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주행 초딩일기 #8. 도둑
1990년 12월 29일 토요일. 흐림.
< 도둑 >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누가 받았는지 엄마, 아빠가 허겁지겁 안방에서 나왔다. 아빠 회사 직원이 건 전화였는데, 회사에 도둑이 들어왔다는 거였다. 입을 벌리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컴퓨터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돈을 노리고 들어와서 금고를 뒤졌다고 한다. 돈이 없어졌는지는 아빠께서 가 봐야 안다고 하시며 서둘러 출근하셨다.
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사회가 원망스러웠다. 얼마 전, 할아버지 사무실에도 도둑이 들어왔다가 돈이 없어서 어지러 놓은 채로 그냥 도망갔다고 한다. 정말 왜 이럴까? 어른들은 돈이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큰 착각을 하고 있나 보다. 하긴, 요즘은 돈을 주고 사람을 사고 판다는데... 연말연시를 조용하고 깨끗하게 보내려고 했었는데, 그 도둑 때문에 실망이다.
'도둑 아저씨들, 마음 좀 바로 잡으셔요. 우리 어린이들이 보고 있어요. 목숨 걸어서 돈을 훔치는 것은 결코 아저씨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 거여요. 또 아저씨께서 하시는 일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도 아셔야 해요.'
'대통령 할아버지, 부탁드립니다. 사회가 혼란스러워요. 저희는 서로 싸우고 훔치고 속이는 그런 것을 배우기가 싫어요. 정치는 사회를, 나라를 바로잡는 일이 아닌가요? 발전된 우리나라가 속으로는 엄청난 범죄자를 가지고 있는데요. 저희는 밖에도 못 나간다고요. 무서워서, 두려워서 말이에요. 사람끼리 서로 믿지 않는 사회를 대통령 할아버지께서 올바르게 인도해 주셔요.'
뉴스 시간에 하루만이라도 좋은 일만 들려온다면 좋겠다.
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덧대는 이야기
< 귀하의 사건이 강력 1팀에 배정되었습니다>
초딩 홍디야.
온 가족 많이 놀랐지.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 훗날 알게 된 사실이 있단다. 아빠가 운영하시던 프로그램 회사의 직원 한 분이 자금과 기술을 가지고 외국으로 사라졌다나 뭐라나. 일 밖에 모르고 사람을 잘 믿던 아빠께서 그날 이후로 적잖이 힘든 시기를 겪으셨지. 이렇게 기록으로 남아있다니 나도 입을 벌리고 말았구나.
얼마 전 학원에 간 건만이에게 전화가 왔어.
건만 : “엄마, 자전거가 감쪽같이 사라졌어!”
애미 : “뭐야, 누가 훔쳐갔나 봐!”
건만 : “왜?”
학원을 마치고 나와보니 상가 앞 자전거 거치대에 시정해 둔 자전거가 없어진 거야. 감자채를 썰다 말고 건만이의 전화를 받자마자 내달려 갔지. 자전거를 묶어두었던 자리에는 자물쇠만 덩그러니 걸쳐 있더라. 익숙한 숫자 넷이 나란히 잠금이 해제된 채 덜렁거리고 있었어.
자전거가 머릿속의 9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들. 자전거를 도둑 맞고 왜?를 외치는 순진한 아이. 건만이에게 자전거가 얼마나 중한지를 알기에 애미로써 뭐라도 해야겠더라고. 넋이 나간 모양새로 떨어지지도 않는 눈물을 머금고 애미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보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어.
먼저 상가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CCTV를 문의했어.
“아이고, 그 자리를 비추는 카메라는 없어요. 상가 내부에서 입구 쪽을 향하는 CCTV가 있긴 한데, 자전거를 안쪽으로 끌고 들어오지 않은 이상 정확하게 보이지 않을 거예요. 전에도 이런 일이 많았고 경찰관과 같이 와서 보시고 했었는데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확인하시려면 경찰서에 문의해 보세요. “
이대로 멈출 수는 없지. 건만이 손을 이끌고 경찰서로 갔어. 자전거 피해 신고 접수를 했어. 처벌은 원하지 않고 자전거 회수만을 원한다고 기재했지. 건만이가 폰에 자전거 사진을 찍어두었던 게 있다며 경찰관님께 직접 전달하더라. 당근에 올라오는 사진들보다 더 그럴싸하게 앞, 위, 측면 상세하게도 찍어두었더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시계를 보니, 저녁을 먹고 나서도 배가 고플 시간이야. 마침 건순이에게 전화가 왔어.
“엄마, 나 배가 많이 고파요. 엄마가 썰어놓은 감자 아빠가 요리해 줘서 그거 먼저 먹을게요. ”
그래. 부녀가 알아서 해줘서 고마워. 기가 털리는 상황에 모자도 기가 막히게 배가 고프구나. 어서 갈게.
건만이는 집에 와서야 울음을 터뜨렸어. 한결 더 퀭해진 눈으로 애비에게 묻더라.
건만 : “아빠, 나 아빠자전거 타도 돼요? ”
애비 : “아빠가 자전거가 어디 있어? “
건만 : “베란다에 있잖아. 앞으로 가지는 않지만. ”
애비 : “아, 실내자전거! ”
조르기로 안 되니 연민 수법을 쓰는 거니. 아들노무시키님 자전거 없는 인생을 생각할 수가 없다더라.
초딩 홍디야.
사회를 원망하고 도둑 아저씨와 대통령 할아버지께 진심을 외치던 너의 글에도, 실내자전거로 텅 빈 마음을 돌리려는 건만이의 몸짓에도, 뾰족한 수가 없구나. 삼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아이의 자전거가 사라지는 현실이야. 스타벅스에서 고가의 노트북을 테이블에 두고도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는 CCTV의 나라. 건만이의 자전거는 찾을 수 있을까.
다음날 아침, 경찰서에서 문자가 왔어.
귀하의 사건이 강력 1팀에 배당되었습니다.
강력 1팀이라는 단어에 선량한 시민도 겁이 나네. 건만이 11살 인생에 큰 배움의 기회를 얻었어. 사십 중반에 경찰서에 가서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첫 경험을 했단다. 무탈히 잠드는 하루를 기록한다.
다친 이는 아무도 없어. 다친 건 아들놈의 마음뿐.
+덧마디
초딩 홍디야, 오늘도 고맙다. 덕분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