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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HONG Jun 19. 2024

도구의 역습

<차단>툴의 선택적 활용


미리말하지만, 지금의 나를 더 발전시키고 자극시킬 수 있다면, 초등학생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태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가끔 어린친구들이 많은 단톡방에 잠행하여 <글쓰기방>, <그림방> <취미방>에 가본 적이 있다. 지금도 <글쓰기> <그림>은 유지를 하고 있다. 정보와 피드백을 교환하며. 실제로 그때 강화된 재능으로 브랜드를 하나 더 론칭하게 되는 장족의 발전을 거둔 경험자로서. 스스로가 나이와 연령, 툴의 경계에 있지 않을려는 에티튜드다.


처음엔 너무 놀랐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오픈톡방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작년 초 까지도 몰랐다.


보통 일을 해보면 회사 업무 카톡창만 3개 이상을 띄어놓고 일을 하고, 그 피드백과 관련 내용을 숙지하여 팀에 전달하고 업무보고를 받고 등등 퇴근 무렵에 기가 빨려서 조기퇴근하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카톡의 톡이 퇴근 6시 이후에만 날아와도 불같이 화를 냈다. 업무시간에 대체 무얼 하고 개인시간까지 방해하냐고. 실제로 모든 통화와 업무메시지는 6시 이후로 받지 않는다.


언젠가 새벽 3시에 열정 넘치는 이사가 문자를 보내길래 두 번 정도는 참다가 결국 이런 말도 했다.

"이사님, 내 업무는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이런 얘기는 아침 9시 출근하여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새벽에 문자 보내지 마세요."라고.

매번 저렇게 눈치 없는 이사의 새벽 문자를 받아주다 보면 계속 저런다. 그런 기미가 보일 때 싹을 잘라 제대로 길들일 필요가 있다. 무능한 사람에게 끌려다닐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번외) 조직관리자 길들이기
(소상공인 해당. 중견기업 이상은 어림없음)

직장은 보기에 따라선 하급자가 훈련되고 있는 것 같지만 냉정하게 대표든 뭐든 길들이기 나름이다. 그렇게 되기까지엔 실력과 재능이라는 권력(힘)을 가졌을 때만 가능하기도 하다. 권력구조가 그렇다.

왜?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표도 '을'이다. 총책임자인 나를 구슬려 회사통장에 돈이 꽂히도록 해야 하니까. 경우에 따라선 나도 ‘을’이다. 팀원의 사기를 올리고 달래서(극한직업) 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하니까.

돈의 가치로 월급을 받고 일하고 있지만, 기업의 이윤 앞에는 ‘을’일 수 있다. 그래서 상대를 어떻게 길들이냐가 무척 중요하다. 다른 말로 ‘자기관리’.


이런 얘기가 내가 권력지향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조직 자체가 그런 권력을 허용하고 차등 부여하고 있다. 그 부여된 권력을 휘둘러 납작 엎드리게 굴복시켜야 할때도 있다.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들에겐.

경우에 따라선 직급을 이용해서 찍어 눌렀고, 동급경력자 일 땐 내가 당신보다 더 고액연봉자임을 굳이 인지시켜 주었다. 필요하다면 말싸움으로라도. 그 선을 굳이 인지시킨다.


왜냐면 사람이란 위치를 망각하기 때문에. 나는 부서별 같은 직급의 같은 디렉터라도 책임권한을 넘어서는 행위에 대해 한 번도 용인하지 않았다. 선을 넘는 자에겐 그 경계를 드러내는게 조직의 룰이며 권한이다.



어느 날 단톡방에 누군가
상대에게 카톡 차단 당했다고...


그런 복잡한...(쩝)..직장생활에서의 인간관계도 스트레스가 쌓일 텐데 단톡방에 와서 조차 인간관계를 만들고 고민거리를 갖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 대체로 회사에서 못 갖는 즐거움을 가지려고 단톡방에 왔다 치자, 그런데도 그 단톡방 멤버에게서 조차 인간관계를 엮는다는 것이.


