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디 Dec 10. 2023

크리스마스트리 꾸미셨나요?

구름샤브 제공 성탄트리 사냥

집에 크리스마스트리 꾸몄어?


사줌마 톡방에 1줌마가 건넨 한 마디로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이 붙었다. 1줌마 둘째 따님의 간절한 바람이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선물이 가득 놓여있는 모습이란다. 문제는 트리가 미니사이즈라는 점. 첫째 따님은 애미 키만큼 컸는데 이제야 큰 트리를 사도 되는가, 접으면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가 고민이다. 2줌마네 트리 사정은 비닐 포장에 묶여 있는 닭다리 꼬락서니. 매년 똑같이 꾸미려니 지겨웁다. 베란다에서 꺼내 놓은 식상한 나무는 며칠 째 거실 구석신세다. 3줌마네도 10년째 같은 트리로 지루하기는 매 한 가지. 최신 유행의 오너먼트로 싹 바꾸고 싶다. 알전구는 버리고 좁쌀전구로 갈아타고 싶다. 달아오른 불길은 4줌마네까지 옮겨 붙었다가 겨우 꺼졌다. 그 집 먼지트리 덕분에.



치솟는 물가에 새끼들 좋아하는 딸기도 쉽게 집어 들지 못하는 요즘, 감성 찾아 트리 나부랭이에 큰돈을 들이자니 주춤한다. 단톡방 트리 불길이 사그라든 후, 사줌마들은 각자의 생활 속에서 특파원이 되어 성탄나무 시장 소식을 공유했다. 코스트코 16만 원짜리도 스타일이 안 나고, 트레이더스의 2미터가 넘는 LED트리는 22만 원이 넘는다. 누적판매 72만 개 트리마켓을 내세우는 모던하우스의 15만 원대가 있는데, 고급 이파리(PE)가 한 올도 없는 100% 일반(PVC) 나무였다. 우리 사정에 올 100 고급이(PE)는 허세고, PE:PVC=50:50 은 되어야지.


장만하면 수년 동안 묵힐 나무라 눈으로 직접 보고 잡아야 쓰겠다. 특파줌마들의 목적지는 오프 마켓에서 저렴하고 눈호강도 할 만한 장소,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이하 고투몰)이다.

트리에 불난 김에 부채질해야지. 이번 주 수요일은 고투몰로 출동하자. 입도 발도 쉴 틈 없는 수미만행(수요미식+만보의행복) 사줌마와 성탄트리 사냥을 가본다.




솜사탕 구름샤브


동네에서 새끼들 라이딩이나 하는 서울 촌줌마들이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니 신세계다. 9호선 급행열차의 꿀 같은 고속 여행으로 신이 나서 거방지게 떠드느라 배가 고프다. 달콤한 사냥은 먹고 시작해야지.


고투몰 파미에스테이션 구름스키야키. 찰칵 @HONG.D




성탄나무 유렵(遊獵 놀러 다니면서 하는 사냥)


솜사탕 같은 왕구름샤브 한 상 거하게 영접한 후 성탄나무 한 그루 유렵 하러 지하상가로 건너가 본다.

십수 년 만에 와보는 고터 지하의 세계는 '고투몰'이라고 그럴듯하게 이름이 바뀌었지만,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기에 여전했다.

17평 신혼집 거실에 이중 커튼을 달겠다고 어슬렁거리던 꼬꼬마 새댁이 되어 상가 거리를 걸었다. 어머, 삐삐네다! 여기였다 여기. 취향에 꼭 맞는 커튼 원단에 이끌려 창문 사이즈도 정확히 모른 채 덜컥 주문을 했던 새댁 모습이 삐삐네에 스친다. 열흘 후 고이 제작해서 보내줬더니 “길이가 안 맞아요, 어떡해요흐흥흐엉. ” 울어재끼는 홍새댁의 전화를 받아주시던 사장님의 모습도 여전히 푸근하시다. 그 커튼은 어찌 되었냐고? 잘 수선되어 아직도 현역으로 매달려있다. 나무 사냥 왔다가 잊었던 추억을 건져 올렸네. 이제 농익은 홍줌마의 얼굴에 엄마 미소가 피어오른다.


