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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Mar 08. 2021

여기가 아니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라서 좋아. 감사해.



예측 불가능한 게 인생이라지만 사실 이 정도는 내선에서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었는데, 어쩐지 나는 어제까진 예상에도 없던 장소에 와서 엉뚱한 일을 하고 있었다.  동물 먹이주기 체험장! 여기가 아니었잖아? 나는 분명히, 분위기 좋은 카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 것 따위 아랑곳없이 둘째는 염소 입 무를 가져다 대며 '염소야 마니 머거~'하고 말했다. (휴  밥이나 잘 먹자) 다리가 저려지만 둘째 녀석의 손과 입이 너무 귀여워서 차마 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토끼 앞에서 자리를 뜰 줄 모르는 딸 옆 당연히 남편이 지켰다.



드라이브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들른 수목원에는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가득했다. 동물 먹이주기 체험이 끝나자 아이들은 레일썰매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꺅-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레일 위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타도 재밌을 것 같았다. (물론, 애들이 내게 그런 기회를 줄리 없지만) 썰매 위에 나란히 앉은 두 녀석의 입이 마스크 속에 숨어있는데도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 남편만 고생이지. 애들은 알까? 아이들을 썰매에 앉혀주고 난 뒤 레일 옆을 썰매보다 더 빠르게 뛰어내려 오는 아빠가 뜻하지 않게 체력단련 중이라는 사실을. 수십 개의 동영상을 남기고 딸기우유와 핫초코 한잔씩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나서야 겨우 수목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해가 기우는가 싶더니 날이 벌써 속절없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몇 시간 만에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오늘 하루 즐겁게, 행복하게 보내라는 메시지가 몇 개 더 와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제 생일이 특별한 날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그럼에도 이런 날을 기억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덧붙인 비슷한 내용의 답장을 또 써넣었을 때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무슨 소리야! 그래도 생일이 좋더라!'라는 답을 받았다.  들어왔던 그 문장에 나도 잘 몰랐던 내 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맞아, 나는 내내 생일을 기다려왔다. 일 년에 하루뿐인 나의 날, 생일을!


동물 먹이주기 체험이나 지켜보고, 레일썰매 앞에서 아픈 다리를 접었다 펼 일이 아니었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서른여덟의 생일이었다.


누군가 결혼을 하는 이유가 단지 외롭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단호하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할 것이다. 아니, 딩크로 사는 걸 권하게 되려나. 결혼은 해도 외롭고, 육아 앞에선 오히려 외롭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남편 역시 같은 마음이었던지 남편 생일에 주었던 자유시간 쿠폰에 아주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부터 잠시 멀어지는 일이 이렇게 행복할 일인가, 싶긴 하지만 좋은걸 어쩌라고. 내내 함께 하려고 한 결혼인데 나는 종종 혼자 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결혼이 행복했음에도, 아이들과 남편, 내 가정이 무엇보다 소중하면서도 동시에 '나'도 소중했기에 나를 위해서만 쓸 수 있는 시간이 귀했다. 하지만 그런 찬스는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생일에 다 저물어가는 해를 보면서, 한 달 내내 생일을 핑계로 친구들을 만나 케이크에 촛불을 불었던  20대의 내가(그립네 티지아이) 동물 먹이주기 체험장에서 무채를 들고 있는 미래를 미리 알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해할지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20대의 나는 아무리 설명해도 절대로 모를 것이다. 내가 주말농장을 하며 알게 된 식물성장의 경이로움과 뿌듯함을 그때는 몰랐듯이,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하듯이, 몰라도 그만이고 그뿐이지만 알게 되면 절대로 헤어 나오지 못할 아이들의 소중함과 가정의 따뜻함에 대해서 말이다.


내 옆에서 무접시를 들고 서 있다가 레일썰매장을 종횡무진하던 남편은 생일 전날 졸린 눈을 비비며 12시까지 버텨 '생일 축하해! 내가 젤 먼저 했다잉' 이란 말로 나를 웃게 해 준 사람이다. 생존본능인지 요술인지 모르게 형편없는 요리실력에도 불구하고 아주 맛있는 미역국으로 생일 아침상을 차려주고, 진심이 절절한 편지로 날 울렸다.



이 남자가 내게 어느 기념일에 써줬던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인생이지만 너와 함께라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해'라는 문장을 나는 항상 가슴속에 품고 하루가 힘겹거나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떠올린다.


가끔, 그래 아주 가끔, 이렇게 집이 넓은데도 사시사철 굳이 내 옆에 모여 앉아 살을 대고 있는 아이들과 거의 한 몸처럼 똘똘 뭉쳐 있을 때나 하루 종일 '엄마'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단 한 시간만이라도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있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나의 일상이자 결혼생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단단하게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게 결혼이기도 했다. 2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안다면 영락없는 아줌마에 집순이가 되어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아줌마가 된 내 인생의 가치와 깊이가 그때의 나보다 더 깊고 크다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국수를 먹어야 한다고 용돈까지 보내주셨던 양가 부모님 덕분에 생일날 외식메뉴는 짜장면이었다. 작은 입에 긴 면발을 열심히 끌어당겨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꼬불꼬불 흰머리가 너무 많이 늘어난 남편의 정수리를 보며 내가 오랫동안 이들 옆에서 자리를 굳건히 지켜며 따뜻하게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새로울 것도 없는 인생, 매일매일 비슷한 삶 속에서도 나를 웃게 하는 이들도 이 세 사람뿐이고,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는 것도 다 이들 덕분이다.


서른여덟 번째 생일, 잘 살아볼, 즐겁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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