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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 Mar 20. 2016

도전! 베를린에서 생활비 벌기

우리는 유럽에서 어떻게 한 달 치 방세를 벌었을까 _ 삶은 여행 #4

오늘은 우리가 집 떠난 지 258일째 되는 날


여행자로서 생활비 벌기에 도전하는 첫날이기도 하다. 당연히 심장은 두근두근,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제발 비만 오지 말라고 너무 기도한 탓일까? 팔 월의 베를린은 동남아 해변 같은 태양을 지글지글 뿜고 있었다. 후아~ 진짜 덥다! 여기는 하루에도 수만 명이 오가는 베를린의 가장 핫한 플리마켓, 마우어파크(Muer Park). 맞은편 멕시칸 아주머니는 온갖 잡동사니를 늘어놓고 있었다. 딱 봐도 플리마켓 베테랑이다. 그녀의 경력을 말해주는 건 바로 엄청난 크기의 파라솔. 그늘 아래 그녀는 손님 없는 시간을 틈타 무려 독서까지 하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아, 얼마나 부럽던지. 초보 장사꾼인 우리의 얼굴은 이미 망고처럼 익어버렸다. 지나치게 좋은 햇빛과 전 세계 여행자가 모두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덥다 더워, 훌렁 훌렁 옷 벗은 사내들과 햇빛과 씨름 중인 우산 쓴 플리마케터들


이렇게 좋은 날씨에 맥주가 빠질 수 없지


공원 곳곳에선 행사가 한창, 사람들은 즐겁다


마켓 물건을 보러 온 사람들도 분주한데


그 사이 외딴 섬처럼  놓인 우리, 한 시간 째 훵~ 하다


도대체 일주일 전에 답사는 왜 한 걸까? 그때 우린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어떤 물건이 잘 팔리는지, 또 사람들의 이목은 어떻게 끌지 정말 나름 치열하게 조사하고 돌아갔었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치도 못한 뜨거운 햇빛에서 시작된 거다. 바람도 문제였다. 정성 들여 준비한 진열대가 미풍에도 힘없이 날아갔다. 한 손으론 땀 닦으랴, 다른 손으론 진열대 붙잡고 있으랴. 정말 꼴이 말이 아니다. 이게 다 시장분석만 할 줄 알았지, 자연의 섭리는 미처 헤아리지 못한 우리의 어리석음 탓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실수는 늦게 나오는 바람에 마켓 안이 아닌, 마켓 바깥쪽 잔디밭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이미 안에서 쇼핑을 마치고 나온 관광객들은 잔디밭 물건들을 그저 눈요기쯤으로만 여기는 것 같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유럽 땅에서 돈 버는 일이 당연히 쉬울 리가 없지! 


후회가 밀려올 땐 이렇게 내 입으로 먼저 선수 쳐줘야 한다. 그늘 아래로 자리를 옮기려다 마음을 고쳐먹는다. 우리 물건은 조명 발을 받아야 빛나는 ‘자개’ 귀걸이. 우리 몸 좀 편하자고 물건을 죽일 순 없었다. 그래, 오늘은 겨우 첫날이잖아! 일단 최선을 다해보자! 휴대용 스피커를 연결하자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바람에 쓰러진 진열대를 다섯 번쯤 고쳐 세웠을 때였나. 유독 툭탁툭탁 테이블 정리로 부산한 우리에게 시선을 주는 손님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기회는 이 때다! 이래 봬도 내가 '서비스직’ 알바 경력만 12년 차다. 특유의 낭랑톤으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헬로! 잇츠 올 핸드메이드. 유 캔 트롸잇!’ 오랜 시간 아르바이트하며 깨달은 점 한 가지. 먼저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 무시하는 손님은 별로 없다는 거. ‘와우, 뷰티풀! 나이스!’를 연발하는 손님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기적처럼 귀걸이가 하나 둘 팔리기 시작했다!


