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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디 Jan 08. 2024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

내가 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1. 핫도그식 잔소리


출출해서 냉동핫도그를 한 봉 꺼냈다. 전자레인지 1분 40초를 돌리고 에프에 추가로 2분을 넣었다가 한 김 식히면 겉바속촉 핫도그 완성. 그림 그리는 디자이너는 입맛을 다시며 파도치듯 케챂을 뿌려보려 했단 말이다.

뿌지직. 피슈욱.

공기반 케챂반 튀어나오며 기분 좋은 플레이팅은 시작부터 망했다. 5분 전까지 냉동실에 수감되어 있던 돌덩이더라도 관용의 손길로 케챂 물결을 샤라락 그려주면 회개의 접시가 그렇게 뿌듯한데, 나만 그런가. 식량창고문을 열어 여분으로 사놓은 케챂이 있나 스캔을 해본다. 오예. 있다 있어. 오뚜기와 눈을 마주치고 비닐을 뜯으려다 눈에 띈 빨간 글씨의 잔소리. 


< 젓가락 등으로 구멍을 내지 마시고, 반드시 은박지를 펼쳐서 제거 후 사용하십시오. >



귀찮음 인정한다. 빨간 오뚜기의 노란 뚜껑모자를 벗기면 진득하게 달라붙은 두꺼운 은박지가 반짝한다. 깔끔히 떼어내는 건 일도 아닌 듯하지만 일이다 일. 고릿적에는 숟가락 뒤꽁무니로 구멍을 내다가 케챂이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아본 적이 있다. 그리하여도 이제는 십수 년 차 주부. 찢어진 은박지 조각도, 알루미늄과 토마토소스와의 오랜 접촉도 염려된다. 손가락 관절염의 통증을 참아내며 반드시 흔적 없이 떼어내고야 말겠다.

몸은 행하면서도 잔소리를 들은 찝찝함이 남아있다. 기대에 차서 핫도그를 먹으려는 아이에게 케챂스런 애미가 생각지도 않던 빠알간 설교를 한 꼴이다. 젓가락을 운운하니 젓가락을 가지러 가고 싶고, 구멍을 내지 말라고 하니 어떤 모양으로 뚫어볼까 싶은 심보는 무얼까. 에잇. 핫도그 눅눅하게 식었다.

 




#2. 자동차적 잔소리


1년에 한 번 자동차 기본 점검을 예약해 둔 날. 요즘 캠핑도, 나들이도 뜸해서, 지하주차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던 덩치카를 타려고 다가갔다. 끝이 세모로 접힌 네모난 종이가 운전석 창문에 꽂혀있다.


주차시켜 놓으시면 찾아가서 세차해 드립니다.
매일 아침 깨끗해진 차량을 만나보세요.
아르바이트가 아닌 사장이 직접 작업합니다.


‘여보세요. 차 더러운 거 저도 알거든요.‘

아, 기분 드럽게 더럽네. 어쩌면 별 일 아닌 일인데 말이다. 쓰윽 옆의 차량을 살펴보니 파란 명함도, 꼬질함도 없이 광택이 난다.

’ 사장님, 거무튀튀한 고객들로 골라가며 영업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요. 세차를 하려고 했거든요.‘

주말에 세차장으로 가다가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세차를 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면. 명함 속 사장님의 멘트가 친절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 아파트에 출장 와서 세차를 해주고 가는 서비스네? 이런 것도 있구나. 월 얼마야?‘

현실로는 행하지 않을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왼쪽)내차아닌데 잔소리임 (오른쪽)내차인데 잔소리 아님



카센터에 점검 접수를 하고 고객대기실로 가는 길, 바로 옆 수리대에 올라가 있는 동일차종을 보고 가슴이 덜컥했다. 6인실 옆 자리에 한 날 입원한 동지 같은 저 덩치카는 무슨 병이 있는 걸까. 어떤 사연으로 저렇게 속내를 다 드러내놓고 우뚝 솟아 있는가. 

안쓰러움은 잠시. 즐비한 네모네모 부품들을 보고 있자니 내 속을 들킨 기분이다. 거실 바닥에 개켜놓고 나온 ‘빨래더미’ 들이 떠오른다. 스스로 떠는 빨간 잔소리. 


< 빨래를 개어서 바닥에 쌓아두면 깨끗함이 사라지고 오염의 우려가 있으니, 바로 서랍에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


건순이 등원하자마자 카센터 예약 시간에 맞춰 나오느라 마무리를 못 지었다. 나름 가족구성원별로, 서랍별로 구분 지어둔 네모난 빨래 빌딩들이 쓰러지지 않고 기다려주기를. 집에 돌아가자마자 각 방으로 넣을 거니까. 제발 잔소리 고마해라.




“홍디 차주님, 점검 끝났습니다.”

“네, 네!”

”차를 많이 안 움직이시나 봐요. 배터리 컨디션은 괜찮은데 충전 상태가 좋지 않아요. 운행을 자주 해주세요.“

덩치카 성적표를 받아 들고 나왔다.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왜일까. 잔소리 세계는 경계가 있을까.


출처 : 유퀴즈온더블럭


#3. 잔소리계 잔소리


잔소리의 기준은 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라지. 듣는 이가 잔소리로 들으면 발뺌할 수가 없다. <유퀴즈>에서 잔소리 띵언 한마디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똑 부러지는 여학생이 떠오른다.

여러분은 잔소리를 하는 입장인가요, 듣는 편인가요. 나야말로 아침부터 소중한 내 새끼들에게 잔소리를 했던가. 애미는 관심 어린 말을 한 건데, 아이는 귀를 닫고 싶은 잔소리로 들었을까. 잔소리를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는데 말이다. 서로 기분만 상할 뿐. 


전문위탁가정 위탁모 김은경 저자님이 <아이도 당신도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예요>에서 ‘잔소리 적게 하는 부모’에 대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아이들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조금 느릴 뿐이다.
믿고 기다려 주기만 하면 된다.
괜히 힘쓰지 말고
그 에너지를 자신의 취미나 독서에 써보라.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 특히 나 자신에게도 해당한다. 자주 하지 않는 일이나,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는 느린 것이 당연하다. 서로의 속도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자세가 중하다. 말이 쉽지, 이게 가능한가 싶을 만큼 어렵다.

아이가 숙제를 하려고 했는데 "공부 시간이네?" 애미가 뱉은 말을 반성한다. 500g에 9,900원 금딸기, 부디 천천히 먹으라고 반절로 배나 가르면서 시간을 끌어보자. 내 새끼를 재촉하지 말고 믿고 기다려 주어야겠다 다짐한다. 그놈의 세차를 하려고 했는데, 못 하고 있어서 마음 쓰고 있는데, 세차해 준다는 영업이 기분 나쁘게 다가온 건 내가 잔소리로 들은 거다. 속도가 어긋났을 뿐.




같은 자리에 매너주차완료


집으로 돌아와 덩치카 붙박이 자리에 주차를 하고 빨래탑 생각에 서둘러 내렸다. 출발할 때는 못 보았던, 바닥에 버려진 파란 네모들. 헛웃음이 난다.

홍디야, 괜히 힘쓰지 말고 글이나 단디 써라.




대문사진만 pixabay


오늘도 일상을 배워가는 길=STREET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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