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 사람일수록 누군가와 남몰래 끊임없이 비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설정한 비교 대상을 기준으로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토익을 한 번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열심히 공부해서 700점을 받았다고 치자. 처음 치른 토익 시험에서 700점을 받은 것은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그렇지만 마음 속에 800점, 900점을 받은 사람과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해진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나를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지는 꼴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일이 마무리될 때쯤이면 나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남과 비교했을 때 좋지 않다고 느끼면 한없이 집착했다. 아무도 뭐라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을 때 나는 그 경쟁에서 이겼을까? 아니다. 긴 집착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위염과 탈모와 스트레스였다. 그야말로 완전한 패배였다.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건 매우 멋진 일이다. 그러나 성취 후에 나에게 들었던 가장 큰 의문은 ‘이 행동에 내 마음이 담겨 있는가?’였다. 내가 무언가에 집착했던 이유는 잘 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즉, 행동의 원인이 ‘나’가 아니라 ‘타인’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싶었기에 그것을 잘 해내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다.
‘경쟁하지 말자, 어차피 진다.’
최근 내가 감명을 받은 문장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늘 내가 졌다고 생각한 이유는 행동의 원인이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시도할 때 그 행동의 원인이 ‘나’라면 누구보다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내가 즐겁고 행복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러니 경쟁하지 말라는 말은 어쩌면 내가 하는 행동에 나의 마음이 담겨 있는지를 먼저 판단하라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설사 지더라도 행복한 경험이 될 것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이 잘하기 위해 스스로를 옥죈다. 물론 나도 아직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래서인지 양어깨에 부담을 가득 짊어진 사람들을 보면 뻐근하게 마음이 아파 온다. 누구도 더는 남들이 모르는, 나만 아는 외로운 경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쟁에서 지면 좀 어때? 나는 집착으로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지더라도 행복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