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과 실습은 1000시간이다. 이전 대학의 사회복지학과 2급 자격증을 위한 실습 120시간을 생각해 보면 1000시간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실습을 해야만 하는지 어림짐작 할 수 있다. 1000시간 동안 예비 간호사로써 많은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과는 반대로 실수를 반복함으로써 괴로울 수도 있다. 또한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선임 간호사 사이에서 예민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은, 동료들의 위로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다짐한 선서식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이팅게일 선서식은 간호학과 1년 행사 중 가장 큰 행사이자 실습 직전에 하게 된다.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위해서 수업을 모조리 휴강하고 연습하는 3학년을 보며 간호학과에서 얼마큼 중요하게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1, 2학년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 몇 개를 겪게 되었다.
첫 번째는 3학년과 더불어 2학년의 시간도 함께 투자해야만 했다. 2학년은 '내년에 선서식을 해야 하니 미리 봐야 한다'는 명목 아래, 며칠 내내 전공과목 포함하여 모든 과목을 휴강하고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 연습하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처음에는 선서식 당일 날 2학년의 역할이 있는 줄 알지만, 알고 보니 선서식에서 2학년은 애국가나 교가 등의 역할 정도만 할 뿐이었다.
지나가던 2학년 선배의 하소연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할 만큼 어려운 대열이나 상황이 아니라 했고, 휴강 덕에 일주일 내내 보강이 잡혔다고 했다. 물론 학과에서 중요시 여기는 행사이니 정확한 대열에 차질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과 2학년이 직접 봄으로써 미리 학습하라는 취지도 있지만, 아무런 역할 없이 3학년이 대열을 맞추고 혼나는 모습을 굳이 지켜보고 있어야 할지 의문이었다.
두 번째는 3학년을 위해 1, 2학년이 돈을 모아 선물을 사야 했다. 간호학과에서 선배-후배 매칭 된 문화 때문인지 후배들은 축하해 줄 선배가 자연스럽게 지정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의무적으로 선물을 사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1학년인 나로서 3학년과 한번 정도 인사만 했기에 선물 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선물의 추세는 생화 꽃다발과 가까운 백화점 상품권이었다. 추세가 추세인만큼 남들과 비슷한 양질의 선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래서 최대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가까운 꽃시장으로 갔다. 그러고 나서 백화점 상품권은 얼마어치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나가는 말로 3학년 선배가 "요즘 추세는 3만 원이 아니라 5만 원이라던데." 하며 싱긋 웃는 얼굴을 무시할 수 없겠다며 스트레스받던 2학년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2학년 선배의 고민스러운 모습과 주변 1학년 동기들이 아무 말하지 못한 채 일정 금액을 지출하고 있던 터라 나도 덩달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일정 금액을 냈다. 암묵적으로 달갑지 않은 문화에 동조하는 격이 되었다.
나는 다행히 학생이 지출할만한 금액을 요구했지만, 다른 팀들은 조금 무리한 금액을 요구했나 보다. 1인당 4만 원을 걷자고 하거나 3만 원씩 걷자고 하기도 했단다. 부담스러운 가격과 더불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1학년 동기들이 많았는지, 학과 사무실로 많은 문의를 했던 것 같다. 그 후 2학년들에게 권고하는 지정금액이 공고되었다. 아무 말하지 못한 나에 대한 자괴감과 용기 내어 힘을 합친 다른 동기들에게 고마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의무적으로 상품권과 꽃을 사고 선서식에 참석했다.
학교에서 가장 큰 공간에 빼곡히 늘어있는 의자들, 간호복을 입고 차례로 앉아 있던 3학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2학년이 세미 정장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남은 의자는 1학년이 선착순으로 앉을 수 있었다. 늦게 온 동기들은 서서 구경했다. 후배들은 똑같이 축하해 주는 입장이라면 굳이 의자를 나눠서 학년별로 앞에서부터 멀어지는 구조로 나눠야 했을까. 어떠한 설명 없이 서서 듣는 1학년 동기들을 보며, 왜 이런 계급 권력 구조를 자연스럽게 학습하게끔 만드는지 학과에 묻고 싶었다.
1학년이기에 선서식이 와 닿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생각 없이 참석했어야 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을 겪으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선서식이라는 고귀한 자리에 진심 없이 의무적으로 후배들이 참석하여 축하해 준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1000시간 실습 이전에 자신들이 겪는 첫 번째 딜레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촛불의식이 시작되고, 곁에 동료가 될 동기들과 촛불을 나눠가지며 울음을 터뜨리는 3학년 선배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 앞으로 간호학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