마켓 전날 밤에는 항상 늦게까지 잠을 못 잤다. 융은 디스플레이용 그림을 그리고 나는 귀걸이를 만들고 포장했다


“이거 당신이 직접 만든 거예요?.” “네, 제가 만들었어요.” "(진열대 글씨를 보고) 와, 한국에서 오셨군요?” “네, 우리는 한국에서 왔고, 지금 여행 중이에요.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이곳에 나왔어요.” 소소한 대화들을 이어가며 손님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정성 들여 만든 수공예품의 진가를 알아봐 주었다. 직접 만든 진열대의 반응도 좋았다. 귀걸이와 그림이 하나로 어울려 액자처럼 보이는 걸 흥미로워했다. 귀걸이 살 때 원하는 그림도 골라 가지게 했다. 사람들이 너무 좋아한다! 사실 이건 엄마가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이미 쓰고 있는 아이디어. 엄마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렇게 첫 주엔 귀걸이 한 쌍에 15유로씩 총 네 개를 팔았다. 네 개 밖에 못 팔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번 돈은 무려 60유로였다. 오오! 이거 괜찮은데? 이 돈이면 우리의 일주일치 식비다! 둘째 주엔 햇빛 가릴 우산도 챙기고 테이블도 큰 걸로 가져갔다. 가격도 좀 내려서 한층 수월하게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손님들과 너스레를 떠는 여유도 생겼다. 셋째 주부턴 토요일 아트 마켓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벼룩시장의 개념이 강한 마우어파크보다 작가들이 직접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아트 마켓이 우리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를린 마켓 정보를 총동원해 주말마다 티어가르텐 역 근처에서 열리는 아트&디자인마켓을 찾아냈다.




마우어파크보다 훨씬 한적하고 아담한 규모의 아트 마켓



국적을 알 수 없을 만큼 까매진 얼굴로 뭐가 좋은지 웃고 있는 나와 오늘 판매할 물건들


아트&디자인 마켓은 마우어파크보다 규모도 작고 손님들도 적었지만 분위기는 더 좋았다. 상인들이 직접 만든 물건을 가지고 나와 자부심이 느껴졌고 독특한 볼거리도 풍성했다. 관광객에게 많이 알려진 마켓이 아니다 보니 뜨내기 장사꾼들도 없고 동양인도 우리 밖에 없었다. 손님들뿐 아니라 그곳 상인들에게도, 우린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이 물건들을 직접 만들었다고요?
와우, 당신들도 아티스트군요


아트마켓에 참가한 작가가 우리더러 '아티스트'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곳에서 아티스트가 되었고 우리와 함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우리의 동료가 되었다. 동료들은 이방인인 우리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었다.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테이블이 쓰러지자 자기 일처럼 잽싸게 달려와 일으켜 세워주고, 손님이 귀걸이 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할 때 거울이 없어 발을 동동거리자 기꺼이 자신이 쓰던 거울을 들고 뛰어와 주었다. 그때마다 이건 단순히 돈을 버는 경험이 아니구나, 이렇게 또 한번 사람을 배우는구나, 베를린에서 은혜를 입어가는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한 달 간 총 여섯 번 주말 마켓에 참가했고 한 달 치 방세를 벌 수 있었다.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였다. 


단순히 우리가 장사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더 이상 만들 재료가 없어서 도움 요청을 했을 때, 기꺼이 한국에서 귀걸이를 페덱스로 보내 준 엄마와 우리를 경계의 시선이 아닌 넓은 마음으로 받아준 상인들. 무엇보다 손으로 만든 물건의 가치를 알아봐 준 손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저 생활비가 똑 떨어져 후다닥 시작했던 밥벌이가 우리에게 그 이상의 값진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덧붙여 주말마다 테이블을 들고 나르느라 굵어진 융의 팔뚝과 더 이상 한국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새까맣게 타버린 내 피부에게도 심심한 위로와 감사를 표한다.




삶은 여행 TIP 


한국에 돌아와 겪은 가장 큰 여행 후유증은 바로 ‘선택의 곤란함’이었다. 여행 내내 두 세벌의 옷만 입고 살다 옷장이 있는 삶으로 돌아오니, 이 모든 게 내겐 너무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입어야 할지 몰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거나 벼룩시장에 내다 판 것이었다. 요즘엔 이런 플리마켓들이 제법 많다. 아나바다 정신에 충실한 벼룩시장부터 핸드메이드 제품이 주가 되는 아트 마켓까지. 컨셉도 가지가지다. 그러니 주말 마켓에 나가 물건을 정리해보는 건 어떨까. 삶의 무거운 짐들을 여행자처럼 가볍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 거다.



여행의 경험들은 일상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삶을 변화시킬까? 1년간 세계여행 후 돌아와 서울에서 7년째 장기체류 중인 17년차 여행자의 탐구보고서. 매거진 [삶은 여행은 삶] 에 여행’과 ‘일상’의 글을 같은 테마로 번갈아 연재 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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