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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Jun 08. 2019

간호사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놓치면 안 되는 것

간호학과의 '직설적 화법' 문화에 대한 탐구

'간호=돌봄'이라 배우고,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화법

    어느 학과를 다녀도 비슷한 상황일 수 있으나, 간호학과에 와서 충격적인 부분은 ‘남을 쉽게 평가하고 그것을 직설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간호학과는 사람의 생명과 연관되는 전문적 지식을 배우는 만큼, 쉽게 외적인 부분을 평가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부분에 있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1학년에게 ‘간호는 돌봄’이라는 개념을 가르치고 있다. 돌봄은 환자와 간호사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질적인 관계 형성이며, 건강관리가 이뤄지는 동안에는 인간으로서 존엄성 보존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돌봄의 영역에는 신체적 돌봄(의학적인 돌봄)뿐만 아니라 정신적 돌봄도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둘의 영역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라면 누군가에 대한 평가를 쉽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간호학과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첫 시간에 교수님은 '앞으로 잘 적응하여 멋진 간호사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다 덧붙인 한 말씀.   

 

    “혹시 여기에 장애, 질병, 한부모 가정 사람 손들어 보세요.”     


    사실 학기 초에는 아직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는 시기일뿐더러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데 있어서 꺼릴 수밖에 없다. 만일 강의실에 장애나 질병, 한부모 가정인 사람이 있었다면 교수님의 별 대수롭지 않게 하신 말씀이 상처가 되고 폭력적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 교수라는 직업 자체가 연구와 강의를 병행해야 하기에 워낙에 바쁜 직업인 것은 이해 하지만, 간호학과 교수이라면 이런 낙인이 될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학기초뿐만 아니라 지금도 간식을 먹고 있는 동기들에게, “너희 큰 병원 가려면 다이어트해야 돼. 뚱뚱하면 취업도 안 된단다. 20살 되었겠다, 1학년 1학기겠다 맘껏 놀자는 마음으로 너무 술 마시지 마. 다이어트해야 돼.”라고 하신다. 사람의 신체를 유심히 관찰하 약을 투여하고 케어하는 일을 하는 간호사라면, 외관상 비치는 모습을 쉽게 평가절하하는 문화는 단절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동기나 선배들은 어떨까.


    쉬는 시간이나 수업을 일찍 마칠 때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게 된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다 보면 서로 장난도 치게 되는데, 나에게 첫 번째로 친 장난이 “너는 성인이 그렇게 말라서 되겠니. 태풍 불면 발목에 모래주머니 차고 다녀야겠다.”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의 신체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로서 동기의 말은 나의 신체에 대한 검열을 시작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해 하나씩 배우면서 동기의 장난이 점점 도가 지나치다고 느꼈다.     


    “너 혹시 ***병 걸린 거 아니야? 그렇게 마른 이유가 뭐야?”     


    개강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내가 어디까지 웃으며 넘겨야 하고 농담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가늠이 잘되지 않을 때가 많다. 간호학과 자체가 폐쇄적인 집단이기에 괜히 ‘까칠한 사람’으로 남을까 봐 걱정되어, “그런 장난 하나도 재미없어. 그만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개강하고 교수님생각에 대한 검열 없이 직설적으로 내뱉은 말을 시작으로, ‘이 집단은 직적으로 말해도 괜찮구나’로 인식했던 걸까. 동기들도 이런 비슷한 대화를 서슴없이 한다. 이러한 말들은 누군가는 가벼이 웃고 넘길 수 있는 농담이고, 누군가는 상처가 되어 남는다.     


   이런 집단 문화가 유지되고, 그 속에서 학문을 배우고 성장한 간호학과 학생들이 현장에 배출되었을 때의 모습은 어떨까. 실습을 나갔던 선배의 말에 따르면 실습지에서 누구나 겪고 힘들어하는 일은, ‘환자나 동료, 다른 간호사 선생님 등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 명 지목하여 꾸지람을 듣는 것’이라고 한다. 꾸지람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면 안 되니까, 너에게는 이런 일을 시키면 안 되겠다’는 등의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생명과 직결되는 업무인 만큼 예민할 수밖에 없지만, 적응할 때까지는 곁에서 가르쳐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요즘 20대 애들은 힘든 걸 견디지 못하고 일을 쉽게 관둔다”라고 말하기 이전에, ‘신규 간호사 100일 잔치(요즘 큰 병원에서는 신규 간호사가 100일을 버티면 앞으로도 관두지 말고 잘 버텨 달라고 파티를 열어 준다고 한다)’를 열어 줄게 아니라, 신규 간호사가 현장에 적응하고 배울 수 있는 분위기를 먼저 형성해야 할 것이다.      


    실습 세미나에서 자신의 실수로 인해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꾸지람을 들었는데, 그 일이 수치스럽고 모욕감을 느꼈다고 하소연했다는 선배의 말에 간호학과의 직설적이고 스스럼없이 평가하는 문화의 시작은 대학이 아닐지 생각했다. ‘간호는 돌봄’이라는 개념을 배우고 있는 시점에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간호사는 생명과 연관된 직업인만큼 쉽게 평가하고,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직설적인 화법에 있어 조심스러워야 한다. 아무리 현장이 바쁘더라도 인간적으로 환자나 동료를 대할 수 있어야 한다.        




* 앞으로 간호학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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