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왔다. 뱃속의 행복이를 낳고, 아장아장 걸을 때까지 키울 집이다. 친정과의 거리를 포기하고, 남편 직장과 10분 거리의 동네로 왔다. 남편과 겨울부터 여러 동네들을 다녀보고 여러 날을 심사숙고하여 선택한 동네이다.
이 동네를 선택한 이유는 남편 직장과의 거리도 가깝지만, 아파트촌 중간에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작은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놀이터와 작은 바닥 분수, 오솔길이 있다. 건너편 초등학교에서 학교를 마치고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부터 마실 나오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하는 공간이 있는 것이 정다워 보였다. 더구나 이 공원에서 달에 한 번씩 동네 장터가 열리기도 한다. 또 건너 골목에서는 5일마다 장이 열린다.
이전에 살던 곳은 신도시여서 깔끔하기는 했으나 오피스 건물이 함께 들어선 곳이라 늘 삭막하고 휑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퇴근길에 걸어오면서 모퉁이를 돌면 갈 곳 없는 바람들이 모여 어김없이 매서운 빌딩풍이 몰아치곤 했다. 가장 가까운 공원에 가려면 30분을 넘게 걸어서 가거나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더구나 어제 퇴거를 하면서 임대인과 오피스텔 옵션 보수 문제로 얼굴을 붉혔고 결국 임대인이 보증금을 다 돌려주지 않는 일이 생겨 그쪽 동네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게 되었다. 없던 정도 사라져 버린 셈이다.
이제 새로운 동네에 정을 붙여야 한다. 남편이 출근한 후 휑한 거실에 홀로 앉아있으니 왠지 허전함이 밀려온다. 어디서 오는 허전함일까.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다. 켜켜이 쌓인 짐들 속에서 라디오를 꺼내 예전부터 애청하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다. 비가 와서 그런지, 지역이 달라져서 그런지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나서 라디오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위치를 찾았다. 익숙한 목소리와 노래들이 들려오니 좀 나은 것 같다. 마치 새로운 교실에 오늘 처음 온 전학생 같은 마음이다. 이전 학교에서 쓰던 필통과 필기도구를 꺼내놓고 안정을 찾는 것과 비슷하려나.
익숙한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달랜다. 남편에게도 짧은 편지를 썼다. 한참 글을 쓰고 나니 허전한 마음이 좀 나은 것 같다. 이제 몸을 움직여야지. 소매를 걷어붙이고 익숙한 라디오를 들으며, 익숙한 나의 물건들을 착착 정리하며 이 집과 좀 친해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