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을 통한 인간탐구의 다음 키워드로 가져온 것은 '의무감'입니다. 우리는 국민으로서의 의무부터 아버지로서의 의무 등과 같이 의무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사용하지만, 의무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특성으로 생각해 본 적은 드물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읽어본다면 생각은 저의 생각에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생텍쥐페리 하면 그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그가 작가이자 조종사였다는 점, 그리고 그의 마지막은 비행기를 타고 임무수행을 하다가 실종되었다는 점 등은 모르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린 왕자'보다 야간비행을 더 좋아하는데,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기에 작가가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이 작품에 더 녹아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조종사로서의 삶을 산 작가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쓰인 소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책의 앞머리에서 볼 수 있는 디디에 도라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글을 보고 디디에 도라가 누구일까 궁금했었는데, 그는 작가가 조종사로 근무했던 항공우편회사의 영업부장이었다고 하며, 작품 속 리비에르의 모델이 된 인물이라 하니 이 작품이 자전적 소설이기를 기대하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디디에 도라가 리비에르의 모델이 된 인물이라면 조종사 파비엥은 작가 자신의 모델이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되는데, 작품이 먼저 씌었지만, 작가 자신도 파비엥과 같이 비행기와 함께 마지막을 맞이했으니 작품이 작가의 삶의 데자뷔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작품에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머리말을 앙드레 지드가 썼다는 점입니다. 앙드레 지드의 머리말이 얼마나 잘 쓰여 있는지, 머리말을 읽고 나면 작품의 줄거리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간파할 정도입니다. 앙드레 지드와 작가의 우정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비행기가 기차나 선박에 비해 앞섰던 시간을 밤에 빼앗겼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야간비행을 시작하던 시기에, 총책임자를 맡고 있던 리비에르와 그와 함께 야간비행이라는 위업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조종사 파비앵, 그리고 감독관 로비노와 다른 조종사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품의 시점은 유럽발 비행기가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에서 출발한 세대의 우편기의 우편물을 적재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시점으로 파비앵은 파타고니아 발 비행기의 조종사입니다. 책임자 리비에르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기항지의 착륙장을 서성이고 있으며, 칠레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하자 잠시 마음의 휴식을 얻습니다.
리비에르와 함께 관리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로비노 감독관은 칠레에서 온 조종사와 마음을 나누고 싶지만, 부하들에게 사랑이 아닌 엄격함을 보여야 한다는 리비에르의 가르침에 굴복하고 맙니다. 이 순간 파타고니아 발 비행기는 사방이 태풍으로 막히고 연료는 한 시간 사십 분이면 떨어지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파비앵의 복귀가 늦어지자 파비앵 부인은 전화를 걸어오고 답답한 마음에 회사로 찾아옵니다. 파비앵 부인을 만난 리비에르는 파비앵 부인을 통해서 삶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지만, 함께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시간은 더 흘러 리비에르조차도 조종사의 생환을 포기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리비에르가 야간비행을 포기할 것이라 생각하고 절망하는 순간, 리비에르는 유럽행 비행기를 출발시키기로 합니다. 유럽행 비행기의 조종사는 리비에르의 조심하라는 말에 리비에르가 자신이 겁먹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내면에서 커다란 힘이 솟아나는 걸 의식하며 비행기를 출발시킵니다.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을 나누어봅니다.
첫째, 작품 속 인물인 리비에르와 파비앵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태풍 속으로 돌진하는 파비앵은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존재감을 의무에서 찾은, 초인적인 미덕에 도달한 인물이며, 조종사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고취해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하며, 업적을 이루도록 강요하는 리비에르의 엄격함은 얼핏 보기에 비인간적이고 과도해 보이지만 그가 단련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아닌 인간이 지닌 결함이기에, 그에 반대하기보다는 그를 따르고 싶게 만듭니다.
둘째, 작가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고자 하는 화두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인간의 목숨보다 값진 것처럼 우리가 여기는 어쩌면 삶의 의미와 같은 무엇에 대한 의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는 리비에르의 생각을 통해 그것은 용기도 아니고 사랑도 아닌, 인간의 의무라고 주장합니다. 용기는 아름다운 감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약간의 분노, 약간의 허영심, 강한 고집과 운동할 때 느끼는 통속적인 쾌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이고, 사랑은 노화와 죽음 앞에 신기루처럼 사라질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작품이 갖는 의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이 작품은 생택쥐페리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문학성을 갖춤과 동시에 항공우편사에 야간비행이 도입되고 야간비행의 위험을 인간이 어떻게 극복했는지, 리비에르와 파비앵과 같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 다큐멘터리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야간비행이 초장기 용감한 사람들의, 아니 의무감을 존재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고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경건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야간비행을 비난 속에서도 계속했던 리비에르는 승리자였지만 그것은 목숨을 대가로 치른 "무거운 승리"였고, 작품을 읽으며 우리는 인간의 역사, 인간의 삶을 야간비행이라는 장애물에 투영하게 됩니다. 결국 인간은 유한하지만 영원한 가치를 가지는 그 무엇을 위해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다는, 인간 종족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