유렵을 왔어도 임무는 챙겨야지. 성탄트리 사냥 오늘의 미션은 다음과 같다.

하나. 1줌마의 성탄트리를 발굴하라.
두울. 좁쌀전구의 최강자를 가려내라.
세엣. 스테디 오너먼트를 골라보자.
네엣. 1시 40분까지 동네로 복귀한다.


찰칵 @HONG.D


트리사냥 미션수행


하나. 1줌마의 성탄트리를 발굴하라.


즐비한 옷가게들을 지나 반짝이는 반딧불이 불빛들이 가슴을 들뜨게 하는 공간에 다다랐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명소로 SNS에서 핫한 신세계 본점이나 코엑스처럼 화려한 조명과 음악은 없다. 호텔스럽지는 않아도 우리 집을 설레게 할 탐나는 물건이 많다. 사냥 명소는 잘 찾아왔다.


한 바퀴 스윽 둘러보니 인터넷으로만 봤을 때는 몰랐을 미세한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서 거기겠지 우습게 봤더니, 집집마다 나무 잎사귀 모양과 풍성함, 색상 등이 오묘하게 다르다. 가격은 이파리의 재질이 고급이(PE)냐 일반(PVC)이냐에 따라 몇 배씩 차이가 났다. 대세는 PE:PVC 반반이고 사줌마의 가성비와 가심비 모두 충족된다.

이제 사이즈를 가늠해 보자. 120cm는 아담한 취향, 180cm는 꿈의 신장이고 150cm가 적절해 보인다. 2줌마네 6년 묵은 나무도 키가 고만한데 거실에 놓기에 적절하단다.


1줌마네로 옮겨 심을 성탄나무를 소개해본다. 150cm의 키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픽 포인트는 두 가지, 차별화된 디자인과 실용성이었다. 활시위 같은 트리의 받침대를 황금화분이 우아하게 커버해 주는 디자인에 끌렸다. 나무의 지름이 크지 않아 거실 공간을 덜 차지하고, 중딩을 앞둔 큰 딸과 엄마에게도 크리스마스 홈카페 분위기를 내기에 적합하였다. 화분이 놓인 소화전 앞에서 사장님과 옥신각신해 본다. 10만 원에 발굴 성공.

“이런 아가씨들이 어디 있어. 이러면 나 점심도 못 사 먹어. ”

버럭 하시면서도 사장님 여러모로 감사해요. 아가씨들이라니. 사장님 꾼이십니다. 장사꾼.


소화전앞에서 발굴한 나무 1줌마네 옮겨심기



두울. 좁쌀전구의 최강자를 가려내라.


트리시장에 몇 년 전부터 좁쌀전구, 지네전구로 불리는 작은 조명이 알전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반딧불이 사이즈가 점점 작아지는 게 마켓 트렌드인가 보다. 왕년에 포켓디자인 하나로도 1박 2일을 돌아다니던 디자이너 아닌가. 내 눈이 자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좁쌀전구의 최강자를 가려내보겠다. 물론 내 눈에 콩깍지지만.


좁쌀 전구도 묘하게 다양하더라. 빛의 색상은 따뜻한 노란색, 시원한 순백색으로 크게 나뉘고, 지네 같은 연결 줄도 블랙, 투명, 그린 세 가지 색상 중에 고를 수 있다. 중요한 건 전구 한 알의 크기이다. 신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크기는 깨 뿌린 듯한 타이니 사이즈 전구인데, 아무래도 알이 작다 보니 많이 둘러야 풍성한 반딧불을 볼 수 있다. 그다음으로 큰 사이즈는 좁쌀 한 알이 밝아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오묘함도 매력이라 고민이 되었다. 최종 픽은 신상 깨전구로 각자의 분위기에 맞게 누구는 노란빛, 누구는 하얀빛을 골랐다.


