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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 Oct 23. 2016

서름즈음에 프로젝트

서른즈음에, 무모해질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 _ 여행은 삶 #9

그해 가을. 나의 서른은 두 달쯤 남아 있었다. 스물아홉엔 서른이 오면 뭔가가 어떻게든 달라질 것만 같았는데. 이십세기가 지나고 온 이십일세기가 그랬듯 나의 서른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내년이 오면 서른 하나가 되고 그럼 만으로 계산해야만 이십 대에 낄 수 있는 완연한 삼십 대가 되는 것 같아 뭔가 이대로 나의 서른을 흘려보내긴 아까운 마음이 들었던 걸까. 잠이 오지 않던 그날 새벽 '서른 즈음에'를 듣다가 충동적으로 글을 썼다. 일명 '서른즈음에 프로젝트'.


서른즈음인 친구들 서른 명과 함께
노래 서른즈음에를 불러보면 어떨까? 


그날 새벽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재밌겠다며 참여하겠다는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자 서른 명이 되어 있었다. 새벽에 쓴 감상적인 문장이 대낮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현실이 신기했다. 거기엔 보통의 현실에선 맛보기 힘든 쾌감이 있었다. 친구들은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냈고 살을 붙였다. 참여자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서른 즈음에를 불러서 녹음하고 그 파일을 내게 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약속한 날짜에 음원을 보내왔다. 


메일함에 도착한 서른 개의 음원은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노래방에서 우렁차게 또는 이불속에서 나직이 읊조리며, 길을 걸어가며 숨이 차오르는 목소리로 부르기도 하고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 위에 부른 노래를 보내온 친구도 있었다. 누구의 음성은 밤바다 파도소리와 함께 들려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또 누구는 여자친구와 함께 화음을 넣어 따뜻하게 들리기도 했다. 가사를 영문으로 번역해 시처럼 낭송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로 개사해 랩을 한 친구도 있었다. 기타나 피아노, 우쿨렐레나 실로폰 같은 악기로 연주 실력까지 보탠 이들도 있었고 가사나 멜로디 없이 서른즈음에 가사를 키보드로 치는 소리만을 녹음해서 보내온 친구도 있었다. 각자의 삶만큼이나 다양한 색깔로 우리만의 '서른즈음에'가 만들어졌다. 

여기까지는 정말 해볼 만한 일이었다. 문제는 마지막 트랙이었다. 각자가 부른 노래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한 곡의 노래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욕심이 났기 때문이다. 서른 개의 음원이 하나로 완성된다. 뭔가 각자의 서른 즈음에가 하나로 모이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만 같았다. 의도는 좋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다. 제각각의 음성, 녹음 환경, 박자 등등. 이걸 어떻게 한 곡으로 만들 수 있을까. 다행히 이 작업은 내가 아닌 친구의 몫이었다. 취미로 음악을 만드는 친구가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기꺼이 이 프로젝트에 기부했다. 친구들의 재능 기부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가 서른 명의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 주었고 편집 디자인 일을 하는 친구가 시디에 들어갈 부클릿 디자인을 해주겠다고 나섰다. 일은 점점 커졌고 커질수록 나는 신났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기대 이상의 퀄리티를 가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일을 저지른다고 했을 때 

기꺼이 도와줄 사람들이 곁에 숨어 있을 거란 믿음이었다.


막연했던 믿음에 힘이 실렸을 때 이 무모해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의 재능기부에 살을 붙여가며 난 일을 더 크게 크게 만들었다. 살면서 맘껏 무모해질 수 있는 순간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임감도 물론 있었다. 대가 없는 일이기에 도와주겠다던 친구들이 중간에 마음을 바꾼다거나 갑자기 어떤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든 마무리는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임감은 묘하게도 내게 어떤 부담도 되지 않았다. 서른즈음에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자신의 사진을 보내왔고 친구의 재능 기부로 부클릿에 들어갈 32명의 드로잉이 완성되었다.


