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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 Mar 06. 2018

우리는 왜 이 길을 가야 하는가

미키네스 섬(Mykines Island), 페로제도 탐험기


그런데 우리는 몇 시간째 반대편 길로만 가고 있다


문을 나서자 다시 시작된 바람과의 사투. 하필 걷는 방향이 바람의 역방향이라 엄청난 마찰력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보통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루트와는 늘 반대로 가는 융 덕분에 오늘 트레킹 역시 매우 고독할 예정. 암만 걸어도 사람이라곤 우리 둘 뿐이다. 반대편 길로 가면 퍼핀이란 희귀 새도 볼 수 있다던데. 가는 길도 훨씬 수월할 거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만큼 잘 정비돼 있을 테고 볼거리도 보장돼 있을 거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긴 진창길을 바람을 거스르며 한 시간 째 걷고 있다. 동서남북을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아무런 표식 없는 길을. 안개인지 구름인지로 뒤덮여 뿌옇게만 보이는 저 먼 곳을 향해 걷는 중이다. 


우리는 왜 이 길을 가야 하는가


살다 보면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 길이 있고 남들이 다 고생길인 게 훤하니 절대로 가지 말라고 뜯어말려도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길이 있다. 융의 선택은 늘 후자였다. 스무 살의 그는 한 학기 만에 학교를 관두겠다고 했다. 나는 뜯어말렸다. 왜 대학 생활을 충분히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냐고. 후회할 거라고. 하지만 융은 결국 자퇴했고 스물아홉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서른한 살에 졸업했다. 입학에서 졸업까지 십일 년이 걸렸다. 결과 값만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삶. 하지만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융은 그런 자신의 이십 대를 누구보다 좋아한다. 나는 지금 그런 사람의 트래킹 계획에 따라가는 중이다. 그러니 지금 걷는 길들 또한 융의 이십 대를 닮아 있다. 왜 이 길을 가야 하는가, 머리로는 알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끝내 가 보고 싶은 길을 걷는다.


푸른 초원 위 까만 점처럼 박혀 있는 양 떼도 곧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제 곁에 남아 있는 생명체라곤 머리 위를 빙빙 도는 갈매기 뿐


그렇게 나는 미키네스 섬 한가운데에서 한낱 점이 되었다



「페로제도 탐험기」 내용의 일부를 연재 중입니다. 미키네스 섬에서의 뒷이야기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책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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