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 다섯 번째] 용기란 무엇인가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by hongfamily

고전소설을 통한 인간탐구 시간. 이번에 다루어볼 주제는 '용기'입니다. 젊은 이로써의 혹은 전사로써의 용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든 한 남자가 보여준 정신적 승리를 향한 집념은 용기가 아니라면 표현하기 힘들 듯합니다. 저는 이러한 용기를 인간 본성에 내재된 용기라 부르고 싶습니다.


한 작가를 특정 시기의 작품만을 보고 평가한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의 전 생애를 살펴보아야겠지요. 그러나 작가의 마지막 작품에 작가의 가치관이나 사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리라 기대한다면 과한 것일까요.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한 노인이 관객과 마주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방백으로 이끌어가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고기잡이하는 노인 산티아고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산티아고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입니다.


그는 84일이 지나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했고, 그의 곁에서 낚시를 돕던 소년 마놀린 조차도 다른 배로 옮겨 탔습니다.


비록 다른 배를 탔음에도 산티아고는 마놀린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소년은 그를 무척이나 따랐습니다. 그는 노인의 곁에서 낚시 준비도 돕고 이야기도 나누는 등 여전히 멘토-멘티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산티아고가 84일째 물고기를 낚지 못한 것은 그가 운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큰 물고기를 낚은 적이 있었으며, 낚시 기술 또한 탁월하였기 때문입니다.


​85일째 드디어 산티아고는 큰 물고기를 한 마리 잡게 되는데, 거의 이틀 동안 물고기와 대결을 벌입니다.


이틀여를 고군분투한 끝에 산티아고는 고기의 가슴지느러미 바로 뒤쪽 옆구리에 작살을 꽂습니다.


고기가 너무 컸기에 배에 싣지 못하고, 뱃전에 꼭 묶어 집으로의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상어의 공격 시작으로, 네 차례나 상어의 공격을 받고 힘겨운 사투를 벌인 끝에 아바나 시가 보이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자정 무렵 상어 떼가 몰려와 남은 고기를 모두 빼앗기고, 배를 뭍에 묶어두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가로등 불빛에 보이는 것은 뱃전에 묶인 고기의 커다란 뼈와 머리통, 꼬리뿐이었죠.


​이튿날 어부들은 조각배 주위에 둘러 모여 노인이 잡은 고기의 크기를 재보며 놀라워합니다. 길이가 무려 5.5미터나 되는 고기였던 것입니다.


​노인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소년에게 노인은 자신이 졌다고 고백하고 소년은 그렇지 않다고 위로합니다. 노인은 고기 대가리는 페드리코 아저씨에게 주고, 창날 같은 주둥이는 마놀린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노인이 사고를 당한 것으로 생각하여 해안경비대와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자신을 찾았다는 말을 전해 들은 산티아고는 자기 자신과 바다가 아닌 말 상대가 될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 새삼 느낍니다.


노인은 자신의 집에 잠들어 있고 소년은 곁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고 고백하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나누고자 한 생각들을 따라가 봅니다.


​첫째, 산티아고와 마놀린의 신념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이들의 신념은 무엇일까요?


청새치를 잡고 상어의 공격을 받았을 때 산티아고가 이야기 한 내용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104p

이 관점에서 본다면 산티아고의 인간은 패배를 모르는 용감한 존재라는 신념을 가진 듯합니다.


산티아고가 마놀린에게 자신이 완전히 졌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그들의 신념이 드러납니다.


비록 상어 떼의 습격으로 파멸하였을지언정, 자신이 세운 목표인 청새치를 잡고 끝까지 상어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사실은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둘째, 작가가 한 인간의 이야기를 인간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하고자 한 부분을 짚어봅니다.


산티아고는 부인을 잃고, 마놀린 또한 다른 선장에게 갔기에 홀로 낚시를 하는 처지이지만, 마을 사람들과 건강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마놀린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산티아고가 야구를 즐긴다는 점에서도 그가 인간 사회에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합니다.


산티아고는 인간에 대한 견고한 연결을 바탕으로 그 대상을 자연으로 확장하며, 이로써 한 노인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 인간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셋째, 우리는 작가의 실존주의적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노인은 두 눈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노쇠해 있었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직 두 눈만은 바다와 똑같은 빛깔을 띠었으며 기운차고 지칠 줄 몰랐다고 하였지요. 이는 산티아고가 가진 삶에의 강렬한 의지를 표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의 실존주의적 태도는 노인의 삶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노인은 자신에게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운보다 삶에 최선을 다하는 방향을 선택합니다.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34p

노인은 자신의 나이와 관계없이 야구선수인 디마지오 못지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각오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삶을 발전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가져야 해. 발뒤꿈치에 뼈 돌기가 박혀 있으면서도 그것을 참고 최후까지 멋지게 승부를 겨루는 저 훌륭한 디마지오 못지않은 사람이 되어야지.
69p

넷째,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으며 중간중간 등장하는 노인의 사자 꿈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기꺼이 뛰어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인물임을 감안할 때, 사자는 '백수의 왕'으로서의 강인함을 가진 용기 있는 젊은 정신을 표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사자 꿈을 통해 산티아고가 용감한 삶을 살고자 꿈꾼다는 해석에서 나아가, 산티아고가 살아있는 한 사자 꿈을 꿀 것이며, 새로운 내일을 위해 도전할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통해 헤밍웨이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해봅니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기에, 죽음이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살아있는 동안 치열하게 살아가며 하루하루 승리하는 삶을 살라고, 죽는 그날까지 용감한 젊은이의 정신을 가지고 살라고, 죽는 그날까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삶을 살라고...."


작품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작가는 우리에게 인간이 가진 본연의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망망대해 위에 오늘도 낚시를 드리우고 있을 또 다른 산티아고가 저이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