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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family Aug 01. 2022

노동이 문학될 때, 노동자가 문학할 때

노동문학에 대한 소고

노동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단어가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일으킬 때는 대부분 그 단어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느냐 없느냐일 거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저는 노동이라는 단어를 가벼이 사용하는데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의 아버지가 노동자였고, 노동운동의 현장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학생회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저는 어린 학생들이 노동해방 운운하는 모습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신입생으로서 선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니들이 노동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쌍팔년도 운동권 흉내를 내냐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회사에 취업하고 취미로 이어가던 글쓰기로 근로자 문화예술제에 작품을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아쉽게 떨어졌다는 사실은 심사위원이 선정작 발표 시 저의 작품은 끝까지 제외하기 아쉬웠다고 언급해주어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근로자 문화예술제이긴 하지만, 70,80년대 식 노동에 대한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노동은 흉내 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아내가 ㅇㅇㅇ시인을 아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의 시가 좋은 것 같다고. 저는 ㅇㅇㅇ시인의 시를 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노동시인으로 유명한 분인데, 저는 노동이 시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이런 시인의 글을 통해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나라마다 노동당이라는 정당이 있고, 노동가요가 있고, 노동문학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과연 노동자이긴 했을까, 기성 정당, 가요, 문학에 입문하기 어려운 자들이 좀 더 쉽게 진출하고자 노동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라고까지 저는 의심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노동자라는 계급은 주로 블루칼라 계급을 의미합니다. 산업구조의 변화로 지금은 블루칼라도 있지만, IT계열  등 화이트칼라 또한 상당수이루고 있지만, 문학, 정치, 가요 속 노동자는 과거에 머물러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노동이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이라는 프레임에 끼워 맞추는 대신,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이 주제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삶 속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이 주제여야 한다는 겁니다. 노동문학이 프레임을 벗어던질 때 현장의 노동자들은 좀 더 쉽게 자신의 생각을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노동문학에 대한 소고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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