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을 하고 만으로 3개월 정도 지났다. 뒤늦게 유산 소식을 전해들은 친구와 마주한 자리. 나의 출산 선물을 준비하려다 소식을 듣고 목이 메였다고 한다. 여전히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지 머뭇거리는 친구 앞에서 괜찮다고, 이제 다 지나가서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시어머니와 함께 한의원에 갔다. 원래는 임신을 한 며느리가 건강하게 순산할 수 있도록 한약을 지어주실 계획이셨는데 다른 목적으로 한약을 짓게 되었다. 한의사 선생님은 침을 놓으시기 전에 내 양 발을 꾹꾹 눌러보시더니 대뜸 "너무 열심히 살지 마세요."라고 하셨다.
"경상도 말로, 쌔빠지게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왠지 모르게 울음이 터져버렸다. 나는 정말 다 지나가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계류유산 수술 후 초음파를 보면서 내가 자궁내막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여러 이유로 자궁 속에 있어야 할 월경혈이 난소에 자리를 잡으면서 혹이 생기는 병이다. 의사 선생님은 면역이 약해졌을 때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악성은 아니지만 끈질긴 정도가 악성에 버금가는 병이라서 완치가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 몸이 건강하지 않았구나, 유산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유산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만큼 무겁게 다가왔다. 그동안의 마음이 힘들었던 시간들, 이 정도 밖에 안되느냐며 스스로를 괴롭혔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건 죽으라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우리 생활에서 스트레스는 떼어놓기 참 어려운 존재이지만, 조금이라도 떼어놔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당연한 소리가 이제야 내 이야기로 다가왔다. 사실 따지고보면 내가 뭘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더 헐렁하게 살아야 한다. 잠이 오면 좀 더 자고, 잠깐 지나가는 일에 머리 싸매지 말고, 나를 좀 더 다독여줬어야 했다. 법륜스님의 말씀대로 다람쥐처럼, 토끼처럼 그냥 살면 되었다. 괴로워하지도, 특별히 재밌을 필요도 없다.
쌔빠지게 살지 말자 다짐해도 사람이란 쉽게 변하지 않으니 다시 쌔빠지게 살고 있을테지만, 일단 생각한다. 다람쥐처럼, 토끼처럼 그냥 산다. 나는 다람쥐나 토끼나 다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