐비한 골목에서도 맛집을 선별하는 감각을 갖고 있다. 뱃속이 망고로 가득한 아들 녀석의 잠이 시작되고 있다.

“아빠, 언제까지 걸어야 돼? 나 졸리고 힘들어.”




<Tiger 63>이라는 해산물식당에서 커리 크랩, 해산물 볶음밥, 오징어 구이를 포장주문했다. 내가 아내에게 하나 바라는 건 제발 눈을 크게 뜨지 않았으면 한다. 그녀가 눈을 치켜뜨는 상황은 문제 발생 알람과 같다.

“어떻게 하지? 가방을 바꿔 들고 와서 현금이 없네. 혹시 카드 결제가 되는지 물어볼게.”

영어 소통이 안 되는 로컬식당이기에, 핸드폰 번역기까지 총동원하여 대화를 나눈다.

직원이 “Internet banking”이라고 답한다. 가까스로 가방 구석에 있던 달러를 찾아 계산을 마쳤다.

그동안 바로는 내게 안겨 완전히 잠들었다.



20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정말 보람이 있었다. 호찌민의 토요일 밤, 진한 감칠맛이 일품이던 커리크랩과 불 향 그윽하던 오징어 구이, 해산물 볶음밥과 얼음이 가득 담긴 로컬맥주까지 우리만의 조촐한 만찬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단이 벌어졌다. 늘 그렇듯 사단은 예고도 없고, 뜬금없이 찾아온다.



냐짱 빈펄리조트에서 욕실 문이 잠겨 소동이 벌어진 이후, 잠금장치가 있는 문에 더욱 관심을 요하게 되었다. 호찌민 숙소 역시 방문과 욕실 문 모두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잠기는 구조였다.

“침실 문이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잠기는 문이니까 참고하자.

“알겠어, 오빠.”

우리 둘 다 신경을 쓰기로 했다. 거실에서 맛있게 해산물과 맥주를 즐기다가도, 56개월 아들이 잘 자고 있는지 한 번씩 확인해야 한다.

“혹시 바로가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면 안 되니까, 바닥에 베개를 놔두자.” 며 그녀가 베개를 들고 정우가 자고 있는 침실로 간다.

그녀가 커진 눈으로 나를 보며 “어떻게 해!!!!! 문이 잠겼어!!!!”

누가 동그란 잠금 버튼을 눌렀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오후에 잠길 수 있다고 얘기했었잖아..!”

“내가 안 잠갔어.”

“나도 누른 적이 없는데, 바로가 눌렀나”

“미치겠네. 진짜. 어떻게 하지? 일단 호스트한테 연락해 볼게”


“사람이 올 거래”

“바로를 깨울까? 정말 깊게 잠들어서 안 일어나겠지?”

“응. 안 일어날 것 같아. 그리고 억지로 깨우면 또 놀랄 수도 있고..”

해산물 야식 타임은 종료되었다. 지금 중요한 건 방문을 여는 거다.



친절한 호스트가 빌딩 관리실에 연락을 취해서 유니폼을 입은 직원 2명이 왔다. 그들이 15분 남짓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지만, 문고리가 움직이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호스트가 문고리를 부시더라도 문을 열 것이라고 한다. 커다란 연장 박스를 들고 직원 한 명이 더 도착했다. 마지막에 온 직원이 방문 열기 작업을 주도한다. 자세가 달라 신뢰가 갔다. 손이 작업하지만 하체의 중심이 잘 잡혀있다. 신뢰는 자세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 짧은 순간 배웠다. 딸깍 소리와 함께 닫혀있던 방문 틈새가 열린다. 열린 침실 내부는 깜깜했지만, 가장 밝은 어둠처럼 느껴졌다. 56개월 아들 녀석이 새근새근 잘 자고 있다.


해산물 요리와 맥주가 널려있는 테이블에 서로를 바라보며 마주 앉았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고 문이 열렸다는 안도감과 함께, 몰려오는 다양한 감정에 웃음을 터트린다. 나도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잠결이든 맨 정신이든 바로가 문고리를 돌리기만 해도 열리는 문이었지만, 열리지 않는 방에 5살 아이가 갇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초조해진다. 특히 타국의 낯섦을 동반한 불안감까지 더해진다. 누구보다 엄마인 그녀가 더 그러했을 것이다. 아빠인 내가 그녀를 더더욱 그로기상태로 밀어 넣었다. 그저 확인 차 문고리 절반이 해체된 방문을 방 안에서 다시 한번 닫아봤다.


“이정! 이정!!! 어!! 방문이 다시 잠겼는데? 문이 안 열리는데????”

“뭐라고????? 그걸 왜 닫아!!!! 그냥 열어두면 되지, 진짜 미치겠네.”

그녀는 한국에서 가져온 쇠 젓가락으로 반쯤 해체된 문고리 구멍을 마구 쑤시기 시작한다.

“열려?”

“안 열려. 안되네.”

“진짜, 그걸 왜 닫아!! 진짜 왜 그래!! 도대체 왜!! 기다려봐. 다시 해볼게.”

그녀가 간절한 손길로 네다섯 번 이리저리 방문 고리를 찌른다. 문고리와 젓가락이 부딪히면서 들리는 쇳소리가 정말 간절함과 절박함이 느껴질 정도로 둔탁하면서 거칠었다. 그리고 빨랐다.

“열렸다. 열렸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그걸 왜 닫아.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 당황해서 미칠 것 같았어.”

“나는 문이 또 닫힐 수도 있으니까, 확인해 본 거지. 오히려 확인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문이 닫히지 않도록 쿠션 두 개를 덧대어 두었다.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나, 정말 바람 잘 날 없다.


다음 날에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 하나를 깬 그녀는 주저앉아 머리를 감쌌다. 손잡이를 돌리면 올라갔다 내려오는 빨래건조대에 흥미를 느낀 바로가 계속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한 나머지, 너무 내려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이제껏 수많은 여행을 했지만, 숙소에 머물며 호스트나 리셉션에 이토록 연락을 많이 했던 적은 없다. 머리를 감싼 채 그녀가 말한다.

“우리가 이 숙소의 파괴자가 된 거 같아.”



침실 방문 바닥에는 반쯤 해체된 문고리와 부품 잔해들, 빨래 건조대는 바닥으로 축 쳐져 있다.

다시 한번 호찌민 숙소 호스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참고로 깨트린 그릇은 변상했고, 건조대는 우리의 조작 미숙이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베트남 씨클로를 타고 이동 중, 오랜만에 받아보는 발 마사지에 행복한 호선생과 그걸 지켜보는 꼬마 바로.



우리의 여정이 시작한 지 어느덧 10일 차, 휴양지인 냐짱에서도 부지런했고, 수도인 호찌민에서도 부지런했다. 매일 만 오천보를 걸었으니, 어린 바로는 2만 보 넘게 걸었을 거다. 세 사람 모두 잔 부상들이 생겼다. 바로는 피곤할 때나 생기는 구내염이, 홍어른은 침대 모서리에 찍히기를 여러 번에 벌레 친화적인 피부 (아마 살 냄새로 벌레를 유혹하는 듯)로 모기 테러에 살짝 장염증세까지 보인다. 호선생은 배낭끈에 긁혀 손목 안쪽 살이 벗겨졌다.



쉬자. 여행에도 삶에도 욕심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현자가 되는 길이다. 나라를 이동하는 날에는 반드시 쉬고, 글도 쓰고 망중한 하자. 조금씩 우리만의 여행 규칙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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