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열 번째] 인간과 종교

세상의 주인 - 로버트 슈 벤슨

by hongfamily

인간탐구의 열 번째이자 마지막 주제는 종교로 정해보았습니다. 종교로 인해 개인적으로 나아가 세계가 큰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종교를 가지고자 하는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종교에 대한 주제는 로버트 휴 벤슨의 세상의 주인을 통해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 조지 오웰의 <1984>(1949)보다 30여 년 먼저 세상에 나온 최초의 현대적 디스토피아 소설로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벤슨이 100여 년 전 그린 미래의 모습 또한 올더스 헉슬리나 조지 오웰이 그린 미래의 모습에 비해서나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봐서나 부족하거나 비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볼러'라는 비행 물체가 세계 곳곳을 신속하게 이동하게 해 주고 전 세계는 초고속 통신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종교가 무너지고 학문과 사상이 무너진다는 점도 공통적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올더스 헉슬리나 조지 오웰의 작품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두 작품이 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어리석음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에 대해 경고한다면, 이 작품은 종교적인 분야에서의 암울한 미래에 대해 경고하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모든 디스토피아 소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주인>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성경의 종말론을 바탕으로 종말의 시기에 그리스도교 세력과 반 그리스도교 세력의 갈등을 다룬 소설로서, 반 그리스도교 세력이면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줄리언 펠센버그가 세계 정부의 권력을 잡으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을 전현직 두 교황이 추천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들이 이 책을 언급한 것은 세계화의 폐해, 다시 말해 '사상의 식민지화'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였다고 합니다.


다른 서적들에서 이미 읽었지만 맬서스의 인구론을 바탕으로 한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후진국 인구 억제 정책이 이러한 사상의 식민지화에 해당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을 읽는다면 펠센버그가 맬서스의 인구론을 바탕으로 후진국의 국민들을 안락사하는 법을 개정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벤슨은 이 작품을 쓰면서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종교가 무너졌을 때 우리에게 닥칠 결말은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것이기에 이 작품이 종교적 색채를 띄고 있는 것이 이 책을 선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종교적 측면에서의 디스토피아 소설만을 지향한다고 하면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근본을 이루는 인본주의와 종교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니체로 대표되는 인본주의 사상이 어떤 부분에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벤슨은 철저하게 해부하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을 소설로서 가볍게 읽더라도 반 그리스도교 세력의 대표이자 세상의 주인인 펠센버그와 그리스도교의 대표이자 영적 세상의 주인인 퍼시 프랭클린 신부(훗날 교황인 실베스테르 3세)의 영적 싸움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합니다.


프롤로그에서는 퍼시 플랭클린 신부와 프랜시스 신부가 템플턴 노인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상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정치적으로는 마르크스, 에르베 같은 사회학자, 유물론자, 쾌락주의자가 득세했으며, 유럽 연합은 동양과 전쟁 중이고 대량 살상 무기가 개발되어 제국들은 상호 전멸 전략으로 대치 중인 상황입니다. 종교적으로도 개신교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며 가톨릭교 또한 종말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이나 건강 회복이 불가능한 이들은 누구든지 안락사 시설에서 삶을 마감할 수 있습니다. 대학들도 종교와 마찬가지로 해산되었습니다.


​작품은 총 3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장은 강림, 2장은 대결, 3장은 승리로 제목이 달려있습니다.


1장은 크로이던의 초선 의원 올리버 브랜드와 그의 아내 메이블이 대화로 시작됩니다. 미국 대표단에 마지막으로 합류했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정보가 없는 펠센버그에 대한 대화입니다.


올리버는 동방이 지난 5년 동안 유럽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그동안 미국이 막아주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동방의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것- 특히 종교적으로 범신론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걱정합니다.


​이모를 방문하기 위해 브라이턴에 도착한 메이블의 눈앞에서 정부 소속 볼러 한 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벌어지고, 그곳에서 메이블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퍼시 신부를 목격하게 됩니다. 종교가 무엇인지 모르는 메이블은 남편인 올리버에게 묻고 올리버는 아내에게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물론 올리버나 메이블은 전혀 동의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메이블의 이야기를 들은 브랜드 여사(올리버의 어머니로 그녀는 그리스도교도이다)는 퍼시 신부를 찾아가고, 훗날 올리버의 비서를 통해 그에게 아들 내외가 집을 비운 사이 방문해 주기를 청합니다.


앞서 프롤로그에서 퍼시와 함께였던 프랜시스 신부는 자신의 믿음이 사라졌다며 배교합니다.


