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을 통한 일곱 번째 시간 제가 선택한 주제는 자유입니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어놓을 정도로 인간은 자유를 갈구하는 존재라는데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이 1949년에 출간되었음에도 당시로서는 한참 미래인 지금 시점에 보더라도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며 유발 하라리가 2017년에 집필한 '호모데우스'와 비교하였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텔레스크린, 마이크로폰 등의 장비가 IoT, CCTV, 빅데이터 등으로 대체되었을 뿐 우리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있고,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굴지의 IT기업들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겠다는 명분으로 우리의 모든 정보를 취득함으로써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면 빅 브라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고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생명공학, 나노공학 등의 기술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봅니다.
조지 오웰이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일까요, 아니면 미래에 대한 예언일까 상상해보며 줄거리를 살펴봅니다.
작품의 배경은 1984년 오세아니아입니다.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인공인 윈스턴을 비롯한 모든 당원들은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에 의해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당에 밉보인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존재 자체가 부정되고 맙니다.
윈스턴은 진리부에서 과거 사건에 맞추어 신문 등 자료를 위조하는 일을 하는 외부 당원입니다. 참고로 정부기관은 윈스턴이 몸담고 있으며 보도, 연예, 교육 및 예술을 관장하는 진리부,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애정부, 경제 문제를 책임지는 풍요부가 있으며, 이들은 신어로 각각 '진부', '평부', '애부', '풍부'라 불립니다.
윈스턴의 집에는 텔레스크린의 감시가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 있었는데, 윈스턴은 이곳에서 빈민가의 고물상에서 산 노트에 일기를 쓰기로 합니다. 일기를 쓰는 일은 발각되면 사형 아니면 중형에 처해질 중죄입니다.
반역자인 골드스타인을 내세워 그를 증오하게 하는 '이 분간 증오'를 통해 당은 증오심을 한 곳으로 모아 체제를 유지하는데 활용합니다.
골드스타인은 국가전복을 꾀하는 음모자들로 구성된 지하 조직의 두목으로서 그 조직 이름은 '형제단'이었으며, 골드스타인의 이론을 적은 '그 책'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윈스턴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분 간 증오 시간에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이라는 내부 당원과 눈이 마주칩니다. 윈스턴은 왠지 오브라이언이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윈스턴은 거의 삼십 년 전에 헤어진 어머니의 꿈과, 들판에서 검은 머리의 여자가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며 옷을 벗어던지는 꿈을 꿉니다.
윈스턴은 조사국에서 신어 전문가로서 신어사전 제11판을 편집하는 일을 하는 친구 사임을 통해 신어는 말을 뼈만 남도록 잘라낸 언어이며,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신어를 사용함으로써 사상에 관련된 말 자체가 사라짐으로써 나중에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합니다.
당은 남녀 간의 성행위 또한 철저하게 통제하는데 섹스를 관장을 하는 것만큼이나 역겨운 행위로 간주함으로써 성행위로부터 얻게 되는 모든 쾌락을 사전에 제거하고, 부부간의 섹스도 쾌락이 아닌 당에 봉사할 아이를 낳도록 하는 목적으로만 허용됩니다.
배경이 되는 오세아니아는 늘 생필품이 부족했는데, 냄비를 구하기 위해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보며 윈스턴은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왜 더 중요한 일에는 함성을 지르지 않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윈스턴은 검은 머리의 여인인 줄리아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쪽지를 받게 되고, 이들은 감시의 눈길을 통해 비밀 장소에서 밀회를 즐깁니다.
줄리아는 여러 남자와 관계를 했는데 그녀는 쾌락을 즐김으로써 당에 저항하려 하였습니다.
윈스턴은 자신이 자주 가던 채링턴 씨의 고물상 이층에 있는 방을 빌려 그녀와 단둘이 있는 공간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오브라이언으로부터 신어사전 제10판을 빌리고 싶으면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당시의 사회는 내부 당원과 외부 당원 그리고 최하에 노동자 계층이 있었는데, 최하 계층인 노동자들에게는 당의 감시나 통제가 미치지 않았으며, 이들은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윈스턴은 어머니와 헤어지던 당시를 기억하다가, 당이나 국가나 이념 따위에 충성을 다하지 않고 그들 자신에게 충실한 노동자들만이 인간이며, 어느 날엔가 생명을 되찾아 세계를 재건할 수 있는 잠재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오브라이언의 집을 찾아가 골드스타인을 따르고 형제단에 가입하겠다고 밝힙니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주며, 사회의 진정한 본질과 사회를 전복시키는 전략에 관해 서술된 '그 책'을 전해줄 테니 읽어보라고 합니다.
