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주행 초딩일기 #7. 인연의 끈
1991년 1월 4일 금요일 비.
< 뜨개질 >
온 집안이 조용하다. 뜨개질을 해서인지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뜨개질을 하니 자꾸만 그리로 마음이 쏠린다. 엄마께서 작년에 드시던 목도리를 내가 이어서 뜨고 있다.
뜨개질 도중에 조그만 실수라도 하면 예쁘게 되지 않듯이, 작은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어린이가 되겠다. 털실이 엮어져서 목도리가 만들어져가는 것이 무척 흥미있다.
이 목도리를 누구에게 선물할까?
1989년 12월 10일 일요일 맑음.
< 카드 >
동생과 함께 카드 재료를 사서 카드 만들 준비를 했다. 이제는 성탄절도 오니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시골 할아버지, 삼촌,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 아빠께 모두 쓰고 나니 내것만 5통이나 되었다. 마음이 흐뭇했다. 그것도 사거나 하지도 않고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꾸며서 만든 카드! 언제까지나 내 추억속에....
2024년 11월 18일 월요일. +덧대는 이야기
<인연의 끈>
11살 초딩 홍디야.
분주해서 지난주 일기를 못 챙겼어. 미안. 일기는 원래 밀려 쓰는 맛도 있지?
요즘에는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라 하며 어마어마한 이벤트를 한단다. 지난 월요일에 우리 가족도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낮에 사다둔 빼빼로를 뜯었어. 오리지널맛, 크런키맛, 아몬드맛, 딸기맛 종류별로 사다가 짠 하고 오독오독 먹었지.
너 때는 말이야. 짭조롬한 과자를 즐겨먹고 빼빼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지 아이들과 함께 아그작거리는 길고 달콤한 맛이 좋더라.
입맛은 변했는데 말이야. 일기를 보니 너 때나 나 때나 한결같은 게 있구나. 내 손으로 정성껏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보내고, 뜨개질한 목도리를 누구에게 선물할까 고민하는 모습.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 하는 어린이가 되겠다.
이 문장 소름 돋았다. HONG.D 홍디를 브랜딩하고 H로고를 디자인할 때 꼭 이렇게 다짐했었거든. ‘누구를 대하고 무엇을 만들건 정성을 기울이자.’
어쩌면 네가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있고,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가 하는 노력들을 필요로 하리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리. 너의 기록으로 잊고 지냈던 어릴 적 일상을 회상할 때면, 추억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거든. 그 어떤 드라마보다 뭉클하고 공감되는 기분을 엄마에서 할미가 되어가며 이어갈 수 있겠지. 쓰는 걸 멈추지 않는다면 말이야.
초딩 홍디야. 네 덕분에 하고 싶은 게 떠올랐어.
너 때 말이야. 문화방송 11번 채널에서 <시간탐험대>를 즐겨봤었지. 돈데기리기리 '돈데크만' 기억하니? <별별크만> 별것 아닌 별난 크리스마스 만들기 연재북을 마구 만들었다. 어린 홍디 너의 일기를 뒤적이다 말고.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틈만 나면 무얼 만들고, 선물하고 싶어하는 내가 너와 이어지는 인연의 끈을 정성껏 리본으로 묶어보려고 해. 할미 홍디 기다려주세요. 저도 뭣이 남을지 써 봐야 알겠그등요홍홍.
+덧마디
별것 아닌 별난 크리스마스 만들기 이야기는 <별별크만>브런치북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