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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Apr 06. 2021

진작 각방 쓸 걸 그랬어

편하다, 편해!


결혼을 준비하던 무려 10년 전, 엄마는 남편과 나를 에이스침대 매장에 데려가(엄마가 아는 최고급 매트리스 브랜드였다)  200만 원에 가까운 매트리스를 사주며 우리의 행복을 빌어줬다. 부는 당연히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가치관에 걸맞은 선물이었다. 남편은 30년 동안 줄곧 바닥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침대에서 자면 허리가 아프다더니, 웬걸! 며칠 만에 그 침대에 홀딱 빠져버렸다. 그렇게 우린 결혼과 동시에 에이스매트리스에서 한 이불을 덮는 생활을 시작했다.



신혼 때는 퀸사이즈 침대가 엄청 넓게 느껴졌다. 손을 꼭 잡고 잠들고, 싸우고도 한 이불을 덮고 잤던 그때의 우리는 얼마나 귀여웠던가!


아이를 낳고 나서도 당연히 한 이불을 덮어야 하는 줄 알. 같이 자는 게 얼마나 중요했던지 우리 침대 옆에 아기침대를 붙여놓고 잠을 청했다. 하긴, 그 쯔음엔 첫아이가 새벽 수유를 할 시기여서 환상의 2인 1조 분유 타기 미션을 매일 밤 성공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기가 뒤척거리다 울음이 터지면 남편을 흔들어 깨워 '자기야 우유'라는 암호를 외쳐 미션 시작을 알렸다.(그는 내가 저 암호를 말하기 전까진 절대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진귀한 귀를 가졌으므로) 내가 우는 아를 안아 달래고 있을 때 남편은 분유포트에 물을 올리고 속하게 젖병에 분유를 담은 뒤 160미리 선을 칼같이 지켜 물을 부어 매일 밤 유를 가져왔다. 휴, 거짓말이다. 분유를 타오라고 남편을 깨웠는데 잠이 덜 깬 남편이 낮잠재우기용으로 집안에 들여놓았던 유아차를 방으로 밀고 들어온 날도 있었다. 그뿐인가 칼 같은 160미리는 무슨, 얼마나 비몽사몽간에 분유를 탔는지 젖병이 아니라 분유통에 물을 확 부어버리는 바람에 새벽에 분유를 사러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물론 나도 지지 않았다. 아기를 어르고 달래며 노래를 부르다가 쾅-하고 옷장문에 아기 머리를 부딪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마워ㅜ) 매일 밤 엉망진창의 전쟁통속에서 분유타기 미션을 행한 뒤 우린 또다시 한 이불을 덮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아이가 두 살이 되고 세 살이 되고 네 살이 되면서 퀸사이즈 침대는 터져나갈 듯이 좁아졌는데 우리는 누구 하나라도 떨어질까 걱정하며 사방에 침대 가드를 설치하고 종이짝처럼 얇게 몸을 구겨가며 매일 밤을 보내야 했다.

 우리도 침대 두 개를 붙여 넓게 자는 방법을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우리 빼고 다들 넓은 집에 사는 걸까) 아무리 작은 싱글 침대를 붙이려해도 방문이 안 열리거나 옷장문이 안 열렸다. 결국 잔 것 같지도 않은 불편한 수면환경을 일상이라 여기며 피로를 덕지덕지 달고 각자 출근했다.


아이가 더 크고 둘째까지 임신했을 땐 다 같이 바닥에 내려와서 잤다. 소중한 에이스침대를 머리맡에 모셔두고 울엔 온수매트에서, 여름엔 다 같이 거실로 나가 거실 에어컨 밑에서 한 몸처럼 붙어 지냈다.



너무 당연한 생활이라 개선에 여지도 두지 않았다. 스무 살을 지나고 서른을 지나 마흔 가까이 오면서 멋대로 재단했던 상황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편협했던 생각과 편견에 사로잡혀있던 내가 너무나 좁고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을 때때로 실감했으면서도 그놈의 한 이불이 뭐라고! 나는 여전히 세상이 하라는 대로 하고 살라는 대로 살아야 할 것 같 평범한 인생에 발목 잡혀 있었다.  것도 아닌데 부가 각방 써도 되나 싶었던 것이다.



변화는 생각도 못한 곳에서 일어났다. 구성원이 넷으로 늘어 드디어 침대 두 개를 붙일 수 있는 30평대 아파트로 이사한 우리는 딸의 잠자리 독립을 시도했다. #아이방 #아이방꾸미기 #초등학생아이방을 수없이 검색하고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어지간한 집에는 다 있다는 디자인의 낮은 원목 침대를 들였다. 그 위엔 무려 패밀리세일에서 공수해온 요정과 공주가 뒤섞인 베이비핑크의 알레르기 방지 패드도 깔았다.



학교도 가고 멋지게 꾸민 방에서 자기만의 생활을 시작할 줄 알았던 딸 대신 어쩐 일인지 그 침대는 남편의 차지가 되었다. 남편은 하루 이틀 베이비핑크 이불에 누워 자는가 싶더니 혼자서 잠자리 독립을 이뤄버렸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원칙에 어긋났던 일이라 처음엔 남편도 나도 갈팡질팡했으나 고민할 필요도 없이, 솔직히 너무 편했다.



그동안 새벽다섯시반에 일어나서 반신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남편이 더듬더듬 방문을 찾으며 내 발과 다리를 얼마나 밟았던가!(그래, 너무 얇아서 거기 있는 줄 몰랐겠지 응?) 새벽에 둘 다 깜짝 놀라. 헉 미안해, 어 괜찮아 그랬던 날들. 그건 차라리 나았다. 어쩌다 아들 딸이라도 건드리는 날엔 뜻하지 않았던 새벽 육아로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남편과 따로 자기 시작하면서 가족 구성원 모두 수면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 애초에 독립시킬 구성원이 바뀌긴 했지만 그 편이 생활패턴과 훨씬 더 잘 맞았다.


살을 맞대고 자야 할, 그러니까 꼭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잠들면 구남친이었던 남편은 전남친들이 한 번씩 써봤다는 그 멘트에 현 남편의 제안까지 더한 카톡을 전송해 온다.


자니?

자기, 자니? 자나요?


나는 기분 나는 대로 ㅋㅋㅋ를 마음껏 전송한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벽하나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 각자의 방을 찾아가게 되면 남편과 각각 싱글 침대를 나란히 두고 생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엄마가 눈을 흘기는 것도 모자라 등짝 스매싱을 날리며 '으이그 이것아 내가 해준 침대는 어쩌고! 그래도 부부가 같이 자야지!' 할 것이 분명하지만. 결혼생활에서 적절한 따로 또 같이를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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