윈스턴은 채링턴씨의 상점 위층 방에서 '과두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라는 제목의 '그 책'을 줄리아에게 읽어줍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세 열강이 각기 전체주의 국가를 이루고 있으며
세 초 국가의 경계에 위치한 완충지대와 북쪽의 빙원 지대를 장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전쟁의 본질적인 목적은 사회 체제의 유지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책을 읽은 윈스턴은 이 세계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희망은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것이 골드스타인의 마지막 메시지라고 전합니다.
텔레스크린이 없다고 생각했던 방에서 문득 금속성의 소리가 들리고, 이들은 벽의 그림 뒤에 텔레스크린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들은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들에게 포위당하는데 채링턴씨가 신분을 위장한 사상경찰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윈스턴은 애정부로 예상되는 곳에 끌려옵니다. 감옥에서 오브라이언을 만난 윈스턴은 그도 잡혀왔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는 윈스턴을 오랜 시간 감시하고 함정을 만들어 윈스턴을 붙잡았던 것이었습니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모질게 고문하고 세뇌하기를 반복하고, 원스턴은 마지막까지 그들을 증오하면서 죽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라고 생각하며, 윈스턴은 당이 원하는 것을 모두 받아들이고 풀려납니다.
윈스턴은 당으로부터 한직의 일을 받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고, 체스넛트리 카페에서 아프리카 전선의 소식을 기다리는 윈스턴은 국가의 패배 소식을 기대합니다.
윈스턴은 줄리아를 우연히 만나지만 추하게 변한 그녀와 윈스턴은 서로가 서로를 배반했다고 고백하고 헤어집니다.
윈스턴에게 들린 소식은 기대했던 패배 소식이 아니라 오세아니아의 승리 소식이었으며, 소식을 들은 윈스턴은 애정부로 돌아가 모든 것을 용서받고 총살을 당하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작품을 읽고의 느낀 점을 나누어봅니다.
첫째, 우리가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저는 작품을 읽고 우리가 미래에 다가올 기술혁명에 대항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러한 흐름에 동참해야 할 것이며, 설령 작품 속의 윈스턴 스미스처럼 저항하고자 할지라도 결국 좌절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인류 전체가 과학기술이나 정보화, 생명공학과 나노공학이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지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명제는 그 어떤 이유로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둘째, 영사 즉 영국 사회주의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신어를 개발하고 기존의 언어와 문학을 말살하는 것에 주목해봅니다.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언어파괴와 말 줄이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책보다는 영상이나 웹툰을 선호하는 현상이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전자제품과 IT 기기에 친근한 신세대의 특성으로만 이해해줄 일이 아니라, 종국에는 우리의 영혼과 사상을 파괴할 수 있겠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셋째, 사람들이 이성적 존재일까 생각해봅니다.
작품 속 세상은 생필품이 부족하여 사람들은 냄비를 구하기 위해 아우성치는 반면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윈스턴은 이 모습을 보고 중대한 일에는 함성을 지르지 않고 사소한 일에만 관심을 갖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우리가 이들과 다르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에서 대중 또한 지역 간 갈등, 남혐, 여혐, 세대 간 갈등 등과 같은 것들에는 열폭하면서 정작 중요한 정치나 교육문제 등에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한편 빅 브라더의 존재와 존속이 인간의 불합리함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유지되는 체제가 유지되는 한 빅 브라더가 누가 되던 상관치 않고, 무산계급은 현실적으로 사회를 뒤집을 수 없기에 빅 브라더가 존재하고 존속하는 것임을 볼 때, 이는 인간의 불합리함 보다는 오히려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의거한 합리적 측면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넷째, 빅 브라더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빅 브라더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권력의 정점, 특히 정치권력의 정점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빅 브라더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좋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격언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목격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빅 브라더의 탄생 자체를 방지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빅 브라더는 꼭 정치집단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만약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IT기업들이 우리에 대한 빅데이터를 구축함으로서 향후 권력화 되거나 우리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지배한다고 한다면 이들이 빅 브라더가 될 수도 있겠고, SNS 등을 통해 특정 계층이 뭉쳐 특정 이슈로 특정인들을 공격함으로써 특정인들을 지배하고 침해한다면 이는 또 다른 빅 브라더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결국 사회관계망의 발전은 우리를 빅 브라더가 되게도 그리고 윈스턴이 되게도 할 수 있을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통해 윈스턴은 과연 빅 브라더에게 패배한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윈스턴은 마지막까지 그들을 증오하면서 죽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패배를 기대했지만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윈스턴은 애정부로 들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윈스턴이 인간의 모든 가치를 상실하고 빅 브라더에게 굴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줄리아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고,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버티고 있을 뿐, 여전히 인간이 가져야 할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윈스턴은 마지막까지 그들을 증오하면서 죽음으로서 자신이 생각했던 자유를 지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는 말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느껴지지까지 하는데요.
결국, 미래에 어떤 세상이 열리더라도 어떠한 빅 브라더의 지배하에 놓이더라도, 인간은 자유를 지킴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할 수 있으리라 희망하며 이번 글 인간탐구 자유 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