​올리버는 반 그리스도교인 프리메이슨의 행사에서 연설을 하던 중 가톨릭 신자에게 공격을 당해 부상을 입게 되고 이로 인해 잉글랜드에서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는 훗날 펠센버그가 세력을 얻고 나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한편 펠센버그는 동방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 평화라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이끌어 냄으로써 세상의 스타가 됩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 내외는 어머니가 신부와 함께 있는 모습에 아연실색하지만 메이블의 기지로 상황은 조용히 마무리되고, 퍼시는 돌아오는 길에 자신과 꼭 닮은 펠센버그가 탄 볼러를 보게 됩니다.


​펠센버그는 전 세계적 동명을 결성했다는 사실과 역사의 완성을 목격한 모든 이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는 연설과 각국 대표들과의 면담 후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으며, 각국 대표들은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완성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잉글랜드의 통신원 역할을 하던 퍼시 신부는 추기경의 부름을 받고 교황을 만나러 가게 됩니다. 현재의 교황은 교회의 목적은 인간에게서 초자연적 덕성을 이끌어 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원칙을 서간으로 몇 번이나 공표함과 함께 전 세계 모든 국가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회복되었음을 알리는 등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으나, 현재의 상황에서는 그의 이야기는 2000년 전 그의 전임자들이 한 말의 반복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퍼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야기해달라 청하고, 퍼시는 현재의 상황을 가감 없이 설명한 뒤 조만간 박해가 시작될 것이라는 점,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본주의의 긍정적인 영향력이라면서 인본주의가 전례와 희생 가면을 쓰면 주님께서 개입하시지 않는 한 교회는 종말을 맞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퍼시는 새로운 수도회인 그리스도 십자가회를 제안하기에 이릅니다.


퍼시는 교황의 영면 축일 교황의 가마를 보면서 초자연적인 느낌을 받고, 하나님의 흉내쟁이인 펠센버그에 대해 명백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합니다. 미사 집전 중 펠센버그가 유럽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고, 교황은 퍼시를 추기경에 임명하는 한편 반 그리스도교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퍼시가 제안했던 수도회의 설립을 통해.


​한편 유럽 대통령이 된 펠센버그는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의례를 만들고 프랜시스는 올리버를 찾아가 의례를 집행하는 자로서 역할하게 해 달라 부탁합니다. 이들은 사람의 모습을 한 장식물을 만들어 그들의 의례에 사용하고자 합니다. 이들의 의례는 결국 가톨릭의 전통에서 그리스도교의 정신만을 뺀 종교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회는 순조롭게 발전해 갔으며, 결과로 많은 사람이 수도자의 길로 들어서고 순교를 하며, 국가의 강제적 의례를 거부했습니다.


내일은 잉글랜드의 첫 의례일이며 독일의 두 번째 의례일이었는데, 퍼시는 올리버의 비서였던 필립스를 통해 가톨릭 과격분자들이 의례일에 사원을 폭파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듣고 슈타인만 추기경과 함께 잉글랜드와 독일로 급히 떠납니다. 도중 이들은 볼러 떼의 난동을 목격하게 되고 볼러 떼는 가톨릭 과격분자들의 음모가 밝혀져 응징하고자 로마를 폭파하러 가는 볼러 떼였음을 알게 됩니다.


​같은 날 메이블은 사원에서 기도를 하고 나서는 길이었으나, 가톨릭에 분노한 이들이 난동을 부리고 살육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절망을 느낍니다.


로마는 폭파되고 성당과 사제들은 살육되었습니다.


펠센버그는 의례에 참석해 지난날의 광기 어린 인간의 모습이 아닌 이성을 찾은 모습으로 조각상을 향해 외칩니다.


"오! 모성이여! 우리 모두를 낳아 주신 어머니시여..."


살아남은 추기경은 퍼시와 슈타인만, 예루살렘 총대주교 셋뿐이었으며, 퍼시는 신속하게 신임 교황으로 임명되어 실베스테르 3세가 되어 나사렛에 머무릅니다. 새 수도회가 있었기에 전대미문의 살육 속에서도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교황에게 그리스도교를 모두 살해하라는 정부의 새로운 조치가 다급하게 전해지고 교황은 주님의 계획을 전하겠다며 추기경들을 모읍니다. 한편 믿음을 버리고 반 그리스도교의 편에 선 돌고롭스키 추기경은 교황과 추기경들이 모이는 장소와 시간을 펠센버그 측에 알립니다.