고투몰 크리스마스트리 조명맛집 추천


세엣. 스테디 오너먼트를 골라보자.


트리 사냥 현장을 체험해 보니 뼈저리게 알겠다. 오너먼트는 참말로 제멋대로 취향에 따른다. 나무에 전구만 친친 감고 장식 하나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없는 듯 있는 트리 유행을 발맞추어 따라가지 않으려면 빨강, 골드, 실버가 오래도록 함께 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분위기에 맞추어 해마다 아이들과 하나씩 골라 추가해 보는 것도 추억이 될 수 있겠다. 결국 또 집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장식들을 손에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멈추었다. 차라리 내 새끼들 딸기 한 알을 입에 넣어주겠다. 이 날 사줌마 통틀어 오너먼트는 꼭대기에 올릴 큰 별 하나 달랑 따왔다.


좁쌀전구 사냥으로 집에 있던것들이 있어보인다


네엣. 1시 40분까지 동네로 복귀한다.

뚜벅이 애데렐라들은 서둘러 집으로 가야 한다. 반짝거리던 지하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향한다. 1줌마의 둘째 따님을 위하여 성탄나무 짊어들고. 효도까지 안 바란다. 오늘밤 엉치나 조금 밟아주련.



네 줌의 문제해결


눈치채셨을지 모르지만 글쓴이는 2줌마다. 스스로 사냥 보고해야지. 이 날 좁쌀전구 200구X3개에 어댑터 1개를 구해왔다. 닭다리같이 비닐을 뚫고 나온 트리기둥을 간신히 잡아 빼내다 말고 지갑 사정 두드려보았다. 고투몰 공식시세는 200구 한 줄에 12,000원. 150cm 트리 기준으로 가게마다 3줄이다 4줄해라 추천사가 달랐다. 물론 풍성할수록 빛나는 건 맞지만, 오너먼트와 함께 연출할 것이고 예상에 없던 지출이라 3줄로 결정했다. 12,000원X3개=36,000원에 어댑터 1개 8,000원 하여 총 44,000원의 사냥값을 들였다.

인터넷 세계를 조사해 보니 어댑터를 따로 팔지 않고 200구 한 세트에 23,000원~27,000원 선이고 리모컨은 필수 포함이다. 세트 수량을 추가하면 어댑터+리모컨값을 더 내게 되는 셈이네. 고깃집에서 술로 돈 버는 법이지. 3세트에 택배비까지 더하면 69,000원 정도.


꺄오. 왕구름샤브샤브(2.3만원)와 빽다방 아아(2천원)는 공짜로 먹었다. 덤으로 만보는 거뜬히 걸었으니 하루 운동인증도 퉁이다. 2줌마 입꼬리 씰룩거리며 인정욕구 샘솟는다.

완성된 우리집 트리 봐주실래요? 신상 좁쌀전구 하나로 글쓴이 눈에는 집에 있던 애들이 있어보여요호홍홍.


문제파악완료.PE+PVC 반반 6년산 트리에 신상 좁쌀전구가 빛난다


메타인지, 메타인지 하지.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면 좋지만 때로는 작은 경험을 쌓아가다가 성취감을 얻고 후에 문제를 파악하기도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꾸준히 행하는 것이다. 불태웠던 성탄나무 사냥기를 어찌 마무리할까 고민하다가, 반짝이는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신 20세기 대표 그래픽 디자이너를 모셔왔다.



디자인은 사람을 향해 있다.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사람이 마주한 문제를 파악하고
최선의 해결책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이반 체르마예프(Ivan Chermayeff, 1932~)




+덧마디.

수요일마다 거방지게 먹고 걷는 수미만행(수요미식+만보의행복) 사줌마의 떠들썩 이야기는 고객 반응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24H OPEN 홍디 잡문집HOUS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