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보석상자,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2018년 10월, 유럽여행 중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3일을 보낼 계획이었다. 베니스는 골목길과 운하 그리고 광장으로만 이루어진 작은 보석함과 같은 도시이다. 이곳은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걸어 다니다 보면 유명 장소를 모두 만날 수 있어 정처 없이 배회하기에 가장 좋은 여행지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베니스 대운하 끝단에 있는 폰테 델 아카데미아(Ponte dell'Accademia) 다리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 서 있으면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유명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현대엔지니어링에 기고한 글입니다.
가장 눈에 먼저 띄는 건물은 베니스의 랜드마크인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의 둥근 돔이다. 성당 주변으로 오래된 세관 건물인 현대미술관으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리모델링을 한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가 있고, 강변으로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Peggy Guggenheim Collection)이 낮은 형태로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베니스에 들어서자마자 페기 구겐하임을 인터넷 맵에서 검색했다. 맵에서 알려주는 대로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 도착했지만, 컬렉션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같은 장소를 몇 번이나 오고 갔는지 다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대문에 적힌 글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 주택인 줄만 알았던 작은 대문 입구 상단에 작게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이라고 쓰여있었다. 미술관 입구는 항상 넓고 멋있을 거라는 고정관념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순간이었다.
컬렉션의 작은 대문으로 한 발짝 들어서니 작은 마당이 보였다. 견학을 온 학생들은 화단에 줄줄이 걸터앉아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이 든 부부가 함께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의아했다. 이곳이 과연 거장들을 배출한 구겐하임 재단이 만든 곳인가 싶었다.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고 입구를 확인하니 사람들이 여기로 들어오고 빠져나갔다. 정문이 확실했다.
이곳을 살았던 페기 구겐하임이라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배가 가라앉아 모두가 구명보트로 피신을 하는데 그중에서 유독 독특한 행동을 보인 사람이 보인다. 자신은 이대로 턱시도를 입고 품위 있게 죽겠다고 하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있었다. 미국의 철강왕 벤저민 구겐하임이었다. 그는 슬하에 세 명의 딸을 뒀는데, 그중 둘째 딸이 이 컬렉션의 주인인 페기 구겐하임이다. 벤저민 구겐하임은 사고로 죽기 전 투자 실패로 많은 돈을 잃었기에 자신의 딸에게 상속할 수 있는 돈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서 페기 구겐하임은 언제나 자신은 가난하다고 말하고 다녔다. 구겐하임 집안사람들에 비해 그녀의 돈이 적은 것뿐이었지 결코 가난하지는 않았다.
페기는 스무 살이 넘어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로 건너간다. 거기서 결혼도 했지만 실패했고, 다른 사랑을 찾아 안정된 삶을 사나 싶더니 이내 연인이 수술사고로 죽는 아픔을 겪는다. 이후로 그녀는 안정적인 삶에서 벗어나 수많은 남자와 거칠 것 없는 연애를 하며 섹스에 집착하게 된다.
페기는 영국으로 넘어가 런던 코크가에 갤러리 구겐하임 죈(Guggenheim Jeune,1938)을 열고, 마르셀 뒤샹을 만나 추상주의와 큐비즘과 같은 현대미술을 배운다. 나치가 파리 침공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즉시 파리로 돌아가 단 4만 달러를 가지고 직접 스튜디오에 일일이 들러 당시에는 유명하지 않았던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몬드리안, 이브 탕기 그리고 자코메티와 같은 미술품을 저렴하게 사들였다. 페기는 독일이 파리를 침공하기 전에 루브르 박물관에다가 자신의 미술품을 보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퇴짜를 맞는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미술품을 이불에 감싸서 유통업자에게 부탁해 미국행 배에 실었고, 샤갈과 막스 에른스트 이외에 많은 예술가들을 데리고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페기는 미국에서 금세기 미술 화랑(Art of This Century, 1942~1947)을 열었다. 금세기 미술 화랑은 미국의 현대미술을 결정지을 만큼 굉장히 반향이 컸다. 페기는 미국에서도 잠재력이 있는 아티스트를 후원했다. 페기는 평범한 목수였던 잭슨 폴록에게 재능이 있는 것을 알아보고 후원을 한 것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일이었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폴록은 현시대 최고가에 팔리는 그림을 그린 화가로 성장했다. 그만큼 페기는 예술을 보는 안목이 대단했다.
