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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Feb 27. 2019

SC 싱가포르 마라톤 도전기

2015년 12월의 이야기다



Standard Chartered Marathon Singapore (싱가포르 마라톤) 2015



신청 계기


해외 마라톤 완주를 언젠가 해보고 싶었다. 마치 달리기를 계속하면서 풀코스를 완주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게. 국내 풀코스는 완주 해봤으니(비록 단 한 번이지만) 다른 나라 어떤 도시에서 42.195km를 내 몸으로 달려보고 싶었다. 여행을 가면 꼭 그 도시에서 여러 번 러닝을 하고 오는 편이다. 낯선 도시에서의 러닝이 내게는 자연스럽고 기쁜 일이다. 내 두 발과 낯선 도시의 지면이 맞닿을 때의 느낌, 아침 공기, 현지 러너들의 표정, 날씨, 풍경, 그때 듣던 음악 같은 것들은 여행의 또 다른 추억으로 남게 되니까. 나에게 여행은 달리기 여행이기도 하니까. (물론 맥주 여행, 맛집 여행, 그림 여행, 산책 여행, 멍때리기 여행이기도 하다 ㅎㅎ) 

휴가를 내고 가기에 멀지 않은 해외 중, 물망에 오른 곳이 여러 곳 있었다. 오사카, 오키나와, 홍콩 등등. 뭐 사실 호놀룰루나 유럽 어느 도시들이 더 좋겠지만 너무 머니까. 아시아에서 안 가본 나라 중 갈만한 곳으로 가자. 그게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는 아직 안 가보기도 했고, 싱가포르하고 발리는 가까우니 마라톤 끝나고 쉬다 와도 좋고. 발리는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곳 중 하나였으니. 너로 정했다. 



준비 훈련과 목표


사실 훈련을 제대로 못했다. 하핫. 7월에 접수했으면 꽤 시간이 있었음에도. 매주 회사 사람들하고 하는 것 외엔(보통 5-10km). 9월에 하프 한 번 나갔었고 10월에는 발목을 삐어서 아예 쉬었으며 11월에도 쉬엄쉬엄. . 잘 몰랐는데 싱가포르 날씨가 적도 근처여서 덥고 습하다고. 싱가포르가 적도 근처였구낭. 하핫. 사실 기록 단축이 목표가 아니라 무사 완주가 목표여서. 힘들면 걷지 뭐, 라는 마음으로. 너무 덥고 습해서 힘들면 중간에 그만 둬야지, 무리는 말아야지, 생각하니까. 완주보다 중요한 건 내 몸이다.



코스 맵


아직 싱가포르 지리나 핫플레이스, 코스, 뭐 이런 건 아무 생각이 없어서 저 루트를 봐도 아무 감이 없다. 그냥 핫한 곳을 다 뛰어서 가는구나, 싶네.


싱가포르 여행을 마라톤으로 한방에 끝낸다. 퐈이아! (출처: http://www.marathonsingapore.com/)



그렇다. 나는 싱가포르 마라톤(Standard Chartered Marathon Singapore 2015)에 출전하러 싱가포르에 갔다. 뭐 다른 이유는 없었다. 싱가포르는 안 가봐서 낯설기도 했고, 싱가포르를 갈 바에 여러 번 가본 홍콩이나 방콕이 더 좋기도 했지만 올해 안에 나는 해외 마라톤에 나가고 싶었으니. 시기와 조건에 맞게 나갈만한 곳은 싱가포르 마라톤 뿐이었다. 

2015년 12월 6일 대회날 아침. 전날 새벽 1시쯤 잤기에 한두시간 선잠을 자고 일어났다. 또르르르. 전날 대회 때 입을 옷, 양말, 무릎, 발목, 허리, 목에 붙일 테이프까지 길이에 맞춰 다 잘라놨고 얼굴과 몸에 바를 선크림, 화장품, 모자, 웨이스트팩, 등은 다 챙겨두었다. 눈 뜨자마자 씻고 바로 챙겨서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대회 때 먹을 카보샷, 땀을 닦을 손수건도 혹시나 당 떨어질까봐 킨더 초콜릿과 건포도까지. 4시에는 호텔에서 나가야 한다! 늦으면 안 된다! 하는 마음으로 일어나서 씻고 입고 챙겨서 지하철역으로.





마라톤 때문에 지하철이 새벽 3시인가부터 운행됐다.


다양한 차림의 사람들. 배번호에 자신의 기록 구간이 엄청 크게 표시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알파벳으로 하거나 시간이 명확히 표시되지 않는데 Below 7 hours 이런 식으로 명확히 배번호에 딱. 나는 Below 5 hours 였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6시간, 7시간인데 저 정도면 내가 싱가포르 사람들을 다 이길 수 있겠는데? 상금도 센데 죽을만큼 달려볼까? 다 이겨버리겠어! 라는 호기로운 마음도 들었다(미쳤지).


스타트 라인으로 모이는 사람들

출발 전. 새벽 5시가 안된 시간이라 아직 사위가 어둡다. 이렇게 이른 시간 마라톤은 처음이다. 더워서 이렇게 일찍...하는 것이로구나.