​메이블은 그리스도교를 모두 살해하라는 정책을 듣고 절망에 빠져 남편인 올리버와 다투고, 올리버는 곧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프랜시스를 찾아가 신앙에 대해 물어보고 자신은 인본주의 말고 다른 믿음을 가질 수 없음을 확인하고 안락사를 신청합니다. 죽음을 맞이한 메이블 앞에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고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합니다.


펠센버그를 비롯한 각국 대표들은 비밀리에 교황과 교회를 몰살하는 작전을 세우고 볼러를 타고 최후의 공격에 나서고, 교황은 마지막 미사를 집전합니다. 미사에 참석하는 이들에게 궁극의 평온이 내려오고, 이들의 찬양과 함께 세계는 끝을 맞습니다.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을 나누어보겠습니다.


​첫째, 작품을 통해 작가가 주장한 인본주의의 오류를 살펴봅니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인본주의의 오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작품 속에서 이들은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믿음의 문제를 과학적인 유물론으로 치부하지만, 자기들의 주장과 모순되는 행위를 행합니다. 세계를 통합한 펠센버그가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과정이 그러한 것인데, 펠센버그는 자신을 왕으로 내세우는 대신 인간의 모습을 한 우상을 세우고 우상을 숭배하게 합니다. 결국 그가 만든 의식은 가톨릭 전례의 화려한 옷을 빌려왔지만 모든 것의 중심은 신성이 인간성으로 대치된, 아니 초자연적 진리를 망각한 인간의 관념으로 대치된 그러한 사이비 종교였던 것입니다.


​또한 작가는 그리스도교의 성서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더합니다. 돌고롭스키 추기경의 배반은 유다의 배반과 대칭되며, 예수가 탄생하신 나사렛에서 종교의 종말을 맞는 설정은 극적 효과를 일으킵니다. 과격 가톨릭교도의 사원 폭파 계획도 역사적 사실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펠센버그와 퍼시 신부라는 너무나 닮은 두 인물의 대결도 작가가 설정한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외형이 닮은 두 사람이 선과 악, 물질과 정신, 자연과 초자연의 편에서 싸우는 모습을 통해 이러한 관념들이 실상은 매우 비슷하다는 경각심을 주려는 듯합니다.


​둘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의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작가는 인본주의의 대표주자이자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와 극단의 대립관계에 있습니다. 니체가 신을 죽인 주범인지 아니면 신을 죽이는 인간에 대한 경고를 한 사람인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작품 속 펠센버그는 니체가 제시한 '초인'과 닮았습니다. 니체의 주장과 달리 초인인 펠센버그도 폭력성을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신학에서 제시하는 인간의 원죄에 대한 대답을 못하고 있음에 주목합니다.


​셋째, 작품 속 메이블의 역할에 대해 고찰해봅시다. 작가는 그리스도교와 반 그리스도교의 전쟁을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여주고자 메이블을 등장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메이블은 그리스도교와 반 그리스도교 사이의 중립적 위치에 있는 일반적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데, 평소 인본주의 사상을 충실하게 따르는 사람이었지만, 결국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초자연적인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인본주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그 어떤 답도 대안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눈앞에서 볼러가 추락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그녀가 혼돈에 빠지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숭배하는 인본주의의 근본이념인 세계 평화는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그리스도교 살해 정책으로 거짓임이 밝혀져 결국 그녀는 안락사를 선택합니다.


​넷째, 그리스도교는 결국 패배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펠센버그를 비롯한 반 그리스도교가 볼러로 교황과 추기경들이 모여있는 나사렛을 흔적도 없이 폭파시켰음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 앞에 나타난 것은 죽음의 공포가 아닌 궁극의 평온이었으며 찬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왕이 아니듯, 그리스도교의 세상은 이 세상에 있지 않기에 어쩌면 이들은 죽음으로서 승리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세상이 어떻게 발전하든 그러한 흐름의 주체는 인간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이 종교와 사상을 버리고 인본주의 사상에 매몰될 때, 우리는 인간의 원죄라 볼 수 있는 폭력성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 결론 내리는 듯합니다.


저는 작품을 읽음으로써 세상의 주인이 신이어야 하는지 인간 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결론을 얻지는 못했지만,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 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작가는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소유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초월한 무엇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진리를 외면한다면, 우리 앞에 <세상의 주인>과 같은 혹은 <멋진 신세계>나 <1984>와 같은 그러한 세상이 오지 않으리라는 장담을 하기 힘들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종교에 대한 이번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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