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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May 04. 2023

임신입니다, 그런데 생리주기랑 안 맞네요

  결혼한 지 5개월이 되어간다. 쌀쌀하지만 파랗게 맑은 겨울날, 바다가 보이는 결혼식장이었다. 

  결혼 준비도 준비지만 작년에는 일하는 게 참 힘들었다. 마음을 담아서 한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힘들었다. 직장 5년 차인 내가 쓸 수 있는 휴직은 하나밖에 없겠다 싶었다. '결혼도 앞두고 있겠다, 임신을 해버리면 일을 쉴 수 있을 거야.' 결국은 생각만, 결혼식까지 홀몸으로 잘 마쳤다.


  1년 결혼 선배인 친구에게 청첩장을 주기 위해 만난 자리. 친구는 계획임신에 성공했다. 애살쟁이인 친구는 임신 잘하는 방법(?)까지 유튜브로 공부했단다. 남편의 정자는 3개월 전에 만들어진다면서 이런저런 영양제를 함께 챙겨 먹었다고 했다. 친구의 노력 덕분에 아기는 친구의 프사 속에서 건강하고 맑게 웃고 있다. 임신 계획이 있냐는 친구의 질문에 '그냥, 생기면 낳으려고'라고 답했다. 정말 그랬다. 생기면, 나아야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임신이 될 줄로만 알았다. 나도, 남편도 건강하니 마음만 먹으면 바로 생길 거야. 결혼 3개월이 지나자 '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엄마가 짐 정리하다가 꺼내 준 두꺼운 임신출산대백과의 난임 부분을 찾아 남편 몰래 읽어봤다. 그즈음 유튜브에 산부인과 관련 영상이 하나 둘 뜨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은 정말 내 마음을 읽고 있는지도 몰라.


  그리고 어제,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산부인과는 병원의 여느 과와 비슷했다. 당연하겠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여자라는 것이 달랐다. 들어가자마자 치마로 갈아입고, 의자에 앉아 질초음파를 봤다. 이전 환자가 진료한 화면이 그대로 떠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내 자궁 속이다. 화면에 작은 강낭콩 같은 것이 보였다.  '난황이네요. 그런데 생리 주기랑 안 맞는데? 그리고 난소에 혹이 있네요' 임신이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임신임을 확인하고 남편과 눈을 맞추며 서로 행복해하는 드라마 속 장면과 현실은 달랐다. 남편은 벽 하나 건너 의자에 앉아 내 자궁 속 강낭콩 같은 난황과, 둥그런 혹을 보고 있었다. 


  산부인과 의자에서 내려와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난소의 혹. 분명 6개월 전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 질초음파에서는 깨끗하다고 했었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의사 선생님께 재차 물으니, 크기가 작아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혹이 말썽을 피울 경우에는 응급 수술을 할 수 있으니 알아두라고 한다.


  강낭콩 같은 난황 사진을 들고 엄마와 통화를 했다. 아빠와도, 할머니와도 통화를 했다. 시부모님과도 저녁을 먹었다. 이제 모두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낯설고, 와닿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아직 엄마가 되기엔 멀었다. 아기 생각보다도 내 걱정이 먼저 든다. 내 난소는 괜찮은 건가, 아기 낳을 때 아플 텐데, 출산휴가 전까지 버스 타고 출퇴근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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