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은 어쩌면 무거운 주제, 외면하고 싶은 주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인간의 악에 대해서입니다. 성경에 형제를 살인하는 인간이 등장하고, 성선설 성악설이 있듯이 인간의 내면에 악이 존재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악에 대해 나누기에 암흑의 핵심이 적당하리라 생각합니다.
'암흑의 핵심'을 읽기 전까지 조셉 콘래드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책을 열어보고서야 작가가 20세기 영국 소설을 개척한 작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얇은 두께로 인해 빨리 읽히리라 기대했으나 쉽게 읽히기 어려웠습니다. 우선 이 작품은 말로의 회고로 이루어져 있으나 말로의 탐험담을 재미로 풀어가는 것이 아닌, 콩고 탐험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한 데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작가는 말로의 시선과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서구 제국주의의 위선과 인간 본성의 그늘을 고발하고 있는 무거운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읽으며 이 작품의 원어 제목인 'Heart of Darkness'가 이 작품을 더 잘 드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핵심이라는 단어는 이성적이고 이지적인 느낌이 있다면, 심장은 생명의 근원을 이루면서도 묵묵히 박동만을 하는 원초적이고 감성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읽으며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아프리카 콩고의 어둠, 강물의 흐름, 원주민들의 울부짖음과 같은 것들이 마치 심장 박동과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콩고가 야만성과 감정으로 뒤섞인 우리의 심연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문명과 이성이 아닌 야만과 감정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본성 깊숙이 들어갈 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증을 가지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야기는 어느 유람선에서 서술자인 말로가 과거를 회상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말로는 로마인들이 영국을 처음 찾아왔을 때 영국 역시 암흑이 덮고 있었다는 말로써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로마인들의 침략행위를 대속해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줍니다.
그는 이 체험을 항행의 끝이요 체험의 절정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체험은 그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사상 속에 빛을 던져주는 듯했다고 합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지도를 보기를 좋아했으며, 아프리카 지역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특히 메콩강의 꼬리 부분, 즉 오지를 가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그는 무역회사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숙모를 통해 선장자리를 얻게 된다. 그의 임무는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일등 주재원인 커츠씨를 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입구의 주재소에서 말로는 회사의 회계 주임을 통해 그가 오지로 더 들어가면 일급 주재원인 커츠씨를 만나게 될 것이며, 그는 아주 주목할만한 인물로서 상아 산지라 할만한 곳에서 교역소 한 곳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보름 정도 걸어 들어간 말로는 중부 주재소에서 지배인과 벽돌 만드는 임무를 맡고 있는 또 다른 일급 회사원을 만나게 되고, 자신이 타게 될 기선이 사고로 물속에 침몰되어 있음을 듣게 됩니다.
말로는 이들의 말을 통해 커츠가 내륙 주재소의 소장으로 문명을 전파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왔음을 알게 됩니다.
어느 날 지배인의 숙부가 지휘하는 엘도라도 탐험대가 도착합니다. 이들은 오로지 보물을 뜯어내자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말로는 지배인과 숙부의 대화를 통해 커트가 상아를 싣고 내려오다가, 갑자기 돌아갔다는 것과 그 동기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말로는 배를 수리하고 샛강을 나서 커츠가 있는 주재소까지 가는데 2개월이나 걸렸는데, 모래톱에도 걸리는 등 자연적 제약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내륙 주재소에서 50마일쯤 떨어지는 곳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곳에는 오두막 한 채와 깔끔하게 쌓아놓은 장작더미가 있었는데, 장작은 당신들을 위한 것이며, 서두르고 조심해서 접근하라는 메모가 남아 있었습니다.
말로 일행은 외마디 비명과 목소리들을 들은 후 공격을 받게 됩니다. 무수히 날아드는 화살에 조타수를 맡고 있던 흑인이 화살을 맞아 죽습니다.
말로는 커츠가 국제야만풍습억제협회에서 그에게 위촉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였다는 말과 함께, 보고서의 내용을 이야기해주는데, 지금 와서 보면 첫째 단락이 불길하게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네들 야만인들에게는 마땅히 초자연적인 존재인 것처럼 보여야 하고, 하느님 같은 힘을 과시하면서 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말로 일행은 드디어 주재소에 도착하게 되고, 러시아에서 왔다는 어릿광대 같은 사내를 만나게 된다. 오두막에 남긴 메시지도 이 사내가 남긴 것이었으며, 그는 커츠를 흠모하며 그곳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말로 원주민들이 일행을 공격한 것이 커츠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그의 말을 통해 커츠는 이곳에서 신처럼 군림하며, 약탈을 하고 있었으며, 총을 통해 이 지방 부족으로 하여금 자신을 추종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말로는 커츠가 머무르는 집의 둘레에 울타리처럼 기둥들을 세워놓은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위에 얹힌 덩어리들이 사람의 머리라는 사실에 경악합니다.
그 머리들은 커츠에게 반항한 자들의 머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나고 말로 일행은 들것에 누워 있던 커츠와 만나게 됩니다. 커츠는 자신을 데리러 온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닌 상아를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냐며 자신은 아직도 이념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인은 지배인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게 된 후, 말로 일행의 기선을 공격한 것이 커츠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곳을 떠납니다. 말로는 숙소를 피해 달아난 커츠를 쫓아 가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는 거창한 계획들이 있었으며, 위대한 것들의 문턱까지 갔다는 말을 합니다. 말로는 그의 영혼은 미쳐있었으나 이지력은 멀쩡했음을 발견합니다.
