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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 Feb 21. 2018

손님이 들어오면 음악이 멈추는 이상한 가게

페로제도 탐험기

이곳은 매점이다. 역이나 항구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잡화점. 섬에 들어가기 전 사람들이 가볍게 들러 살 만한 물건들을 파는 곳 같다. 아마도 우리가 오늘 첫 손님이겠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점원이 웃으며 우리를 맞이한다. 그런데 순간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뚝 끊긴다. 


어? 왜 음악을 껐지? 다른 음악으로 바꾸려나. 하지만 가게를 나올 때까지 음악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 우리가 들어오면 음악을 듣다가도 꺼 버리는 걸까? 그러고 보니 가게 천정엔 모니터가 달려 있었지만 전원은 역시 꺼져 있었다. 어제 버스 터미널에도 타고 있던 버스 안에도 모두 최신형 엘시디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티브이가 켜져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애초에 모니터가 없었다면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모니터는 있는데 전원은 늘 꺼진 상태. 버스 기사님은 음악을 듣다가도 우리가 올라타면 이어폰을 꼽아 음악이 더 이상 스피커로 흘러 나가지 않게 했다. 뭐지?



우리가 타면 듣고 있던 음악을 뚝 꺼버리거나 이어폰을 꼽아서 듣던 버스 기사님


페로에 있는 동안 수시로 들락거렸던 토르스하운 버스 터미널,  전원이 켜진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은 모니터



나는 이게 페로를 떠날 때까지 계속 궁금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경험이니까. 조용하던 식당에서도 손님이 들어오면 음악을 틀어야 하고 버스나 택시에서는 기사님 취향에 맞춰진 라디오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당연한 도시, 심지어 버스나 지하철 승강장에서도 쉴 새 없이 원치 않는 광고와 온갖 매체에 노출당해야 하는, 나는 그런 도시에서 살다 온 사람이니까. 공공장소에서의 의도된 정적이 이렇게 낯설 수가 없고 또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사실 난 소음 알레르기가 있다. 세상에 많은 알레르기가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소음 알레르기라는 게 있는지는 십 년 전에 처음 알았다. 퇴사 직전 불안장애가 극도로 심한 상태였는데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발로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갔었다. 문진표에 체크를 하고 간단한 상담을 한 후에 의사가 내게 내린 병명이 바로 이 소음 알레르기였다. 


특히 나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물건과 서비스에서 파생되는 도시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정신 상태가 건강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소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신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여서 길을 걷다가 울리는 경적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하고 사무실에서 바라보고 있는 모니터에서 나오는 작은 삐- 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 일을 못하는 상태였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내게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소음을 생산해 내는 알레르기 항원이었던 셈. 그때 이 도시가 너무 싫어 나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일 년간 한국을 떠나 있었다.


그런 알레르기 환자에게 페로는 너무나도 좋은 곳이었다. 서울의 공공장소에서 '음악'이라는 것을 음악답게 들어본 기억이 없다. 도심에서 음악은 대부분 소비 활동의 촉매제다. 그래야 손님이 좋은 분위기에서 더 많은 소비를 하니까. 그런데 여기는 반대인 거다. 가게 직원이나 버스 기사는 자신의 취향으로 선택된 음악이나 방송을 듣다가도 손님이 들어오면 그걸 끄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선택한 소리가 타인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 아닐까.  내게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소박한 배려심. 도시에서 늘 원치 않는 소음에 시달리던 내게 이건 실로 반가운 문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책「페로제도 탐험기」 내용의 일부를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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