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 여섯 번째] 인간의 부조리함에 대하여

이방인 - 알베르 카뮈

by hongfamily

이 책의 미국판 서문에서 카뮈가 이방인을 한마디로 요약하였는데,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번 인간탐구 여섯 번째 주제는 부조리입니다. 인간의 부조리함을 다룬 작품들이 많겠으나 저는 이 작품을 PICK 했습니다.

이 말을 두고 이 작품이 사회의 부조리성을 고발한 작품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이 이 책을 읽은 후의 저의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며, 거의 이 책에만 사용되는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이방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통해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작품의 줄거리를 돞아보고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이 작품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어,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인하는 부분까지이고, 2부는 뫼르소가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부분까지입니다.

첫 문장에서 뫼르소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어제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지요. 어머니의 죽음에 임하는 뫼르소의 태도는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사장에게 이틀간의 휴가를 내는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는가 하면, 요양원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잠을 자기까지 합니다.

뫼르소는 요양원에서 원장, 문지기, 간호사, 어머니의 애인인 페레스 씨, 요양원 동료들과 함께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릅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뫼르소는 울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머니의 관을 열어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고, 어머니의 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입니다.

장례식에서 돌아온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아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는데, 일상의 여느 토요일처럼 해수욕장에 수영을 하러 갑니다.

그곳에서 전에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마음이 있었던, 마리를 만나게 되고, 마리와 해수욕을 하고 영화도 보고, 집에서 사랑도 나눕니다.

뫼르소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레몽이라는 남자와 친구가 되고, 레몽의 변심한 정부를 혼내주려는 레몽의 계획에 동참합니다.


레몽은 여자를 차 버리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여자가 후회하도록 하려 했으며, 그 편지의 작성을 뫼르소에게 부탁했던 것입니다.

레몽은 정부와 편지로 인해 크게 다투게 되고,

신고를 받고 순경이 출동하게 됩니다.

뫼르소는 레몽의 부탁으로 경찰서에서 “여자가 레몽에게 버릇없이 굴었다"는 증언을 합니다.

이 사건으로 레몽은 정부의 오라비가 낀 한패의 아랍인들에게 쫓기게 됩니다.

한편, 파리에 출장소를 설치할 계획이며, 그곳에 갈 생각이 있는지 묻는 사장에게, 뫼르소는 야심 없는 거절의 대답을 합니다.

이어지는 독백을 통해 뫼르소는 자신도 학생 때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았지만 야심을 잃은 것은, 학업을 포기하게 되면서 그러한 것들이 아무런 중요성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어서라고 합니다.

뫼르소와 마리는 레몽에게 친구인 마송의 오두막에 함께 가자는 초대를 받게 되고, 이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가 싶었는데,

이들 앞에 푸른 작업복을 입은 아랍인 둘이 다가와

싸움이 벌어지게 되고, 레몽은 아랍인의 칼에 맞아

다칩니다.

치료를 받은 레몽의 기분을 풀기 위해 이들은 해변을 산책하나, 바닷가 끝의 조그만 샘가에서 다시 이들 아랍인들을 만납니다.

레몽이 뫼르소에게 권총을 건네는 모습을 본 이들은 달아나 버림으로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뫼르소는 햇볕의 뜨거운 열기와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부담스러워 혼자 산책을 하고, 뫼르소는 다시 바위 뒤의 서늘한 샘을 찾는데, 그곳에서

레몽과 싸웠던 그 아랍인과 조우합니다.

아랍인이 단도를 뽑아 태양빛에 비추어 뫼르소에게 겨누자, 빛이 번쩍하면서 뫼르소는 이마를 쑤시는 느낌을 받았고, 권총 다섯 발을 쏘아 아랍인을 살해합니다.

2부는 뫼르소가 체포되어 여러 번 심문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뫼르소는 변호사에게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은 원래 육체적 욕구에 밀려 감정은 뒷전이 되는 그런 천성이라고 설명하여 변호사를 경악하게 합니다.

재판 과정은 엄마의 장례식 날 뫼르소가 무심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부터, 레몽, 바닷가, 해수욕, 싸움, 다시 바닷가, 조그만 샘, 태양, 그리고 다섯 번의 총격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뫼르소는 형무소에서의 어려움을 고백하는데,

여자에 대한 정욕, 담배, 잠에 대한 고통에

대해 고백합니다.

뫼르소는 시간의 경계가 없어지고, 어제 혹은 내일과 같은 말만이 자신에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느 저녁 시간 뫼르소는 여러 달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귀에 울리고 있던 소리라는 것, 그동안 줄곧 혼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양로원 원장, 문지기, 페레스 영감, 레몽, 마송, 살라마노, 마리, 뫼르소가 평소 다니는 식당의 주인인 셀레스트가 증언을 합니다.