드로잉 by 김하린


각자가 생각한 '서른즈음에'에 대한 짤막한 글을 받아 그림과 함께 한 페이지에 넣어 총 30p가 넘는 부클릿을 제작할 차례였다. 당장 인쇄가 문제였다. 종이도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그때까지 이런 인쇄 작업을 해 본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였다. 당연히 레이아웃 잡을 프로그램도 다룰 줄 몰랐다. 당장 도와주겠다던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친구의 도움으로 32명에게 돌아갈 부클릿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출력된 종이들을 몇 시간이고 같은 자세로 서서 자르느라 내 손목과 어깨는 으스러질 지경이었다. 무수한 칼질을 거쳐 자정이 다 돼서야 모든 작업이 끝났다. 이렇게 야근했으면 병원에 실려갔을 텐데 내가 좋아 벌인 일이니 눈이 빠질 것 같아도 입꼬리는 자꾸 올라갔다.


남은 건 마무리 작업이었다. 우리 집은 곧 소규모 앨범 제작을 위한 가내수공업장으로 돌변했다. 휴일 내내 나는 앨범 속지를 자르고 접고 케이스에 넣었고 공시디에 붙일 라벨링을 위한 프로그램을 다운받고 디자인하고 케이스에 붙일 스티커를 인쇄했다. 마지막으로 서른 장의 시디를 차례차례 구워낼 땐 오롯한 생산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는데. 그때 난 빵을 구울 때보다 확실히 더 신나 있었던 것 같다. 왜 신났을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 중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과 돈 버는 일도 아니고  장난처럼 시작한 일에 이렇게까지 열렬할 수 있다는 것, 또 내 사비를 들여가며 잠도 줄여가며 온 능력을 쏟아붓는 것,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누군가는 냉소할 수도 있었을 거다. 고백하자면 내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런 거 왜 해? 라고 심드렁해 하던 융이 막판에 가장 많은 노동력을 제공해 준 이 프로젝트의 일등공신이 되어있었다.
서른 개의 음원, 글과 그림이 담긴 부클릿, 직접 디자인한 라벨지를 붙여 완성한 시디 케이스. 어느 하나 우리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초반과 달리 점점 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가는 사람들의 미묘한 변화를 보는 것도 제법 즐거운 일이었다. 무뚝뚝한 친구가 활짝 웃는 표정으로 앨범을 들고 찍은 사진을 봤을 때, 평소 한 문장을 채 넘기지 않았던 친구가 새벽에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을 때, 몇 년 간 못 봤던 친구가 불쑥 일터로 찾아와 내게 커피를 건넸을 때. 무엇보다 한동안 좁고 깊은 인간관계에 푹 빠져있던 내가 페이스북으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 자체가 내겐 뜻밖이었고 이 뜻밖의 일은 결국 쉽게 잊힐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서른즈음에. 이십 대와는 다르게 각자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아가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이 돈벌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 프로젝트에 서로의 재능을 조금씩 기부해서 행복한 연대를 만들었다. 이제 막 경제 활동을 시작해 사회적 입지를 다져 나가야 할 시기에 우리는 철저히 비경제적인 방식으로 '순수한 놀이의 기쁨'을 나눴다. 그 날 우린 회사의 명함 대신 목소리가 담긴 앨범을 나눠 가졌고 누구의 이력서에도 한 줄 보탤 수 없는 무용함이 마음속에 뜨거운 한 줄로 아로새겨졌다.


해외 우편부터 직접 수령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받은 앨범을 받고 친구들은 인증샷을 올려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내가 했던 일들 중 가장 무모했을지 모르는 그때의 일들을 추억해 본다. 앞으로 내 삶에 무모함을 즐길 기회는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 나는 그때처럼 다시 열정적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할까? 곧 다가올 마흔즈음에를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그럴 틈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뒤늦은 고백이지만 가끔 생각한다. 우리의 서른즈음에는 그때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늘어난 평균 수명과 늦춰진 결혼 적령기로 인해. 노래 가사가 콕콕 박혀 저릿해지는 시기는 지금 쯤일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이런 앨범 한 장 나눠가진 우리의 서른즈음에는 제법 괜찮지 않은가 안부를 묻고 싶다. 우리의 서른즈음에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니 각자의 걸음으로 잘 걸어가 보자고. 걷다가 지겨우면 슬쩍슬쩍 샛길로 헛걸음 하는 즐거움도 여전히 잃지 말자고. 또 하루 멀어져 가는 우리들의 삶을 계속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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