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검진 때 다시 봐야겠는데, 아마 딸일 것 같네요."
짧은 진료 후 받아든 초음파 사진 속 아가의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외계인 마냥 얼굴에 눈구멍 2개만 콕콕 찍힌 초음파 사진 탓도 있지만 왠지 허전한 마음. 허전한 마음을 곱씹으며 남편과 저녁을 먹다가 떠올랐다. 아, 시댁에서 봤던 남편의 어린시절 사진. 누나와 찍은 사진이었는데, 서너 살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너무도 호기심이 넘치는 표정으로 (조금의 수줍음을 더해서) 셔터가 눌러지자마자 계단을 오르려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시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남편은 참 키우기 쉬운 아기였다고 한다. 순하고, 잘 먹고, 잘 자고, 세상 행복한 아기였다고.
나는 그런 남편을 닮은 아기를 낳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뱃속의 아가가 남편을 닮은 남자 아이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나보다. 남자아이였으면 하고 바란 다른 이유는 내가 맏딸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라난 가정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은 나는 맏딸로서의 역할이 퍽 부담이었다. 부모님의 첫째 아이로, 동생의 누나로, 할머니의 첫 손주로 태어나서 가족들의 은근한 기대와,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꽤 무거웠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고 칭찬은 받았지만서도 마음 한 켠에는 여동생으로 태어난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물론 여동생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둘째 계획이 명확히 있는 건 아니지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아이가 태어나면 누나, 언니라는 역할로 작은 마음에 부담을 갖지 않도록 해야지. '너는 누나니까, 언니니까'라는 말로 여린 마음에 돌덩이를 쌓아 올리지 말아야지. 아이의 마음으로 방방 가볍게 즐겁게 생활하도록 도와야지, 다짐하며 곧 엄마가 될 내가 어린 나의 뒷모습에 어깨를 토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