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 May 03. 2017

시와 사막에서 발견한 생의 오아시스

300일 여행 끝에 사막으로 간 이유 _ 삶은 여행 #12

아름다운 산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그런 풍경 앞에서 머리가 멍해질 때까지 펑펑 울고 싶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정말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휴대폰 알람으로 시작되는 일상이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지고, 그대로 10년의 시간이 훅 간다 해도 그 사이 내 삶은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을 거란 사실이 몹시도 끔찍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상상했었다. 눈이 시리도록 깊고 파란 바다, 바라만 봐도 가슴이 뻥 뚫리는 초록의 들판 위에서 바라보는 노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로 메워진 밤하늘 같은 것들을. 언젠가 그런 그림 같은 대자연 앞에서 삶을 진하게 위로받고 싶다고, 받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애초에 여행의 구체적인 기승전결을 생각하고 떠나지 않았던 터라 마지막 여행지는 여행 중에 정해졌다. 처음엔 네팔을 생각했다. 히말라야의 밤, 내 몸이 행성의 중심이 된 듯 별들이 날 둘러싸고 부웅 떠오른다는 어느 여행자의 말이 떠올랐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중국으로 넘어가 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건 어떨까? 일주일을 열차 안에서 꼬박 달리면서 여행을 정리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결국 이런저런 생각들을 돌아 우리의 마음이 도착한 곳은 사막이었다. 유럽에서 가깝고 오래 머물러도 부담 없는 물가의 나라, 이집트 사하라 사막.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땅. 살면서 보아온 별똥별의 수를 한 시간만 누워있으면 모두 볼 수 있다는 그곳. 우리는 별이 쏟아지는 이집트 사막으로 갔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버스로 꼬박 열 시간을 달려 시와 마을에 도착했다. 사하라 사막과 닿아 있는 작은 사막 마을. 보통 여행자들은 이 곳에 머물면서 함께 사막에 들어갈 일행을 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행 찾기엔 커다란 복병이 있었다. 비수기라 여행자가 많이 없었고 마침 라마단 기간이라 여행자들이 잘 모이는 레스토랑이나 상점들은 대부분 저녁 6시 전엔 영업을 하지 않았다. 둘이 지프 한대로 가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적어도 셋은 모여야 하는데. 사막을 코 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한 채 며칠을 마을에서 보냈다. 삼일 째 되던 날, 우린 한 일본인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이 분도 1박 2일의 일정을 생각하고 시와 마을을 찾은 터라 우린 더 고민할 것 없이 다음 날 바로 사막으로 함께 떠날 수 있었다.


사막의 신은 태양이다. 고로 신이 한창 활동할 시간에 사람 따위가 함부로 돌아다니다간 그대로 타 버리기 딱 좋다. 지프차 운전사가 우리를 픽업 나온 시간도 늦은 오후 4시나 돼 서였다. 지프차는 융과 나, 일본인 아저씨를 싣고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거짓말처럼 정말 순도 100프로 모래뿐인 사막 위를 달리고 있었다. 크고 작은 모래 언덕의 굴곡 위를 오르내릴 때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듯한 기분에 우리 셋은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운전자의 솜씨는 곡예사 못지않았다. 구십 도에 가까운 수직하강을 할 때도 있었다. 그땐 정말 모래언덕에 거꾸로 쳐 박혀 이대로 여행이 끝나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공포감마저 들었다. 스릴 만점의 롤러코스터 지프차는 사막 위의 여기저기 관람 포인트에 우릴 차례로 내려주었다. 지금은 이렇게 모래뿐이지만 예전엔 이 자리에 바다가 있었단다. 그 흔적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조개껍질들이 화석이 된 채 땅에 박혀 있었다. 오아시스도 보았다. 사막 한가운데 거짓말처럼 정말 작은 바다가 있었다. 오아시스에 도착하자 나를 제외한 세 남자는 옷을 훌렁 벗어 재끼더니 팬티 바람으로 그곳에 뛰어 들어가 수영을 했다. 그 광경이 얼마나 유쾌하고 비현실적인지.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내 삶은 모든 걸 위로받은 것 같았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에서 수영 중인 두 사람
사막의 신 태양님께서 퇴근하실 시간
광활한 사막 위에 한낱 점이 되어 버린 융


운전사는 마을로 돌아가고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캠프에 짐을 풀었다. 이 곳에서 하룻밤을 묵는 일정. 이 캠프를 지키는 베두인 한 명과 당나귀가 우릴 맞아주었다. 베두인이 저녁밥과 손수 재배해서 만든 (내 생에 가장 맛있었던) 생 민트 잎을 넣은 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 사막은 깜깜한 밤이 되었다. 피워 놓은 모닥불 외엔 빛이 보이지 않았다. 우린 캠프 안에 있는 매트를 가지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캠프장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곳, 그래서 땅 위에 빛이라곤 한 점도 없고 오로지 하늘의 빛들로만 가득한 곳까지 걸어나갔다. 음식과 물이 있는 캠프에서 멀어지자 우릴 지겹게 쫓아오던 모기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갔다. 더 걸어나가면 방향 감각을 잃어 숙소로 못 돌아가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 정도의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곳에 매트를 깔고 누웠다.


누워서 아무리 삼백육십도 고개를 돌려 봐도 볼 수 있는 거라곤 온통 하늘의 별뿐이었다. 내 생에 가장 많은 별을 본 순간이었다. 열 달꼬박 붙어 다니면서 모든 말들을 쏟아내, 더 할 말도 없을 것 같은데도 우린 하늘의 별들처럼 끝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몇 시간을 누워 별만 바라보니 별자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이동해가는 동선까지 알아챌 수 있었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차가운 밤공기와 만나 묘한 바람을 일으켜 휘이- 소리를 내었다. 별똥별은 대수롭지 않게 빈번히 등장했고 기대했던 사막 여우는 보지 못했지만 사막의 밤은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이른 새벽 눈을 떠보니 눈썹달이 커다랗게 떠올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왔다 갔는지, 동물 발자국들이 우리가 누웠던 매트 바로 언저리까지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우리가 무서웠나.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몰래 왔다 간 듯한 그 흔적이 얼마나 귀엽던지.  

밤새 친구들이 다녀간 흔적들
이날 새벽에 본 하늘은 이후 내 단골 프로필 사진이 되었다




'여행의 경험은 어떻게 일상에 뿌리내리고 삶을 변화시키는가?' 에 대한 여행 탐구에세이. 3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금상을 받은 이 글들이「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속해보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