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남편을 붙잡고 아이들이 앞다투어가며 종일 있었던 일을 바쁘게 쏟아낸다. 막 퇴근한 남편이 땀에 젖은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벗는 와중에 아이들을 향해 몸을 낮추고 그래 응응, 하고 번갈아 대답해 주는 장면을 매일 지켜본다. 행복은 수천수백 가지의 모양을 하고 있겠지만 이 장면 안에 나의 행복이 모두 들어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빠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겠지. 그 시간들 안에 나는 꼭 우리 딸처럼 어리다. 아빠는 우리 남편처럼 와이셔츠를 입고 회사에서 돌아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주 까만 밤, 어둠을 휘적휘적 걷어내고 피로를 손등으로 쓸어가며 작고 아늑한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아빠! 하고 부르는 한마디로도 한 사람의 인생을 행복으로 채울 수 있는 존재가 자식인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나는 뒤척이다 듣게 된 아빠의 목소리에 일어나 아빠를 꽉 안아줬을 텐데.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졸렸고, 작았기 때문에 작은 소리에 인상을 썼다가도 금방 꿈나라로 떠나버렸다. 평범하고도 지루한, 그래서 피곤한 무수한 날들을 쌓아가며 아빠는 우리 자매를 키웠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 아빠의 인생이 60이라는 숫자 앞에 섰다.
이른 결혼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긴 아이, 따라온 가난에 당황했을 법도한데 희생이란 단어를 아주 크게 그려온 사람처럼, 아빠는 당연하게도 인생 안에서 늘 아빠였다. 그뿐인가 다정하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그런 아빠의환갑을 맞이해 우리 자매는 근사한 선물을 하기로 결심했다. 꽤 오랜 기간 매달 오만 원씩 저축한 돈이 사백만 원가량 됐다. 계획대로라면 부모님은 엄마 환갑 때처럼 해외여행을 가셨어야했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이 선물로 대신하기로 했다. 여동생과 나는 아빠에게 필요한 물건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생신과 어버이날 같은 가족행사를 지나오며 엄마의 선물보다 아빠의 선물을 고르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웠다. 어쩐지 엄마는 늘 필요한 게 많았고, 정확히 알려주는 게 서로를 위한 거라는 화끈함까지 갖추고 있어'얘 나는 립스틱이 필요해!금팔찌가 갖고 싶더라! 다들 하나씩 차더구먼~'해서 차라리 쉬웠다. 반면 아빠는 너무나 어려웠다. 모든 물건이 오래되고 낡은 것 같은데도 손에 익지 않으면 새로 들이지 않았고 신중하게 고른 만큼 오래오래 아껴 써서 늘 필요한 물건이 없었다.
이번에도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금액이 커지다 보니 더 곤란하던 차였다. 다행히 시계가 필요한 것 같다는 소식을 엄마에게 접하고 동생과 나는 조금 들떴다. 이미 머릿속으로 아빠의 팔목에 유명 브랜드의 시계 여럿을 채워봤다. 롤렉스까지 갔다가(오우 너 생각보다 많이 비쌌구나?) 너무 멀리가 돌아오긴 했지만 번쩍이는 시계를 사드릴 생각에 조금 들떴다. 인터넷을 탐험했던 나와 다르게 좀 더 빠릿빠릿한 동생은 퇴근 후 백화점에 들러 스캔까지 마쳤다. 아빠 나이대에 어울리는 시계들과 스타일을 고심해 고른 후 동생이 사진을 보냈을 때 아빠는모델명을 기어코 찾아 가격을 알아보곤 아연실색한 뒤 '내는 오만원짜리면 충분하다!'라는 망언을 남겼다. 오만 원? 오만 원짜리라고? 이 소식을 들은 제부가 요즘은 군대 갈 때도 오만 원짜리는 안찬다는 명언을 남겼던가(!)
고작 오만 원이라니! 롤렉스는 고사하고 몇백만 원짜리 시계를 차도 충분한 아빠인생의 크기를 겨우 오만 원안에 잡아두는 일이 너무 속상했다. 아빠의 60년 인생 안에 포기라는 단어는 매번 존재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진 포기와 때로는 선택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저 버티거나 일상적으로 살아내면서 지켜야 했던 것이 우리 가족이었다는것을 안다. 이제는 다른데 여전히 아빠는 아홉, 열 살의 우리 아빠에 머물러있다.
어른들이 받고 싶은 선물 1순위라는 현금은 우리가 써줬던 편지처럼 다이어리 안에 꽂혀 몇백만 원짜리 책갈피가 되고 말 것이다. 동생과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아빠와 상의 없이 마음대로 선물을 안겨주기로 결정했다. 노트북, 패드 등 여러 품목이 물망에 오르던중 동생이 아빠랑 스크린골프 갔던 일을 떠올리며 너무 낡은 드라이버와 가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처럼 갑갑하다 이내 명쾌해진 결론에 속이 다 시원했다. '아빠한테 말하지 말자. 그래 그러자. 말했다간 나뭇가지로만들어서 친다고 할지도 몰라.' 우리는 됐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뻐할 아빠 얼굴을 생각하며 선물을 골랐다. 그러나 결국 주는 기쁨을 맛보지도 못한 채 무산되고 말았다. 전화를 해서 얼마나 필요한 게 없는지 너무나 절절하게 말해준 아빠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효도선물을 받는 대신 아빠는 환갑을 맞이해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린 후 백만 원을 담은 봉투를 건넸다고 엄마가 말했다. 할머니도 지지 않고 편지와 용돈을 준비하셔서 여러모로 훈훈한 자리였던 모양이다. 하- 아무래도 내가 환갑은 되어야 아빠에게 당당히 돈 백만 원 안겨드릴 수 있을 것 같은 전개에 할 말을 잃었다.
허탈해진 마음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선물 대신 케이크를 골라보았다. 감동적인 멘트를 썼다간 아빠가 울고 말 것이라는 동생의 말에 따라 재밌는 문구를 고심해 흑임자 떡케이크를 주문했다. 이것도 안돼, 저것도 싫어, 온갖 거절이 난무한 환갑 선물은 몇백만 원짜리 시계에서 겨우 케이크 한판으로 곤두박질치며 완전히 실패했지만 그래도 남는 게 아주 없진 않았다. 선물을 사려고 했던 그 일주일 동안 매일, 아주 오랫동안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가 뭘 하고, 어떤것을 좋아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그 날들 안에 내가 늘 아빠의 옆에 있는 것, 어쩌면 그게 가장 큰 선물일 거라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스마트 워치를 검색해본다. 아빠 인간적으로 이 정도는 괜찮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