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 Feb 10. 2021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세상 모든 방구석인들을 응원하며


"저 문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어요."


자신을 방구석 음악인이라고 소개한 이승윤이 '싱어게인'의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긴 시간 무명 음악인으로 살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저 문 밖으로 나가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의 말이 내 마음에 날아와 깊숙이 박혔다. 문 밖으로 나가는 일.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일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재능 있는 많은 친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문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삶을 택하고 방구석 아티스트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봐 왔고 나 역시 지금도 문 밖을 나가기가 힘든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티비나 유튜브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사람들이 이 작은 땅덩어리에 왜 이렇게 많은가. 그 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서로 치열하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매일매일 경쟁해야 살아남는 이 시대는 얼마나 공평하면서도 잔인한가. 내가 어설프게 노래를 잘하거나 춤을 잘 추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승윤은 첫 무대에서 자신을 '배 아픈 가수'라고 소개했다.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창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일차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이 원초적인 감정은 굉장히 강렬해서 삶을 통째로 집어삼키기도 한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런 감정선과 상통한다. 언젠가부터 알던 사람들이 하나 둘 책을 내기 시작했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종종 봤다. 나는 매일 일기장에 글을 쓰는 것이 전부인 방구석 일기인이었는데, 나는 그냥 배가 아팠다. 배가 아프면 나도 보이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면 되는 건데. 그땐 그게 내 욕구의 투영이란 생각을 못하고, 그냥 문 밖의 세상을 탓했다. 내가 보기엔 시시하고 단지 운이 좋아 잘 알려진 것 같았고. 어떤 작품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는 몸과 마음으로 한동안 살았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아는 사람들과만 공유하던 글을 모르는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문 밖으로 조금씩 나가는 과정이었다.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창작물, 그러니까 가격이 매겨진 창작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값의 상당 부분은 창작자가 문 밖으로 나온 '용기'에 대한 대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취향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창작물을 비판해도 수용할 수 있는 용기, 실수나 부족함을 보여 혹독한 평가를 받아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용기,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쳐도 그 영향이 부정적이어도 긍정적이어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문 밖을 나온 모든 창작자들은 결국 이런 용기가 없으면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여기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아주 오랫동안 문밖의 세상을 비관하며 문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했던 사람들에 한해서다.


상상해보건대 이승윤도 그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사실 그의 노래는 내 취향은 아니다. 그보다 노래 잘하고 독특한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들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응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가 문 밖을 나와 한때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그러니까 메이저 방송국의 경연프로 우승자로 서 있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저 문 밖을 뛰쳐나왔으니까.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올 땐 정말 죽을 각오로 뛰쳐나온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나는 취향을 떠나서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막 문밖으로 첫발을 내딛은 그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여전히 방구석에서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문 밖으로 나가기를 응원한다. 왜냐하면 문밖을 나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일수록 고민의 깊이만큼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주 쉽게 문밖을 나선 사람들의 창작물로만 가득한 세상은 재미없으니까. 문밖을 나가기가 조심스러워 내내 방구석에서 생각만 하다 해가 뜨고 생각만 하다 해가 지고 또 생각만 하다 나이만 먹어버린 당신이 문밖을 나서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브런치는 분명 그런 우리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 계속해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소시장에서의 소소한 대화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