이튿날 이들은 커츠를 태우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러나 커츠의 건강도 급속히 나빠져, 기선이 고장 나 지체되었을 때, 말로에게 한 묶음의 서류와 사진 한 장을 주고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말로에게 <무서워라!무서워라!>라는 말만을 남기고 커츠는 죽습니다. 말로는 죽음의 문턱을 넘으며 무서워라라고 이야기한 말로에게 매료되며, 그가 발견한 진리는 하나의 긍정이요 도덕적 승리라고 결론 내립니다.
돌아온 말로는 열병에 시달리게 되는데, 커츠의 모친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약혼녀가 임종을 지켜보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말로는 찾아온 사람들을 통해 커츠가 원래는 대단한 음악가였음도 알게 되고, 언론인에게서는 말로의 말솜씨가 대단했었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출판을 위해 썼다는 보고서는 그 언론인에게 주고, 말로는 편지 뭉치와 사진을 돌려주기 위해 커츠의 애인을 찾아갑니다. 말로는 커츠의 애인 또한 커츠에게 상당히 매료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커츠가 남긴 마지막 말을 들려달라는 그녀의 청에 말로는 무서워라는 말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말로가 이야기를 마치고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썰물이 시작되어 유람선을 움직이면서 이야기는 끝납니다.
작품을 읽고의 생각을 나누어 봅니다.
첫째, 암흑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해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커츠가 서구 식민주의의 위선과 인간의 탐욕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는 점입니다. 미개인들에게 문명을 전파한다는 이념은 사실, 아프리카의 상아, 즉 경제적 침탈을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러한 가면은 인간 각자의 탐욕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커츠가 처음에는 본연의 목적인 문명 전파에 힘쓰다가 야욕에 눈이 멀어 타락해가는 모습에서 서구 제국주의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정복자들의 입장에서 본 아프리카를 상징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부분에서 말로가 로마의 정복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그들은 암흑을 뚫고 빛을 가지고 왔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암흑은 '미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고,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우리의 내면, 심연을 상징한다고 확장하여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암흑의 핵심이 상징하는 바는 식민지에서 수탈에 몰두하는 동안 정신적 타락을 겪은 커츠의 타락한 심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작가가 한 개인의 문제를 인간의 문제로 확장하였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인간의 가장 나약한 본성은 병이나 죽음과 같은 고난에 처할 때 드러난다면, 인간의 가장 사악한 본성은 자신이 강자의 위치가 될 때 드러나지 않을까요.
커츠가 총을 가지고 원주민들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본성은 커츠 개인의 본성이 아닌 우리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는 근거입니다.
즉, 작가는 암흑의 핵심, 즉 경악할만한 악은 우리 본성에 잠재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둘째, 빛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말로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며, 그 체험이 자신의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사상 속에
일종의 빛을 던져주는 듯했다고 이야기한 데서, 빛은 진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로는 어째서 암흑의 핵심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콩고를 다녀온 후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철저한 암흑 속에서 한줄기 빛이 더욱 빛나듯이, 문명이나 이성과 동떨어진 아프리카 오지에서, 암흑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인간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깨닫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셋째, 말로는 정글에서 신처럼 군림하며 잔혹하게 변해가는 커츠를 보면서 지배인과 달리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으며, 오히려 그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떤 부분이 말로에게, 작가에게 영향을 준 것일까요?
말로는 커츠가 죽어가는 순간 나눈 대화에서 감명을 받습니다. 말로는 커츠를 보며 인간은 죽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이라야 삶의 의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커츠가 죽어가며 한 말, 즉 <무서워!무서워!>라는 말이 커츠가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며 얻어낸 진리의 표현이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무서워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순수한 영혼이 악의 유혹에 접했을 때 얼마나 나약한지에 대한 깨달음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커츠는 처음에는 미개인들에게 문명을 전파한다는 본연의 이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아로 대표되는 돈과 지위에 물들면서 자신의 영혼이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은 멀쩡한 이지력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이리라 추측해봅니다.
혹은 죽음의 순간 발견한 삶의 진리를 보며 마주하기조차 힘든 무서움을 느꼈을 수도 있겠습니다.
넷째, 작가가 이 작품을 쓴 의도가 무엇일까요?
정치적인 이유 혹은 직접적인 이유로는 서구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정치적인 작품이라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는, 식민주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이면에서 추구하는 인간 내면에 대한 고찰과 깨달음이 이 작품의 주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서구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은 약간은 우스꽝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있는 백인들에 모습, 대포나 총으로 원주민들을 위협하는 모습, 원주민들의 목에 쇠테를 두르고 쇠줄로 연결하여 일을 시키는 비인간 적인 모습 등에 대한 말로의 서술, 그리고 그들은 미개인도 적도 아니고 죄수도 아니었지만 착취당하고 죽어가고 있었다는 말로의 생각 정도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로의 시선을 통해 듣고 본모습을 통해 서구 식민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될 뿐입니다.
오히려, 경찰과 푸주한으로 대표되는 문명과 이성의 사회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 야만과 감정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말로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우리 내면으로의 탐험을 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말로는 아프리카를 다녀오고 자신이 달라졌다고 느끼며, 심지어는 경찰과 푸주한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짐승의 삶에, 암흑의 핵심에
접근한 이후 달라진 자신을 인간에 비유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읽고의 총평을 정리하며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작가는 문명사회를 박차고 나와 궁극적 자기 인식의 길을 나아간 말로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는 악이 자리한다는 깨달음을 전합니다. 인간은 죽는다라는 진리를 마주할 때 오히려 삶을 치열하게 살아갈 동기를 얻듯이, 인간이 악하다는 진리를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 내면을 선으로 채워갈 동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악에 대한 이번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