보헤미안의 성격을 가진 페기는 미국의 삶을 접고 이제는 유럽을 가고 싶어 했다. 그녀는 뉴욕에서 이미 구겐하임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던 큰 아버지 솔로몬 구겐하임에게 이탈리아 베니스에 구겐하임 재단으로 자신의 미술관을 지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의 보헤미안 기질과 맞아떨어지는 도시였던 것이다. 그녀는 산타 마리아 살루테 성당 근처 권력가들이 모여있는 부촌으로 주변 팔라초(궁전)들과는 다르게 낮고 소박한 건물이 페기는 마음에 들어 현재 컬렉션이 있는 장소에 둥지를 틀었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의 원래 이름은 팔라초 베니어 데이 레오니(Palazzo Venier dei Leoni)로 베니어 가문의 레오니 궁전이라는 뜻이다. 1751년에 건축가 로렌초 보체티(Lorenzo Boschetti)가 지었다. 보체티가 지은 건축물은 베니스에 단 두 개만 존재하는데, 팔라초 베니어 데이 레오니 이외에 산 바르나바 교회가 있다. 원래 이곳의 건축계획은 지금 보이는 것처럼 단층 건물이 아니었다. 궁전은 5층 높이의 건축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완성되지 못한 건축물이다. 재정문제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이후 공사를 재개되나 싶더니, 나폴레옹이 도시를 침공해 건축물이 완공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베니스 최고의 권력가였던 코너의 집(Corner della Ca' Granda)에서 보이는 대운하의 전경이 레오니 궁전 때문에 방해될까 봐 높게 올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레오니의 대가 끊어져서 그렇다고도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이곳은 미완성 궁전(Palazzo non finito)이라고 불렸다. 시간은 흘러 궁전은 여기저기 다른 사람에게 매각이 되면서 관리를 하지 않아 지붕은 무너지고 아이비가 온 건물을 뒤덮을 정도로 노후화되었다.
이 건축물은 페기 구겐하임이 이곳을 들어가기 직전에 루이자 카사티(Luisa Casati)라는 1910년에 예술 컬렉터가 먼저 입주했었다. 루이자는 오스트리아에서 섬유산업을 하던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었다. 열혈 예술 애호가였던 그녀는 1910년에 이곳을 선택했다. 그녀는 건물 내부를 대리석과 유리 그리고 금으로 장식하는 등 화려한 삶을 과시하고 싶어 했고, 치타를 좋아해서 앞마당에 뱀, 공작새 그리고 원숭이와 함께 키웠었다. 그녀는 자신을 살아있는 예술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주 파티를 열어 화려한 옷을 입고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싶어 했다. 그렇게 삶을 화려한 사치로 물들였던 루이지 카사티의 기운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 이어서 이 궁전에 페기 구겐하임이 입주했다.
페기는 베니스도 잠시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삶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 만족스러웠었다. 그래서 자신이 죽을 때까지 페기 구겐하임의 저택에서 살았다.
페기 구겐하임이 죽고 나자 구겐하임 재단은 그녀의 집 거실에 피카소의 작품을 걸었고, 나머지 방에 마그리트와 칸딘스키 그리고 폴록 등 큐비즘과 추상화의 방을 만들어 작품들을 장식했다.
나는 컬렉션에서 발코니로 나가서 대운하의 전경을 보고 싶어 밖으로 나가는 순간 대운하보다 더 놀랄만한 작품이 서있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기마상이었다. 말은 머리를 앞으로 쭉 내빼고 있었고, 그 위에 올라타고 있는 한 남자는 자신의 성기를 잔뜩 발기한 채 대운하의 기운을 받으려는 듯이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기마상은 마리노 마리니의 'The Angel of the City(1947)' 작품이다. 보이는 것만큼이나 과감하고 진취적이다. 잔뜩 발기되어 있는 남자의 성기는 추기경이 대운하를 지나갈 때면 빼놓다가 지나가면 다시 끼워 넣는 조립식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페기 구겐하임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페기 구겐하임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했지만, 삶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애를 써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녀는 모든 걸 내려놓았다.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름다움을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작품을 들고 대서양을 건넜고, 살아가는 즐거움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 끊임없는 쾌락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과 닮은 집을 선택했다. 그렇게 미완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은 예술을 사랑했던 한 여인의 삶으로 가득 채워져 비로소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