증언 중에 뫼르소가 엄마를 보려 하지 않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장례식 이후 묵도를 하지 않고, 엄마의 나이를 기억 못 한 것, 담배를 피우고 밀크 커피를 마신 일, 해수욕을 갔던 것, 영화를 본 것, 마리와 사랑을 나눈 일과 같이 뫼르소에게 불리해 보이는 증언들은 채택되고, 뫼르소의 편에서 증언하는 내용은 채택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뫼르소는 자신을 위해 증언하는 셀레스트의 모습을 보며 한 인간을 껴안고 싶은 마음을 처음으로 느낍니다.

뫼르소는 변호사의 발언을 들으며,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빈약하나마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에의 추억에 휩싸입니다.

뫼르소는 사형을 언도받고, 상고에 대해 고민하지만, 지금 죽건 이십 년 뒤에 죽건 죽는 것은 바로 나라는 실존적 깨달음을 얻고, 상고를 거부합니다.

뫼르소는 교도소 부속 사제의 면회를 거부하여 왔으나, 상고를 거부하기로 결정을 내린, 바로 그때 부속 사제가 나타나고, 부속 사제와의 대화중에 뫼르소는 마음속의 분노가 폭발하게 됩니다.

뫼르소는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 버리는데요.

부속 사제가 나가고 뫼르소에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립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뫼르소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엄마를 생각합니다. 엄마가 왜 생애의 끝 무렵에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이해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며, 자신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뫼르소는 처음으로 자신이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으며, 세계가 그렇게도 그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뫼르소는 모든 것이 완성되고, 외로움을 덜 느끼도록 자신이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 증오의 함성으로 자신을 맞아 주었으면 하는 소원을 남기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방인의 의미에 대해

되짚어 보겠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방인은

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그러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는 삶이 그리고 다른 사람이 제기하는 질문에 대답만 하는 적게 말하는 인물이지요. 그가 적게 말하는 이유는 거짓말 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인데, 거짓말의 의미는 단순히 있지 않은 말을 하는 거짓말에서 확장되어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것으로 그는 야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학생 때에는 야심도 많이 있었지만,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매일같이

하는 거짓말들, 삶의 목표로 삼는 야심들..

이런 것들을 거부함으로써

그는 사회로부터의 이방인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죽음에 대해 고찰해봅니다.

이 작품은 어머니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살인, 사형과 같은 세 가지 죽음이 등장합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같은 자연적 죽음과 사형선고를 받은 뫼르소에게 다가올 사형은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의미를 갖지만,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 피동적 죽음입니다.

그러나, 살인은 뫼르소가 능동적으로 행한 행동으로서 이루어지는 능동적 죽음으로, 살인을 통해 뫼르소는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자신으로 나아가게 되는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해봅니다.

1부에서 뫼르소는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간만 허비하는 무의미해 보이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2부에서 육체적 욕구가 제한되고,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게 됩니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 인간을 껴안고 싶은 마음을 처음 느끼기도 합니다. 지극히 빈약하나마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을 추억합니다.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엄마를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갖습니다. 자신은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셋째, 이 작품이 주는 실존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할 권리는 아무도 없다는 뫼르소의 이야기를 되짚어봅니다.

뫼르소는 감정적인 부분에서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나의 것이 아니고, 타자의 죽음일 때, 진정으로 슬퍼하는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작가는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닥치는 일로서,

이러한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각자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일 뿐,

죽음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뫼르소가 사형을 자신이 죽게 될 일이라고

자각하면서,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데서도 죽음의 의미는 철저히 그 자신에게 속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이 작품에서 태양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이방인과 관련하여 번역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었던 것인데,

이 작품을 읽고 이 논쟁이 전혀 의미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태양은 어두운 면이 없이 세상을

비추는 그런 존재입니다.

뫼르소에게 태양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비췄고, 아랍인을 살해하는 해변에서도

비췄다. 그리고 교도소의 지붕 위에서도

비췄습니다.

태양은 끊임없이 뫼르소의

자아를 건드려 뫼르소를 불편하게 합니다.

아랍인의 칼날에 비친 태양빛이 자신의 이마를 가격할 때, 뫼르소는 아랍인을 향해, 곧 자기 자신의 자아를 향해, 총을 쏘게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 작품은 살인이라는 사건을 통해

한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현재를 통해 행복을 찾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 결론 내려봅니다.


작품을 읽다 보면 뫼르소의 특이한 행동을 통해 그가 부조리한 사람이어서 이방인인가 싶지만, 부조리한 것은 뫼르소를 제외한 사람들과 사회일 뿐 뫼르소는 철저하게 논리적이고 실존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그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를 사형으로 몰아간 사람들과 사회는 그저 그가 불편할 뿐 논리적 이유는 없었던 거지요.


사형을 언도받은 뫼르소가 자신을 깨닫고 삶을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하는 일이 의미 없는 일일까 고민해봅니다.


우리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가 속한 사회를 이해함에 있어 부조리함은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본질임을 인정하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인간탐구 여섯 번째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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