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디 Nov 05. 2024

감자와 꽈배기의 공통점

나의 역주행 초딩일기 #6. 어찌 맛없을 수 있겠어

1989년 8월 5일 일요일. 맑음.

< 감자 >

오늘도 수영하러 강가에 다녀온 뒤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감자를 쪄서 먹으라며 가지고 오셨다. 설탕도 찍어 먹고, 고추장에도 비벼 먹었다. 정말 맛있었기 때문에 눈물까지 나올 뻔했다.
이제야 진짜 시골의 맛을 새삼 느꼈다. 집에서도 물론 그렇게 먹어보았지만 맛이 다른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감자 때문에 시골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조금 더 커졌다.



역주행 초딩일기 @HONG.D




2024년 11월 4일 월요일. +덧대는 이야기


< 꽈배기 >


11살 초딩 홍디야.

그동안 잘 먹었니? 너에게 더욱 친근하게 먹힐까 싶어서 잘 지냈니 대신 먹었니로 물어보았어. 두툼한 일기장 뭉치 속에 얼마나 많은 먹거리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볼 때마다 엄마 미소에 배가 부르단다. 일기 제목만 휘리릭 훑어봐도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같은 구황작물부터 돼지갈비, 통닭, 팥죽까지 다양하기도 하지. 김밥, 떡볶이, 돈까스, 만두 등의 분식 메뉴는 줄줄이 비엔나더라.


감자 일기를 쓴 곳은 강원도 시골집 맞지? 여름방학 동안 할머니의 고향집에 따라가 마음껏 놀았던 기억이 나. 강가에서 급류 타기, 다슬기 잡기, 풀밭에서 잠자리 쫓아다니기, 마당의 살구나무 흔들어서 열매 주워 먹기. 어릴 적에도 시골의 매력을 일기장에 적어두었다니 반갑고 놀랍구나. 35년이 지난 어른 홍디도 여전히 시골생활을 갈망하며 숲 속 작은집을 짓고 사는 꿈을 꾸고 있어. 그래서인지 건만이, 건순이는 숙제 앞에서는 꽈배기가 되지만 모래 바닥에서는 달디 달게 뒹굴 줄 아는 아이들이란다.


주말에 우리 가족은 태안으로 해루질을 다녀왔어. 물때가 좋아서 삽, 호미, 엉덩이 방석 챙겨 들고 캄캄한 새벽에 집을 나섰지. 1박 2일 동안 바닷물이 빠질 때마다 갯벌로 출동했어. 무려 세 번의 출격에서 맛조개를 비롯하여, 동죽, 비단조개, 큰 구슬우렁이를 캐고 꽤나 큰 꽃게도 잡았단다. 퇴실 전 숙소에서 밀키트 부대찌개로 아침 속을 든든히 채웠거늘. 모닝 삽질은 금세 기억상실을 불러왔어. 아침 먹었나? 뭐 먹었더라?

 

상경하는 서해대교의 교통체증은 늘 기가 막히거든. 텅 빈 연료통에 넉넉히 주유를 하며 출출한 배통도 채우고 싶더라고. 궁금한 입맛은 시력을 상승시켜 주는 효과가 있나 봐. 주유소 바로 옆에 눈에 띈 찹쌀 꽈배기 가게. 시동 켜자마자 바로 차 세워. 입에도 기름 좀 두르자.


태안 찹쌀꽈배기집 @HONG.D 찰칵


"안녕하세요."

달큰한 발걸음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섰지. 클래식한 꽈배기 칸이 텅 비어 있는 거야.

“기본 꽈배기가 없네. 다 팔렸나.”

"꽈배기는 40초 후에 나옵니다! "

오, 새로 튀겨 나오나 봐. 천 원이다! 가격 완전 착한데? 뭐 먹지? 다 맛나 보여! 40초가 흘렀다.

"꽈배기 나옵니다! "

기름 온천에서 바삭 탱글 뜨끈하게 쏟아져 나오는 꽈배기들. 설탕옷을 입기 전의 매끈한 피부와 요염한 자태에 미치도록 홀려버렸다. 1인당 2 꽈배기에 공룡알 2개 추가. 단돈 만 원의 행복이다.


달리다 밀리다 반복하는 차 안에서 앗 뜨거 오 진짜 맛있어를 연발하며 해치웠다. 애비가 기가 막혀. 바다 모래알 털고 나서면 뭐 하누, 금세 설탕가루로 반짝이는 차량시트. 남은 건 설탕과 낭만 한 줌.


대맛조개와 찹쌀꽈배기의 낭만 @HONG.D




아 맞다 공통점! 초딩 홍디 너보다 35년을 더 살다 보니 보이더라. 1989년의 감자와 2024년 꽈배기가 늘 먹던 것인데도 유난히 맛있었던 공통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 평소에 좋아하던 메뉴다.
두울. 물에서 놀면 시장이 반찬이지.
세엣. 방금 막 나온 뜨끈한 타이밍이 기가 막히고.
네엣. 일상에서 벗어나 낭만을 먹는다.

네가 감자 때문에 시골을 더 꿈꾸었듯이, 꽈배기 덕분에 갯벌 여행이 또 가고 싶어 졌어. 굳이 삽질을 하러, 간 김에 꽈배기 먹으러.

오늘도 고맙다.


이전 06화 월요일, 새 주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