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 May 21. 2021

오해와 이해 1

새벽에 쓰는 일기

벌써 15년 전이다. 당시엔 흔치 않던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옥 카페가 집 근처에 생겨 놀러 갔던 적이 있다. 친구들과 들어가자마자 메뉴판을 받은 나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들떠서 뭘 먹을까 고민 중이었다. 그때 들려온 누군가의 말소리. "거 뭐가 그렇게 바빠요? 좀 앉아서 천천히 보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 카페의 주인장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어린 학생으로 보였기로서니 다짜고짜 반존대에 나를 타박하듯 쏘아붙이는 그 말에 마음이 상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후로 그 카페에 다신 가지 않았다.


원래도 요리를 부지런 떨어서 하는 사람이 못 되지만 작년에는 코로나 핑계로 정말 많은 끼니를 배달에 의존하게 되었다. 종로구민으로 살고 있는 혜택의 절반을 종로구 맛집 배달을 받는 것으로 퉁쳐도 될 만큼 이 동네에는 맛집들이 많았고,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면 새로운 밥집이 새로운 카페가 매일매일 목록에 떠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후기가 수십 개인데 별점이 만점에 가까운 아인슈페너 맛집이 보였다. 근데 어랏? 가게 상호가 굉장히 익숙했다. 바로 지도에서 검색해 봤는데 바로 15년 전 나를 타박했던 그 카페였다. 리뷰에는 커피 맛도 좋고 요청사항을 사장님께서 아주 잘 들어주신다는 칭찬이 자자했다. 그 사이 사장님이 바뀌었나 보네. 나는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해 보고자 용기 내 주문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배달료도 저렴했고 커피도 내 입맛에 잘 맞았다.


그 후로 두세 번쯤 커피를 더 시켜먹었나? 몇 달 후에 우연히 그 카페 앞을 자전거 타고 지나가게 되었다. 나는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용기 내 가게로 들어갔다. 내가 기억하는 그때 그 사장님이 그대로 계셨다. 나는 당황해서 메뉴판을 보다 그만 실없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어.. 카푸치노 커피에 혹시 크림이 들어가나요?" 그랬더니 들려오는 대답. 무표정한 얼굴로 "어? 카푸치노엔 크림이 안 올라가는데?". 아아..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사장님은 15년 전과 같이 내게 거의 반말로 대답을 하셨다. 아... 여전하시구나. 나는 배달로 주문해 먹던 메뉴를 똑같이 시키고 사장님께 용기 내서 말했다. "저 배달로 여기 커피 가끔 시켜먹었어요. 이 자리에서 오래 장사하셨죠? 몇 년 만에 와 보는 것 같아요."라고 괜히 말을 길게 덧붙였다. 그러자 사장님이 뭔가 멋쩍어하시면서 아아 그러시냐고, 배달앱에서 전혀 고객 정보를 볼 수 없게 되어서 본인은 누가 주문을 하는지 전혀 모르신다면서 이렇게 얘기해 주면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배달로 받아봤을 때와 같이 여전히 맛있는 커피를 받아 들며 그 카페를 기분 좋게 나왔다. 사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찾아 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도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커피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변한 건 없었다. 카페는 그 자리에 있었고 같은 사장님이 운영하고 계셨고 그 사장님의 말투는 여전했고 커피도 여전히 맛있었다. 달라진 것은 그냥 나의 태도였다. 나는 더 이상 사장님의 말투가 거슬리지 않는 열 다섯 살 더 먹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게 조금 신기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