한동안은 이것이 이해가 안 되어 주변에 물어봤었다. 왜 사람들이 오픈톡에 와서 그 많은 시간을 허비할까~라고. 상대가 차단한 것을 가지고 저렇게 감정을 섞어서 분노할 일인가 싶었다. 그런 정신적 소모와 뇌의 두통을 방지하고자 플랫폼에서 도구적 수단으로 제공해 준 도구(툴)가 <차단> 기능인데. 그럴 때 깔끔하게 차단하라고. 그 기능을 썼을 뿐인데,  <차단> 기능은 플랫폼에서 제공한 두통약인 셈인데.



그럼 차단에 불쾌하지 않을 리가 있는가

나의 경우는 중요프로젝트를 맡을땐 부모님 연락처도 차단했다. 명절이나 가족행사 때가 되면 수시로 연락이 온다. 솔직히 일에 집중이 안된다.

너무 재미있는 단톡방일지라도 그 톡방의 메시지를 쳐다보는 시간이 정작 우선순위에 둬야 할 시간을 뺏고 있기에 그 단톡방을 나왔다.


특히 연애를 했을 때는 밥 먹었냐고~ 언제 마치냐고~ 중간중간 카톡을 보내고~ 늦게 마치면 늦게 마친다고~보고 싶다고 전화하고~. 지나친 개입은...결국엔 그런 것들로 이별을 택한 케이스도 있다. 내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차단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차단을 당했다'는 표현은
너무나 타인 위주의 관점이며,
다시 입장을 주체적 자기주도 관점으로
‘그런 상황은 원하지 않아요.’가 맞다.


<차단>의 의미를 좋고/싫고의 의사표현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감정적인 것에 치우친 해석이다. 그렇게 접근하면 모든 게 과몰입이라고 생각하며, 차단을 통해 소모되는 시간을 줄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내 선택권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내겐 브런치플랫폼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브런치에 소모되는 시간을 줄였다. 브런치플랫폼에 대한 즐거움을 더 오래 즐기기 위해. 조절했다고 본다.


왜 자기자신의 퀄리티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변에만 눈을 켜서 오해도 모자라 감정을 긁고 있는지... 안타까운 사람들을 많이 본다.


특히나 나는 본업 외에 모니터 앞에,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게 만드는 것들을 싫어한다.

방금 세탁한 빨래가 거실에서 하늘하늘 바람에 말라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게 더 좋을 수 도 있고, 계단틈에 자란 잡초를 뽑을까 말까 고민하는 게 더 새롭다고 느낀다. 나를 모니터 앞 혹은 주변기기로 묶어두는 것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

따라서 차단의 어떤 대상에게 내가 좋고/ 싫고의 문제 혹은 호의적/ 적대적 이런 논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은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관심의 이동, 선택의 한 경우에 지나지 않을 뿐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차단(툴)은 좋고/싫고의 문제라기 보단
관심의 이동, 선택의 한 경우일 뿐이다.
더 나은 즐거움을 찾기 위한.
그 선택을 존중해 준다고 생각하면
불쾌하거나 마음 상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자유롭다.

내가 누군가를 차단했다면, 더 자유롭기 위한 선택일 뿐이다. 또한 타인이 나를 차단했다면 같은 이유로 그랬을 것으로 짐작하며 존중해 주면 될일이다.

너무나 좋은 콘텐츠이고 멋진 글빨과 글이라도, 내가 하루종일 혹은 내 할 일을 미루고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거나 그 앱에 소모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누구라도 차단했을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오래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차단당했다고 분노할 이유도 감정을 섞을 이유도 없다. 툴은 그냥 툴, 도구 일 뿐이다.


스스로 현상과 툴에 대해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또한 툴(도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딱히 머 두통도 없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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