나빼고 다들 어쩐지 다들 신나보였다. 나도 신나긴 했고. 안 그래도 더운데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더 덥다는 생각을 하며. 이 사람들은 이게 안 더운가. 나만 더운가. 땀이 줄줄줄... 대회가 시작되고, 나는 달렸다. 어두워서 사람들을 따라 졸졸졸. 더웠다. 브라운 가제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는데 더 큰 수건 가져올 걸 후회. 손수건으론 땀이 커버되지 않아... 10km까진 그냥 꾹 참고 뛰었는데 더워서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스트 코스트 파크 진입. 어마어마하게 큰 공원이었다. 센트럴 파크 같은 느낌. 바다가 너무 아름답다, 는 생각과 함께 지금도 이렇게 더운데 해가 뜨면 얼마나 더 더울까.








흑흑. 점점 해가 뜨고 있었다. 이렇게 뜨는 해가 안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이스트 코스트 파크에서 총 17km를 뛰었다. 얼마냐 크냐면 이스트 코스트 파크에 진입할 때가 13km였는데 빠져나오니 30km 구간이 지나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공원이었다. 그냥 조깅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냥 마라톤 신청 안 하고 저 공원에 와서 조금 뛰고 조금 그늘에 누워 조금 맥주나 마시고 갔어도 됐을텐데. 왜 나는 굳이 싱가포르에 와서 달리고 있나. 32도의 더위에서. 그래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달릴만은 했다. 그렇지만 달리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싱가포르는 마라톤을 할 곳이 아니구나...  




저런 풍경도 나에겐 그냥 그늘 없는 더운 곳일 뿐...

마리나 베이 샌즈 골프장을 지나는데 이때부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더 심해졌다. 그늘도 없고 땡볕에 조금만 뛰어도 더위 먹은 개처럼 숨이 차고 속이 미슥거렸다. 그래서 걸었다. 이미 15km부터 걸었지만. 걷다 뛰다도 아니고 그냥 걸음. 5시간 30분 페이스 메이커가 날 앞질러 갔다. 페이스 메이커 중 한 명이 풍선을 떼버리고 그도 걷기 시작했다. 좀 웃겼다. 그래, 자네도 나와 같이 걷자. 그 좋다는 마리나 베이 샌즈 가든도 식물원이려니, 연못이려니, 풀이려니, 하고 지나갔다. 나 대회 끝나고 저기서 묵을텐데 왜 지금 여길 뛰고 있을까. 왜 그늘은 없나. 이 땡볕에 저 사람은 어떻게 뛰는가. 나 이러다 쓰러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계속 했다. 천천히 걷자, 천천히 걷자, 포기하자 말자, 하며. 더워서 그런지 급수대가 2km마다 거의 하나씩 있었다. 더위 먹을까봐 그런가 보다. 한국은 5km 정도마다 하나씩 있는데. 급수대마다 한 컵 마시고 두 컵 들고 걸었다. 더위 먹어 죽을까봐. 생각해보면 급수대마다 물을 다 마셨으니 총 2-3리터 마신 거 같다. 물을 많이 마셔서 배가 부를 정도. 타지에서 마라톤 하다 죽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물을 마셨다. 저 물은 내 생명수다! 


37km 지점이 고비였다. 그만 둘까 말까를 수없이 고민해던 지점.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서 가든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아래에서 앉아있었다. 타이거밤에서 나온 근육 이완 로션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급수대보다 많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 옆에 앉았다. 내가 옆에 앉으니 그 사람이 힘들면 쉬어가라, 했다. 알았다, 하고 계속 앉아서 쉬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갔다. 구름다리 밑에 앉아서 한 30분 쉰듯. 5시간 이내는 커녕 완주도 힘들판. 왜 사람들 기록이 6-7 시간이 많았는지 알겠다 싶기도 하고. 내 근육에 무리가 생길까봐 테이핑을 좀 여기저기 많이 했는데 응급차 아저씨가 다친 줄 알았나보다. 구급차 타라고. 한 3초 망설였다. 탈까 말까 탈까 말까. 이 더운데 마리나 베이 샌즈 옆 한강 다리같은 다리도 건너야 하고. 또 도심으로 들어가면 땡볕일텐데 탈까 말까 탈까 말까. 거절했다. 그리고 또 앉아서 도우미 같은 사람에게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덥냐. 한국은 겨울이다. 나는 이 마라톤 때문에 여기 왔는데 더워서 죽을 거 같다. 이랬더니 그 사람이 이 날씨가 좋은 거라고... 좋다고...? 그렇게 계속 앉아있는데 또 지나가던 응급차에서 타라고 했다. 고민했다. 싫다고 했다. 어쨌든 기록은 안 좋더라도 여기까지 왔는데 완주를 안 할 수 없다... 걷더라도 완주하자. 쩔뚝쩔뚝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 쉬고 걸으니 걸을만 했다. 관람차도 지나고 도심도 지나고.






이 메달을 위해! 포기하지 않았다. 걸었어도 피니시 라인은 통과했다.


왠지 발에 물집은 한 다섯개는 잡혔을 거 같고 발톱에 피멍은 네개쯤 들었겠다는 생각을 하며. 6시간 20분만에 완주. 무려 동아마라톤보다 약 2시간이나 늦은 기록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더 힘든 것은 괴로운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이다. 4시간 뛰면 4시간 괴로울텐데 6시간 뛰면 6시간 괴롭다. 끝나고 피니셔 티셔츠도 받고. 


다음에 해외로 마라톤을 나간다면, 좀 덜 더운 곳으로...30도 넘는 곳에서 뛰는 것은 미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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