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머로 잊혀 있는 동안은 낯설지만, 곁에 둘수록 친숙해지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그것을 '예술'라고 말한다.
친숙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단어. '예술'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예술이야!”라는 짤막한 한 마디는 금세 주변을 환기시키곤 한다. 여유로움, 자유로움, 따사로움, 아름다움, 신비로움 등 일상에서 쉬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예술이라는 표현 하나로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예술이 갖는 특별함은 이것 만이 아니다. 같은 땅을 밟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이 삶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에 담고자 하는 바가 감탄(感歎)의 의사임은 분명하다.
내게도 의미 없이 주변을 맴돌던 '예술'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게 된 순간이 있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은 계속해서 새로운 순간을 만든다. 사람이 태어나 생을 이어가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같은 순간을 보낼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그 수많은 순간 중에 처음이라고 기억할만한 순간. 가령 첫 경험이 아닐지라도, 처음이라고 치부하는 순간이 있다.
'민 군 화합 콘서트'이다. 군부대에서 기획하는 공연은 기관과 상급부대에서 추진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 분야를 주 임무로 하는 직책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공연팀 섭외, 무대 및 음향 세팅, 프로그램 편성, 홍보, 포스터 및 팸플릿 제작 등 A부터 Z까지 모두 준비한 경험은 귀중하다. '공연 기획'이라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경험.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성공과 실패라는 평가를 온전히 받아들였던 단 하나의 경험이 내게 있어서 예술의 첫 경험이자 공연 기획의 시작이었다. 동시에 예술에 대한 애정을 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삶은 예술이 되었다.
비밀은 생산 과정부터 비밀이다. 예술의 탄생에도 과정이 있다. 그렇기에 내게서 예술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나의 삶은 예술이 되었다. 그러나 예술적인 삶의 풍성함이 결단코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유인이다"라는 선언만으로 법과 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대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힘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삶을, 예술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중요하다.
"문화예술경영과 관련하여 읽은 책이 있는가?"
2022년, 홍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면접 중에 받은 질문이다. 저자 탁현민, 공연 행사 제작 매뉴얼. 한 권의 책이 예술에 대한 경험 사이로 스며들며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채웠다. 그렇게 만난 경험과 지식은 최종적으로 나를 '기획자'로 이끌었다. 책의 내용은 그 이름에 맞게 충실했다. 공연 기획을 위한 구상부터 준비, 시행까지 마치 후임자에게 물려주는 ‘인계인수서’와 같은 섬세함으로 작성돼있었다. 그 섬세함이 내가 원하는 예술을 표현할 방법을 구상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만큼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내게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내게 '문화예술경영'이란 '기획자'가 '예술'을 활용하여 기획한 '프로그램'을 '경영자'의 '이익'과 '고객'의 '소비'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원활히 매개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공연 기획이란, 마치 문제은행과 같다. 근본이 되는 개념과 이론에서 파생된 새로운 경험의 집합이다. 오답노트를 곁에 두고 반복하면 풀리는 문제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풀이 과정 속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처럼 수많은 기획 과정에서 얻은 성공과 실패는 분명 더 나은 기획자로 이끌어줄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기본기가 부족한 상태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위험하듯, 문화예술을 소비하는 대상을 위한 공연 기획을 위해서는 문화예술과 경영에 대한 개념과 이론 그 상관관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중요한 사실은 대중에게 문화를 매개하며 이상을 실현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현실 사이에서 기획자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예술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술이 갖는 의미란 무엇인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또 무엇을 도출할 것인가? 끝없는 질문과 답변 속에서 이상을 실현하고, 현실을 살아내는 것. 그 반복적인 삶이 곧 예술이 되는 과정 속에서 계속해서 나와 타인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곧 '문화예술경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