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계란 후라이를 짝에 맞지 않게 구워준 이유
우리 가족은 모두 계란 후라이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가난하기 짝이 없어 밥상 위에 고기반찬이 올라오는 날은 아주 드물었기에 단백질 음식인 계란은 고기만큼 환대를 받았다. 그런데 엄마는 밥상 위에 이따금씩 먹을 인원과 다르게 짝이 맞지 않는 애매한 개수의 계란 후라이를 밥상 위에 올려놓곤 했다. 그것은 곧 형과 밥상 위에서 전쟁을 의미했다. 계란의 숫자가 짝수로 나오는 날이면 공평하게 형과 내가 하나씩 나눠먹을 수 있어 쓸데없이 소모적인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었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밥상 위에 계란이 세 개가 올라오는 날에는 누군가가 남은 하나의 계란을 정확하게 반을 나눠먹자고 평화 협상을 제안하지 않는다면 그날은 반드시 큰 다툼이 일어났다.
나는 단칸방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있었기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 나였지만, 언제나 남은 계란 하나가 문제였다.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는 일념에 우리는 서로 음식을 향한 식탐을 한치의 양보도 없이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엄마는 매번 계란 때문에 형제가 싸우는 줄 알면서도 엄마는 이따금씩 계란을 세 개씩 구워주었다. 그런 날은 정말 엄마가 미웠다. 집 안에서 가장 어렸던 내가 가장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던 수직적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존재했기 때문에 계란이 짝이 안 맞는 날은 언제나 긴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세 번째 계란 후라이의 반을 나누던 찰나에 반숙이었던 노른자는 접시 위에서 처참하게 터져버렸다. 그러자 모두의 계획이 일제히 변경되었다. 각자가 젓가락에서 숟가락으로 바꿔 들고는 하염없이 노른자를 긁어먹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형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얼마 남지 않은 노른자를 접시째 혀로 말끔히 닦아 내렸다. 굉장했다. 난 형의 그런 모습에 심하게 충격을 받고, 혀로 말끔하게 닦여진 접시를 몇 초간 멍하게 바라봤다. 온갖 생각이 빠르게 지났던 것 같다. '이게 형인가, 짐승인가. 도대체 먹을 거 앞에서는 이성을 잃어버리는 인간의 모습은 정녕 이렇단 말인가.'라고 말이다. 이후로 나는 형을 며칠 동안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러나 형제는 또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붙어서 장난을 쳐대곤 했다.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엄마는 밥 상 뒤에 숨어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오랫동안 굳게 믿고 있었지만, 그건 나만의 속 좁은 음모론에 불과했다. 엄마는 그렇게 치밀한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살 터울의 형한테 매일같이 대들었던 형과 나의 서열을 계란으로 간단히 정리하고 싶었던 엄마의 계획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살기에 급급했던 때라, 계란 반 쪽이라도 더 먹이고 싶었던 어미의 마음이라고 간단하게 결론지었다.
그렇게 엄마의 음모론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을 때, 불현듯 우리 집에 계란을 좋아하는 남자 하나가 더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아버지였다. 흔히들 아빠라 부르고, 첫째라고 그러더라. 실질적인 우리 집 첫째였던 아버지. 그러면 그렇지. 누구 자식인데. 계란 프라이를 좋아하지 않을 리가 있나. 우리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니까 당연히 자식이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먹으라고 양보할 줄 알았건만,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갔고, 아버지는 줄곧 계란에 젓가락을 갖다 댔다. 자식 앞에서도 일말의 자비는 없었다. 여섯 가락의 작대기는 쉴 새 없이 접시 위에서 휘휘 날아다니며 계란을 파먹어댔다. 나는 아버지의 모습에 크게 실망을 하고, 며칠을 모른 척하고 지냈다. 그러나 아버지를 버리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막내아들의 위치로 돌아왔다.
이 지루하게도 끊이지 않았던 패턴은 아마도 형이 대학생이 되고 자취한다고 집을 나갔을 때부터 사라졌다. 계란 하나로 온갖 심리전을 방불케 했던 밥상 위의 전투는 거기서 끝이 났고, 나도 곧 대학을 입학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도 계란 프라이는 먹을 때마다 오래전 작은 개다리소반을 펼치고 밥을 먹던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노른자가 뭐 그리 중하다고 핥아대던 형은 결국 뚱뚱한 의사가 되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도 계란 후라이는 가족을 끈끈하게 만들었던 따뜻한 음식으로 기억된다. 이번에 가족이 모이면 계란 프라이를 해서 각자 두 개씩 나눠줄 생각이다. 이것은 내가 평생 막내로 지내오면서 겪은 수모를 가족에게 되갚을 수 있는 최대의 복수이고,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